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김인철 칼럼니스트]   신록의 숲을 붉게 물들이는 애기송이풀!

학명은 Pedicularis ishidoyana Koidz. & Ohwi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수류화개(水流花開). 물가에 가득 핀 애기송이풀이 농익어 가는 신록의 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사진 김인철
수류화개(水流花開). 물가에 가득 핀 애기송이풀이 농익어 가는 신록의 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사진 김인철

긴 겨울잠에서 깬 숲이 4월에 접어들면서 갈색에서 신록으로, 다시 짙은 초록으로 농익어갑니다. 사람들의 발길도 자연스레 물가를 향합니다. 지구온난화의 여파인지 갈수록 봄은 실종되고 여름이 일찍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기온이 솟구친다 해도 벌써부터 물속으로 뛰어들 수는 없는 일.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연한 홍자색 꽃이 천변에 한 무더기 피어나 옷깃을 잡습니다.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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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풀, 흰송이풀, 한라송이풀, 구름송이풀, 만주송이풀, 대송이풀 등 10여 종의 송이풀 속 식물 가운데 유독 ‘애기’란 접두어가 붙은 애기송이풀. 그 연유를 쫓다 보면 애기송이풀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애기가래에서 애기황새풀에 이르기까지 각종 식물도감에 나오는, 40여 종의 ‘애기’ 식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전초나 꽃의 크기가 작거나 여릴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애기송이풀은 결코 잎이나 꽃이 다른 송이풀에 비해 작지 않습니다.

순백에 가까운 연분홍으로 핀 애기송이풀. @사진 김인철
순백에 가까운 연분홍으로 핀 애기송이풀.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쑥갓처럼 생긴 잎은 길이가 20~30cm에 이를 정도로 길쭉합니다. 4~5월 대개는 홍자색이지만, 드물게 순백에 가까운 연분홍으로 피는 꽃은 지름이 4~5cm로 제법 큼직합니다.

게다가 꽃이 많게는 십여 송이가 뭉쳐서 피기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들어올 만큼 화려하고 화사합니다. 다만 또렷한 줄기가 없어 전초가 곧추서지 못하고, 잎이 땅바닥을 기듯 옆으로 퍼지기 때문에 다른 송이풀에 비해 왜소해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클로즈업한 꽃 사진에서 드러나듯 갓 태어난 병아리나 어린 새가 부리가 달린 고개를 내밀며 세상을 살피는 듯한 윗입술, 어린 새 생명이 날갯짓을 하는 듯한 아랫입술의 모습은 애기송이풀꽃 특유의 깜찍한 이미지를 잘 보여줍니다.

갓 부화한 어린 새가 세상을 살피는 듯 깜찍한 표정의 애기송이풀꽃들. @사진 김인철
갓 부화한 어린 새가 세상을 살피는 듯 깜찍한 표정의 애기송이풀꽃들. @사진 김인철

애기송이풀은 특히 전 세계적으로 경기 연천과 가평, 강원 횡성, 충북 제천, 경북 경주, 경남 거제 등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입니다. 연천에서 거제도까지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포하지만, 전체 자생지가 10개에도 못 미치는 데다 자생지 개발과 남획 등으로 훼손 가능성이 높아 2012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연천과 가평, 제천의 경우 홍수 등으로 계곡물이 넘치면 바로 휩쓸려 갈 수 있는 저지대인 데다 반경 100~200m 내에 인가와 도로가 있고 인근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행락지도 있어 각별한 보호 조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개성의 천마산에서 처음 발견돼 당시엔 ‘천마송이풀’로 불렸던 데서 알 수 있듯 북한에도 자생합니다.

쑥갓처럼 생긴 이파리를 방석처럼 펼치고 홍자색 꽃을 피운 애기송이풀.@사진 김인철
쑥갓처럼 생긴 이파리를 방석처럼 펼치고 홍자색 꽃을 피운 애기송이풀.@사진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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