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전 회사 팀장은 무능력했다. 내겐 첫 팀장이라 레퍼런스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유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사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팀장이 오늘 조금 늦게 들어가도 괜찮냐고 물었다. 월 말이면 늘 있는 재고 마감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마치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는 확신의 눈빛으로 물론이고 가능하다고 답했다. 팀장은 반갑게 웃으며 저녁 먹고 와서 조금 더 얘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저녁 11시까지 그와 말도 안 되는 엑셀 숫자 맞추기 놀이를 시작했다. 그는 일주일이 된 나에게 재고를 어떻게 나누면 되는지 물어왔다. 당시 나는 모르는 게 내 잘못인 줄 알았다. 팀장은 엑셀을 치면서 이런 건 어떻게 하는지 아냐고 물어 왔다. vlookup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연 매출이 조가 넘는 기업이었음에도, 팀장의 업무 스타일은 모든 게 주먹구구식이었다. 게다가 그는 모든 데이터를 일일이 수기로 기입하고 있어서 틀리는 자료가 너무 많았다. 처음엔 "우리 팀장님이 모든 부분에선 유능하지만 이쪽 분야는 취약하구나"싶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는 팀의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공평하게, 무능했다.

팀원들은 모이면 팀장 욕하기 바빴다. 팀장이 잘 모른다는 게 요지였다. 잘 모르니, 결정도 매번 늦고, 결재라인에 팀장이 있으면 승인도 늦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전화 와서 물어보는 것, 리포팅 능력이 떨어져서 임원들에게 팀이 예뻐 보일 기회를 따 오지 못하는 것이 불만 사항이었다. 나는 참 그의 무능력이 견디기 힘들고 이해되지 않았다.

첫 회사에서 1년을 조금 더 넘게 다닌 후에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그 팀장이 말도 안 되게 많은 일에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는걸.

자료사진 삼성전자 뉴스룸 캡쳐 
자료사진 삼성전자 뉴스룸 캡쳐 

SCM 팀장이란 직함으로, 그는 계약 관리부터 운송, 물류, 재고, 생산, 보험계약 등 모든 분야에서 책임을 맡고 있었다. 이는 한 명의 팀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 넘어서는 일이었다. 말이 좋아 SCM(공급망 관리)이지, 비교적 업무 R&R(역할과 책임)이 잘 나눠져 있는 지금 회사에선 그 팀장의 하는 일이라면 4명의 팀장이 담당한다. 실제로 내가 나온 후 얼마 뒤에 조직개편이 이뤄져서 그 SCM 팀이 3개의 팀으로 조직 개편됐다고 들었다.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뜬금없이 버스기사를 떠올린다. 난폭하게 운전하는 버스 기사를 두가지 입장에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것이 버스기사 개인적인 능력, 성향, 의지로 결심했다고 보는 관점이다. 두 번째는 구조적으로 버스 간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게끔"짜여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만약 이 렌즈로 다시금 처음 만났던 팀장을 조망해 보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그가 유능한 팀장은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의 무능력을 온전히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돌릴 수도 없겠다고.

팀장 무능력 오해 사건 이후로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볼 때면 한 번 인내심을 갖고 그 배경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던 사연이 있을지.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혹은 나도 모르게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이 작동했는지.

이렇게 단순히 개인적인 동기 너머를 생각해 보는 일은 더 많은 사람들 잘못에도 관대해지는 기초 체력이 됐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