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경제기행]

자동차는 생필품입니다. 필자 주거지 인근 면사무소 소재지 두 곳에 신발가게는 없어도 자동차 서비스센터, 주유소는 대여섯 됩니다. 대중교통망이 잘 구비된 서울에도, 고속도로에도 차량이 넘쳐납니다. 자동차가 처음 대중화된 곳은 미국인데, 인구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교통수단이 중요했지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왜 미국의 자동차·항공기산업이 발달했는가를 잘 설명합니다. 등록대수 규모로 보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동차의 나라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입니다.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자동차가 주요 방편인 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근래 차량 생산 대수로 보면 중국이 미국보다 많지만, 미국의 국내 판매 대수는 생산 대수보다 약 2백만~3백만 대 많습니다. 세계 자동차 수입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는 미국은 제일 큰 시장이자 경합장으로 근래 한국산 차들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요. 그래서 미국 정부의 자동차 관련 정책은 자동차 생산국들의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아 미국의 자동차 규제는 안전성 및 효율성 제고, 그리고 매연 감소를 통한 공기질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안전 관련 조치의 예로는 일찍이 1960년대 안전벨트 설치 의무화, 2026년부터 시행이 예정된 음주운전을 막기 위한 시동장치 설치 등이 있습니다. 효율성은 연비로 대변됩니다. 과거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탱크 같은 큰 승용차들의 거친 추격, 충돌, 폭발 장면은 약방의 감초였죠. 그런데 사실 이런 차들은 기름을 먹는 하마였습니다.

낮은 연비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임이 드러난 것은 1970년대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이웃 아랍국가들 간 전쟁이 터지면서였죠.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편들었던 미국과 서방국가들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원유 공급을 크게 줄이자 휘발유 가격이 몇 달 사이에 서너 배 폭등했습니다. 그 후 이란이 이슬람 혁명으로 격변을 겪으며 석유파동이 재연되었습니다. 연비가 낮은 미국산 자동차들이 애물단지 신세가 되고 작고 연비가 높은 일본차 수입이 크게 늡니다. 아직도 일본은 미국의 최대 자동차 수입국입니다. 연방정부는 1970년대 중반 의무 연비를 정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 평균 연비를 높여오고 있습니다.

공기질 개선은 오래전인 1960년대 중반에 두 주요 법이 제정되며 자동차 배출가스를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관심사는 배출가스로 인한 교통량이 많은 도시지역의 대기 오염을 줄이자는 것이었죠. 구체적으로 각 자동차사(社)가 한 해에 판매하는 모든 차량들의 배출가스를 합한 값의 상한선을 정부(환경보호국, EPA)가 정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적용됩니다. 1970년대 초부터 매연 배출이 적은 무연 휘발유 사용이 일반화된 것도 이 규제의 한 결과입니다. 특히 CAA(청정공기법, Clean Air Act)는 최근 바이든 정부의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상전벽해를 예고했습니다. 이달 초 발표된 조치는 전술한 자동차사별 상한 값을 아주 낮게 설정해 자동차 생산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이 영(0)인 전기차를 많이 팔아야 달성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EPA는 2032년까지 승용차 판매량의 3분의 2, 트럭인 경우 4분의 1이 전기차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규제 위반시 벌금 등 불이익 조치가 상당히 커 구속력이 대단합니다. 2010년대 중반 독일의 대형 자동차사 폭스바겐이 자사 디젤차에 불법적인 장치를 달아 미국의 CAA 시험을 통과한 게 드러나며 세계 각국에서 엄청난 스캔들이 되었던 일이 있었지요.

온실가스 감축에 자동차가 왜 중요한지는 미국의 전체 에너지 사용 내역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최근 뉴욕타임스 기사는 전문 기관의 자료를 이용해서 아래 그림과 같이 에너지 사용 주체를 운송(Transportation), 산업(Industrial), 상업(Commercial), 주거(Residential) 4개 군(群)으로 나누어 각 군이 얼마나 사용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산업과 상업은 대략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간주하면 됩니다. 2021년 전체 사용량(63.1천조 B.T.U) 중 약 40%가 운송부문에서 쓰였는데,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반을 넘습니다. B.T.U는 영국 열량단위로 칼로리와 유사한 에너지 측정 단위(1B.T.U=0.252kcal)입니다. 2021년 현재 승용차 중 전기차 비중이 1%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기차 판매를 대폭 늘려 2050년에는 이를 89%까지 높인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장기 계획입니다.

주: New York Times, 2023년 4월 14일,A key part of America’s plan to slash carbon emissions에서 캡처.
주: New York Times, 2023년 4월 14일,A key part of America’s plan to slash carbon emissions에서 캡처.

운송부문 내에서 트럭, 그리고 산업, 상업, 주거 군에서도 전기 에너지 사용을 늘린다는 구상이지만 승용차 비중이 단연 제일 중요한 것이지요. 앞서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현재 휘발유를 태우는 내연기관차는 발생하는 에너지의 약 30%만 차량구동에 쓰이고 나머지는 열로 손실된다고 합니다. 전기차가 이 비중이 약 80%나 되기에 계획대로 교체가 이루어지면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도 크게 줄이는 효과가 기대됩니다. 바이든 정부는 2050년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넷제로(Net zero), 즉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번 발표된 조치는 일종의 중간 목표인 것이죠. 2050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치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2032년 목표만 달성해도 현재 미국 전 산업이 2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가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니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각종 장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 관련해 했던 약속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구체적인 방안을 공표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라는 큰 틀의 한 부분으로 지급되는 전기차나 배터리 보조금의 손익계산에는 열심이나, 막상 우리의 온실가스 감축에는 손 놓은 듯한 인상은 오해이길 바랍니다. 자동차 생산, 경제 수준, 온실가스 배출 정도 등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이 문제의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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