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산소리]

최근 변리사들은 총회에서 변리사회 감독기관을 특허청장에서 다른 곳으로 변경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인실 특허청장이 2023년 2월 23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하여 변리사에 소송대리권을 주려는 법안에 사실상 반대하는 말을 함으로써 결국 변리사법안은 법사위 법안심사 2소위로 떨어졌습니다. 변리사법 개정안의 앞날이 암담해졌습니다. 변리사들은, 변리사제도를 맡고 있는 특허청장의 책임을 물어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였습니다. 이에 덩달아 변리사회 감독기관을 변경하는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특허청장의 발언과 태도는 변리사회 감독기관이 잘못돼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허청은 ‘특허ㆍ실용신안ㆍ디자인 및 상표에 관한 사무와 이에 대한 심사ㆍ심판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소속으로 설치된 기관’입니다(정부조직법 37조). 특허청장은 변리사회를 감독합니다(현행 변리사법 13조, 변리사회 감독기관은 1961년부터 산업부장관이었는데, 느닷없이 2006년에 특허청장이 감독기관이 됐습니다).

사진 특허청 홈피 캡쳐
사진 특허청 홈피 캡쳐

특허청이 변리사 감독기관일 때 중대한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특허(심결취소)소송에서 특허청장은 피고가 됩니다. 변리사는 원고의 소송대리인을 맡습니다. 변리사를 감독하는 특허청장이 소송에서는 변리사와 맞서 싸우는 피고 자리에 섭니다. 즉 특허청장은 소송에서 선수가 되는데, 동시에 특허청장은 변리사를 감독합니다. 특허청 심사관과 심판관은 특허청장의 조직원이며 이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를 따지는 소송에서 특허청장이 이들을 방어해야 합니다. 공격하는 원고의 대리인인 변리사는 특허청장의 감독을 받습니다. 전형적인 이해충돌(conflict) 모습입니다. 소송에서 이해충돌이 생기면 해당자는 제척이나 기피 대상입니다. 의뢰인은 불안합니다. 선수가 심판을 겸하도록 돼 있는 제도의 모순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둘째, 변리사 선발 문제입니다. 변리사시험은 특허청장이 실시합니다. 변리사 시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특허청에서 7급 이상으로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1차 시험을 면제하고, 5급 이상으로 5년 이상 특허행정사무에 종사한 경력자는 1차 시험을 면제하고 2차 시험 네 과목 중에서 두 과목을 면제합니다. 특허청이 시행하는 시험에 특허청 공무원이 응시하면 선수(수험생)와 심판(시험 주관)을 특허청이 같이 맡습니다. 1차 시험 면제와 2차 과목 일부 면제는 엄청난 특혜입니다(더구나 업무경력이 있는 과목을 면제하는 게 합리적임에도 면제 과목 선택에 제한이 없습니다). 일반 수험생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 이들 특허청 수험자를 위해 과목과 과목 수가 조정돼 왔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들은 특허청이 변리사회 감독기관이고, 특허청이 변리사 시험을 주관하기에 생기는 일입니다. 선수가 심판을 겸하는 것은 사회 체계에도 맞지 않고 사회 정의도 아니며, 모양새도 아닙니다. 이런 체계로는, 특허 문제로 소송해야 하는 발명가에게 심각한 피해가 생길 여지가 많고, 수험생에게 공평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변리사 감독기관을 바꾸고, 변리사시험 주관자를 바꾸어서 해결해야 합니다.

변리사는 기술을 다루므로 대부분 이공계 전공자입니다. 특허권은 연구개발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과학기술정책과 관련되므로 과기정통부장관이 감독해도 될 것이고, 특허권은 개발한 기술을 활용한다는 면에서는 산업정책과 연관되므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감독해도 좋겠습니다.

변리사제도는 ‘발명가의 권익 보호, 산업재산권 제도와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있습니다. 변리사법은 이 목적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수가 심판까지 맡고 있어서는 변리사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근본 문제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이 칼럼은 오피니언타임스와 자유칼럼 그룹간의 전재 협약에 따라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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