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닷컴=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  “SKY 다음을 생각했어야 했어요.”

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의 말이었다. 졸업해야 했지만, 졸업하게 되면 학생으로서 완전히 마침표를 찍는 것이어서 졸업을 유예했다. 학생에게는 다음 문장이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은 아마존 한국 지사에 합격하고도 입사하지 않았다. 합격 직후 충족된 자존감에 기뻤지만, 입사를 앞두며 커지는 감정은 공포라고 했다. 3학년 때 인턴 경험을 하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음을 확신했기에 그렇게 살기 겁났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날이었다. 우리는 이날 현실 공간에서 처음 만났다. 이 학생과는 비대면으로만 수업했었다. 합격 후에도 간간히 SNS로 서로 소식을 관음하다가 드물게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우리가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서울에 갈 일은 없었고, 가더라도 그 학생을 따로 만날 명분이 희박했고, 서울에서 대구는 놀러 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청주 본가에 있다가 굳이 대구로 왔다. 부산에 가는 길에 들리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내가 목적이었다.

자료사진 JTBC 드라마 'sky캐슬' 방송화면 캡쳐
자료사진 JTBC 드라마 'sky캐슬' 방송화면 캡쳐

비정상적인 이벤트가 필요할 정도로 그 학생의 상황은 비정상적이었다. 본가에서 요양 중이라고 하는 말은 취업 준비를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요양이었다. 응급실에 갈 정도로 공황장애가 와서 생존을 위해 본가에 내려 왔다고 했다. 3개월 간 병원 치료를 받았고, 대구에 온 그날, 요양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 학생의 친구들은 자신의 고민을 배부른 한탄으로 단순화 했지만, 나는 학생의 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같은 스물여덟 살, 내 인생에 가장 형편없던 나이였다.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88만 원 세대의 막내로서 N포 세대를 시발했다. 사회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공황을 겪지 않은 것은 일찌감치 우울에 대한 항체를 구성한 덕분이었다. ‘쓸모없는 나’를 견디다가 우여곡절 끝에 면접까지 본 학원에서 함께 일하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기뻐했고, 곧 비참해졌다. 그 학생이 느꼈던 것과 같은 성분의 공포가 첨가되어 있었다. 내 스스로 나를, 내가 원하지 않는 인생으로 처분했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이 첫 출근의 긴장감으로 닥쳐왔지만 내 살 길은 내가 원하지 않는 출근뿐이었다. 이후 펼쳐진 자포자기의 평화에 그럭저럭 잘 적응해서 이제 밥은 먹고 다녔다.

내 사회초년생의 경험이 그 학생의 공황에 공감하는 실마리가 되었지만, 우리의 우울은 다르게 이해되어야 했다. 내 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그러했듯, 현재 사회초년생은 이전 세대보다 ‘자아’ 개념이 강했다. 집단주의 문화권 개발도상국 하위계층에서 자란 나는 ‘구매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하지 않고, ‘해야 하는 것’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개인주의문화권 선진국 중상위계층에 자란 사회초년생들은 ‘구매할 수 있는 것’을 욕망하고, ‘해야 하는 것’에 ‘왜?’를 따져 보는 것이 당연했다. 자아를 ‘불가능성’으로 경험해온 나는 취업의 난망함이 계단식 포기로 닥쳐왔다면, 자아를 ‘가능성’으로 경험해온 현재의 사회초년생들에게 취업의 난망함은 번지점프식 좌절로 체감되었을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보고 자란 사회초년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쟁탈전의 가속도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 속도에 휩쓸리는 동안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속도의 정점에 이르러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대답하지 않은 책임을 한꺼번에 져야 한다. 그때서야 목격한다. 사실은 방향이 없는 속력으로 살아왔을 뿐이다. 취업한 주변 사람과 자신의 격차에서 오는 열등감은 무겁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답하지 못해서 다음으로 나아갈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 속에서 공황이 올 만도 했다.

대부분 학생과 학부모님들은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에 무감각한 편이다.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거나 대충 먹고 살 수만 있으면 괜찮게 여긴다. 의대를 노리는 학생이 아니라면 고려대 경영학과 정도(?)면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도 생각해야 한다고,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유예생은 자신의 사연을 ‘애기들(중고등학생을 그렇게 불렀다)’에게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꿈이 있는 ‘애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 영상 제작이 꿈인 애기 하나는 IB 대신 일반고로 진학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꿈인 애기 하나는 수학에 몰입했다. 반짝이는 재능들이 평범한 우등생으로 전락하는 사태가 안타까웠다. 학부모 의지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내신과 선행에 몰입한 평범한 중학생들도 안타깝다. 성적은 자기 능력 찾아가기 마련이므로 당장의 내신 몇 점에 목매는 것은 의미 없다. 더군다나 ‘애기’들이 사회에 나갈 때는 챗GPT와 공존해야 할 시대다. 살던 대로 살고, 남들처럼 살면 당장은 별일 없어 보이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지금, 10년~15년 후의 공황을 적립 중은 아닌지 합리적으로 따져 볼 때다. 이 학생도 고려대 합격 이후, 자신의 별일 없음을 의심치 않았다고 했다.

노트북 속에서 나온 손님에게 내가 해준 말은 아마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타인으로부터 받는 지지로 자신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취업 준비생에게는 (부끄럽지만) 뭔가를 이룬 사람이었다. (민망하지만) 그 학생에게 신뢰할 만한 어른이었을 것이다. 사적 관계와 공적 관계 사이에서 익명으로 포장된 권위가 건넨 지지와 확인 그리고 공감과 응원이, 공황의 마침표에 담겼으면 좋겠다. 이번 주에 있을 모 회사 면접으로 새 문장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뭐든 쓰다 보면, ‘나’를 만날 것이다. 나는 그러했고, 지금은 단순히 사교육 강사가 아니라 나답게 살아내는 중이다. 그날도 나는 그 학생 덕분에 ‘쓸모 있는 나’가 달달했다. ‘나’를 찾으러 산티아고까지 순례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영(靈)적 허영보다 중요한 건 내가 살 비비는 현실이다. 공황의 3개월은 세상과 부딪쳐 얻어낸 최초의 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너의 이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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