[임종건 드라이펜]

작고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 씨가 지난 3월13일 미국 뉴욕에서 난데없이 SNS에 나타나 할아버지 전 대통령은 ‘학살자’이고,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비자금으로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을 때 “이게 뭔소리인가?”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17일에는 SNS 생방송을 하면서 마약을 먹고 헛소리를 하며 실신한 끝에 경찰과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어리둥절했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나온 뒤 그는 5·18희생자에게 사죄하기 위해 귀국하겠다고 하더니 28일 아침 약속대로 항공편으로 귀국했고, 도착 즉시 경찰에 체포됐다.

29일 경찰에서 풀려난 그는 30일 새벽 광주로 와서 5·18관련 단체 인사들을 만나 사죄의 인사를 나누었고, 31일에는 5·18묘지를 참배했다. 5·18 단체 인사들은 전 씨의 광주 방문에 대해 "격하게 환영한다"고 했으며, 전 씨는 "광주시민이 죄인인 자신을 환영해 주어 감사한다"고 했다.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캡쳐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캡쳐

그가 보여주고 있는 이런 일련의 언행이 향후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어 가는 양상이다. 그의 폭로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및 뇌물죄 추징금미납과 관련하여 많은 국민들이 전두환 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해 갖고 있는 통념과 부합하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은닉 비자금 부분이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의 추징금은 2,205억 원으로 이 중 1,234억 원만 납부해 800여억 원이 미납상태였는데, 지난해 별세함으로써 더 이상 추징도 불가능한 상태다. 그의 폭로로 은닉 비자금이 새로 드러날 수 있을는지는 두고 볼 일이나, 그의 마약복용 경력이 폭로의 흠결로 작용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을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에 대한 지지나 동정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그의 마약 및 정신과 병력, 자살기도 등의 경력과 결부해 그의 언행에 병적 징후가 짙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에게 법적 책임이 따르는 행위를 압박하기보다 정신적 건강성 확인이 먼저라는 얘기다.

애기 때 전우원 씨 형제가 잠든 할아버지 전두환 대통령 가슴에 얼굴을 묻고 천진하게 장난치고 있다. 그는 사진 속의 인자한 할아버지를 '학살자'라고 했다.

그가 공개한 가족사진 중에서 언론에서 가장 많이 소개된 것은 자신과 형이 어렸을 때 잠든 할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사진 속의 인자한 할아버지를 ‘학살자’로 인식하게 했는지 심리적 기저가 궁금하다.

그가 이 사진을 공개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손자에게는 인자했지만 현실에서는 잔혹했던 할아버지의 위선을 고발하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품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아마도 후자에 더 가까울 것 같다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의 아버지 전재용 씨의 복잡한 가정사가 알려지면서 전 씨의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은 한층 증폭되었다. 그는 부모의 이혼 이후 아버지와 조부모 품을 떠나 병든 어머니를 두고 타국에서 원망과 외로움에서 살았던 것 같다. 성장하면서 알게 된 할아버지에 대한 세상의 온갖 부정적 평가와 주변의 질시가 그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가 되었을 법도 하다.

스스로 밝혔듯이 어머니의 이혼 위자료가 수십억 원이었다면, 쪼들리는 생활은 아니었을 법한데, 그럼에도 그가 다른 가족들의 호화생활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불법재산의 분배에서 자신의 몫에 대한 불만도 깔려 있는 듯하다.

아무튼 전 씨의 이야기는 과오가 있는 전직 대통령 가정의 비극이자, 조부모 업보의 덫에서 탈출구를 잃은 젊은이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소외되고 억눌렸던 자아가 마약을 매개로 주체할 수 없이 분출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양육에서 부모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훈으로 삼을지언정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흥미 위주로 해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가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상황의 진전을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그의 폭로가 법적인 효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도 은닉 비자금 수사에 앞서 그의 진술의 사실여부 확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의 진단 한마디 참고함이 없이 정상인의 고발사건처럼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언론의 보도 행태도 고쳐져야 한다.

나는 그가 마약에서 벗어나 정상인으로 돌아와서, 할아버지의 생애에 대한 인식과 할아버지의 감추어진 재산에 관해 맑은 정신으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결과가 체납 추징금의 해소에도 기여해 지하의 할아버지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이 칼럼은 오피니언타임스와 자유칼럼 그룹간의 전재 협약에 따라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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