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지난 달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간의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정쟁이 지속되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미래를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주장하고, 야당은 굴욕외교라고 맞받는다.

공방의 핵심은 강제징용 피해보상에 대한 일본의 반성 유무와 보상방법에 대한 시각차이다. 야당은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명백한 사과와 반성을 받아내지 못했으면서도,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먼저 한국기업의 돈으로 하기로 한 것을 문제 삼는다.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은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리면서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그동안 일본의 사과와 반성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피해 보상을 위한 기금에 일본의 기업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했으나, 실제 참여한 일본기업이 아직까지는 없다.

사진 JTBC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JTBC 관련뉴스 화면 캡쳐

그점에서 야당의 굴욕외교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야당마저 이를 외교적 성과라고 박수쳐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은 통째로 일본에 대해 배알이도 없는 나라가 된다. 정부 여당은 야당의 공격을 일본에 대해 협력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반면 야당은 “나라를 팔아먹었다”느니 ‘윤완용’이니 하는 말은 자제해야 한다. 한국에 이완용이 환생했다면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쾌재를 부를 일이다. 한국의 야당이 일본 극우의 대변자가 된다는 것 또한 일본에 배알이가 없는 짓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야당은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나라를 김정은에게 팔아먹는 행위라고 공격했다.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는다는 얘기는 김정은에게 팔아먹는다는 말보다 더 어불성설이고,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외교에서 큰 아쉬움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한국이 통 크게 양보를 한다면 이에 병행해서 양보의 대의명분을 살리고 일본과 국제사회에 울림이 있는,일본을 향한 준열한 꾸짖음이 있어야 했다.

기시다 총리의 사과 역시 졸렬했다. 한일관계의 상징이었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 선언이 있던 해 ‘1998년 10월 선언’이라며, 이 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했다.

한반도 식민통치와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1990년 5월 아키히토 천황의 ‘통석(痛惜)의 념(念)’을 비롯, 오부치 게이조, 무라야마 도미이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등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고노 관방장관이 각각 사과와 반성을 표명하긴 했다.

일본의 내각은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현행 일본헌법이 시행된 1945년 이후 78년 동안 59차례 개편이 이뤄져 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35번째 총리로 재임 중이다. 과오를 공식 사과한 3명의 총리의 집권기간은 채 5년도 안 되고 나머지 기간은 식민통치 합리화로 일관한 일본이었다.

그중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간의 한일 파트너십을 다지는 공동선언은 양국 관계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선언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못박지 않은 것에 이어 역대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사족을 붙임으로써 한국의 기대를 저버렸다.

역대 내각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을 때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선 다른 누구보다 일본 우경화 정책의 선봉장이었던 직전의 아베 신조총리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 ‘일본에 당한 한국’이라는 평가는 타당하다.

기시다 총리의 이같은 외교수사에 대해 한 가지 변명거리는 있다. 2015년 박근혜정부에서 위안부문제를 타결지을 때 그는 일본 외무장관으로 한국의 윤병세 외교장관과 함께 합의문서에 서명한 사람이다.

그 합의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백지화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으로 강제징용문제도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무슨 다른 소리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한국에 대해선 ‘혼네(本音:본심)’를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일종의 ‘위안부 트라우마’가 심중에 내재됐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합의 백지화가 강제징용 해법과 함께 외교적 패착인 이유다. 당시 합의는 일본 정부의 예산이 포함된 10억 엔과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갹출한 100억 원으로 기금을 조성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보상재원으로 쓰는 내용이었다.

일본정부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우리로선 최선의 해결책이었음에도 이를 파기했다. 강제징용 해법은 일본 정부 예산도 없이 민간기업의 출연으로 기금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위안부 해법보다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이때 위안부 합의의 백지화를 주장했던 주동세력이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해 써야 할 돈을 유용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였고, 민주당은 그런 공로를 인정해 그녀를 국회의원으로 발탁했으니 아이러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법원의 강제징용 재판을 살펴보자. 한국의 피해자들이 이 사건으로 일본 법원에서 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지만, 국내의 하급심에서도 패소한 이 사건을 2012년 대법원이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은 동키호테 식 판결이었다.

그같은 판결의 주심이었던 김능환 대법관은 “독립운동 하는 심경으로 판결했다”고 했으나 21세기 한국에서 대법관이 독립운동에 나서주기를 기대한 국민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 재판의 결과가 한일관계에 미친 악영향을 생각하면 독립이 아니라 해국(害國)이었다고 할만하다.

그의 판결이 독립운동 비슷하게라도 되었으려면 2018년 이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론 때 소수의견처럼, 원고들에 대한 일본 피고기업들의 배상책임은 인정하되, 배상은 한국 정부가 맡는 내용이었어야 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많은 모순과 허점이 있었지만 그 협정에 근거해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고, 약속한 것이 있는 이상, 국가 간의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그 약속을 파기하는 행위는 신의성실 원칙에 부합한다고 하기 어렵다.

개인청구권이 명백히 인정된다한들 상대가 끝까지 피해보상을 거부할 경우 받아낼 재간도 없다. 원고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죽을 때까지, 아마도 죽고 나서도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무책임하고 외교적 분쟁의 소지만 안은 판결이 ‘독립운동’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자금은 유·무상 5억 달러였다. 이승만 정부에서 요구했던 150억 달러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돈이었으나, 박정희 정부는 그 돈을 포항제철 건설 등 경제개발에 썼고, 그것이 오늘날 포스코라는 세계굴지의 기업이 됐다.

정부가 계획하는 위안부 및 징용보상 기금에서 포스코의 기여는 자연스럽다. 그 시절 여느 후진국들에선 외국의 원조는 부패한 정치집단들의 사리사욕으로 탕진되는 경우가 흔했으나, 박정희 정부는 나라 잃은 동포의 피와 땀과 생명의 대가인 이 돈의 가치를 깊이 새겼다.

청구권 자금이 경제부흥에 잘 쓰였고, 그 돈으로 징용피해자들의 피해 보상을 할 수 있게 됐다면 그것으로 보람이다. 일본 기업에 기금 참여를 요청할 게 아니라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거절해야 떳떳했다는 것이 필자 개인적인 생각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합의를 파기하면서 일본이 낸 10억 엔을 돌려주었다. 피해 할머니 중 일부는 기금에서 보상을 받고, 일부는 안 받아 미결 상태로 되돌려졌다. 강제징용보상 기금에 일본 기업이 출연해도 똑같은 결과가 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이 문제들을 남겨둘 것인가? 상대는 사과를 할 만큼 했고, 줄 것도 줬다는 일본이다. 윤석열 정부의 해법은 미흡한대로 일본의 입장을 받아주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영구적 해결불능보다는 피해자의 용서를 통한 해결을 택한 것이다.

그런 결정은 국민의 지지율 90%의 정부라도 호응을 얻기 쉽지 않다. 30%대 지지의 정부로선 무모할 정도로 용기 있는 결정이다. 이 결정이후 현 정부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관한 국민의 피로감도 상당 수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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