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1 세기 판 ‘페루샤 왕자’

[오피니언타임스=양평 칼럼니스트] 세계 역사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그 전쟁의 승부는커녕 언제 쯤 끝날 것인지도 안개 속이어서 지구촌이 어둠속을 헤매고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역사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심한 홍수가 강산을 휩쓸고 가면 그 뒤바뀐 지형 속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동과 서가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다보니 거기서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거기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포연에 가려진 역사의 현장을 살펴본다.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캡쳐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캡쳐

(1) 21 세기 판 ‘페루샤 왕자’

중동지방을 긴장으로 숨 막히게 했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적대관계가 전격적으로 해소되리라는 뉴스는 한 해 전에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에 못지않은 빅뉴스였다.

아니, 이란과 사우디의 그 앙숙 관계는 전쟁보다 더 무섭게 중동을 옥죄어왔고, 그래서 세계를 답답하게 했다. 차라리 전쟁에는 불꽃같은 종말을 기대할 수라도 있으나 중동의 그 두 지배적 강대국이 으르렁대는 데는 끝이 없어 보여서 였다.

그럼에도 두 거인이 확실하게 악수를 하는 사진을 보는 순간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설화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에, 정확히는 20세기 중반인 1954년에 발표된 ‘페루샤 왕자’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루샤 왕자/눈 감으면 찾아드는 검은 그림자/ 가슴에다 불을 놓고 재를 뿌리는 /아라비아 공주는 꿈속의 공주/오늘밤도 외로운 밤 별빛이 흐른다>

노랫말 특유의 은유 기법을 썼지만 페르시아 왕자와 아라비아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주제다.

그 노래엔 ‘페루샤’로 표현된 이란이나 사우디보다도 한국의 당시 모습이 더 적나라하게 담긴 셈이기도 하다.

외국이 달나라처럼 멀어 보이던 당시의 한국인들에게 중동은 까마득한 나라였고 그나마 알려진 나라가 페르시아(이란)와 아라비아 정도였다. 그래서 전설에서나 나오는 두 나라의 남녀를 연인으로 맺어주고 싶은 심경 자체는 아름답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었다.

그 두 나라의 관계는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설화의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살벌했고, 따라서 두 나라의 왕자와 공주가 사랑을 맺는 것은 적대적 가문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도 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의 종교는 같은 이슬람교라고는 하지만 타종교보다도 더 원한이 쌓이기도 한 수니파와 시아파여서다. 더욱이 페르시아는 민족도 아랍 족이 아니라 ‘유럽인종’으로 불리기도 하는 아리안 족이다.

‘페루샤 왕자’에는 그밖에도 큰 착오가 있었다. 아라비아 공주가 마음대로 사랑을 할 수 있는 낭만적 여성처럼 묘사된 점이다.

아라비아 공주는 공주이기에 앞서 여자고 아라비아의 여자들은 ‘낭만’이라는 단어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다. 1977년에 벌어진 미샤 알 빈트 파드 알 사우드 공주의 비극이 이를 말해준다. 제4대 국왕 칼리드의 형인 무함마드 왕자의 손녀이니 왕의 조카인 미샤 공주는 레바논 유학중 새르라는 한 청년을 좋아해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의 결혼을 거부했다. 남녀는 유럽으로 도피하려 했으나 공항에서 사우디 비밀요원들에게 붙들려 끌려왔다.

끌려온 공주는 연인이 보는 앞에서 총살당하고 뒤이어 연인은 참수형을 받았다. 미샤가 공주로써 받은 혜택은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는 형을 받지 않고 총살을 당한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도 활발한 해외진출로 두 강대국의 대결이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차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도 남의 일 같지 않게 한국은 당사국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오랜 세월을 한 나라로 살아온 두 나라가 불구대천의 앙숙이 돼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오랜 앙숙이던 이란-사우디의 화해는 너무 대조적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세계사의 풍경을 엄청 뒤바꾸리라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화해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물론 이란-사우디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 실마리는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찾을 수 있다.

사우디의 경우 오일달러에만 의존하던 경제구조를 탈석유화 해 문화 관광 비즈니스 강국을 지향하려다 보니 이란과의 우호로 평화를 얻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사우디는 까마득히 오랜 세월 미국과의 밀착으로 안보를 보장받아 왔으나 이제 그런 시대가 지난 셈이다. 2019년 9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후티(안사룰라)가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석유시설을 공격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로 인해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한동안 절반으로 줄었으나 미국이 지원을 강화한 기미는 없었다.

더욱이 관광도시를 꿈꾸며 네옴시티 같은 초현대적 신도시 건설에 착수한 사우디로서는 로켓포 한발만 터져도 치명적인 처지다.

이란도 사우디와의 화해를 갈구한 것은 마찬가지다. 밖으로는 미국의 경제 제재에 몸살을 앓는데다 안에서는 히잡 시위 같은 사회문제가 널려있어서다.

그런 판에 중동에서 최강의 세력을 행사하던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바쁜데다 자국 석유의 양산으로 중동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무관심한 자세였다.

그 자리를 중국이 잽싸게 차지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사자가 아니라 중재자로써 여유를 부리던 중국이 중동에서도 역사에 남을 화해를 중재한 것이다.

지금까지 중동에서 질서를 잡는 것은 미 해군 제5함대로 상징되는 미국으로 비쳐 왔으나 그 미국도 모르는 가운데 중국이 두 나라를 악수시킨 것이다.

그런 중국의 존재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튀어나온 거인처럼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그 거인은 설화에서처럼 쉬이 사라지지도 않은 채 중동에서 그 거구를 과시할 것이다.

한마디로 중동세계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서 팍스 차이나 시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세계적 판도의 팍스 아메리카나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란과 사우디의 화해 발표에 미국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정부 관계자들이 산발적으로 보인 반응은 그게 대단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의문스럽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롭지 않을 수는 없다. 미국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중동의 무대가 얼마나 딴판으로 바뀔 것인지는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중동에서 미국의 분신 같은 존재인 이스라엘의 처지는 첫눈에도 벼락을 맞은 듯한 모습이다.

이슬람 국가들에 둘러싸여 답답한 이스라엘은 이란-사우디의 대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그것이 좌절된 것이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및 바레인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을 맺기도 해서 아쉬움이 더 크게 됐다. 유태교와 기독교 및 이슬람교가 공통의 조상으로 섬기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빈 이 협정을 통해 이슬람의 포위를 벗어나는 것은 물론 거꾸로 이란을 포위하려던 구상이 좌절된 셈이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사우디 및 이란 세력이 엉킨 ‘삼국지 싸움’에서 이란 세력을 고립시키려는 순간 오히려 2:1로 몰리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 협정은 이란만이 아니라 중국을 포위하려던 미국의 구상과도 연결된 것이니 팍스아메리카나에도 흠집을 남긴 셈이다.

사우디는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적대하며 국교를 사실상 단절했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11년 만에 대사관을 재개하기로 합의한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그동안 단절됐던 항공편을 재개하기로 하기도 했다.

미국이 매년 13억 달러의 군사자금을 지원하는 이집트가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에 로켓 4만 발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설은 그보다도 더 쇼킹한 이야기다. 그 소식은 최근에 유출된 미국 정부의 기밀 문건에 담긴 것으로 이집트 측은 즉각 부인했고 미국 측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미국으로써는 개운치 않은 소문이다.

우선 그런 설이 나도는 자체가 그렇고 미국이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지도 않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 모든 것은 중동 국가들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커졌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석유 밭’처럼 비쳤던 사우디가 이제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과 가까이 해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동은 그동안 석유나 퍼내면서 산 것이 아니라 그 석유를 발판으로 주민들의 수준도 고양되면서 새로운 의미의 경제대국으로 변신하려 하는 것이다.

지난달 사우디의 제다에서 열린 포뮬러 원(F1) 그랑프리에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경영진이 여럿 참석한 것도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2018년 사우디의 반(反)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로 사우디 왕실과 관계를 끊었던 실리콘밸리가 '돈줄'이 말라붙자 다시 중동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VC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경영진을 보내 협력관계를 구축하려 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이를 두고 아부다비의 한 VC대표가 ”2017년만 해도 우리가 그들을 찾아 샌프란시스코에 갔는데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찾아 온다“고 한 것도 어딘지 운동장이 바뀐 느낌을 주는 말이다.

한마디로 중동의 정세는 친미와 반미라는 2차원의 진행에서 중국이 끼어든 데다 산유국들의 전반적 국력이 강해짐에 따라 다원적 대결과 협력의 세계로 진행하고 있어 그 앞날은 누구도 짐작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이스라엘에 최강경의 극우 정권이 들어서 인접국들에 공세를 퍼붓는 것도 어떤 식으로 잠잠해질지 예측이 어렵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 되는 가도 큰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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