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 쉼표]

“요즘 사람 나이는 옛날 사람과 똑같이 쳐서는 안 되고 살아온 햇수에 0.7을 곱하는 게 제 나이다.” 소설가 고 박완서가 내놓은 요즘 나이 계산법입니다. 여든이면 ‘80×0.7’ 하니 쉰여섯 살, 일흔은 70X0.7로 마흔아홉 살입니다. 내 나이를 계산해 보니 서른여덟입니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왠지 30대 같은 기분이 들어 혼자 빙그레 웃어 봅니다.

“아줌마, 뭐 좋은 일 있나 봐요?” 큰딸아이가 짓궂은 표정으로 말을 겁니다. 요즘 누군가 “아줌마” 하고 부르면 저절로 그쪽을 보게 되는데, 그런 모습을 본 아이가 툭하면 아줌마라고 놀려댑니다. 하기야 50대 중반이니 아줌마로 불려도 자연스러운 나이입니다. 매일 아침 요가로 군살을 빼고, 밤마다 이것저것 찍어 바르며 주름을 없애려 노력해도 남들 눈엔 영락없는 아줌마일 테니까요.

그런데 아줌마라고 다 내 맘 같진 않은가 봅니다. ‘아줌마’라는 호칭 때문에 큰일이 터졌습니다. 한 달 전 수인분당선 열차 안에서 ‘아줌마’라는 말에 기분이 나빠 흉기로 승객 세 명을 다치게 한 여성이 구속기소됐습니다. 30대 중반인 여성은 자신을 업신여겨 아줌마라 불렀다고 받아들였답니다. 세상에나! 어쩌다 아줌마가 이토록 험한 말이 되었을까요.

사진 JTBC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JTBC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동안 떠돌았던 ‘요즘 아줌마들에 대한 정의’도 한몫했을 겁니다. 하나같이 억척스럽고 예의 없는 모습입니다.

△모임에서 ‘언니, 언니’ 하면 아가씨, ‘형님, 형님’ 하면 아줌마 △버스나 전철에서 주위를 살피고 앉으면 아가씨, 앉고 나서 살피면 아줌마 △운전할 때 선글라스 끼면 아가씨, 흰 장갑에 챙 달린 모자 쓰면 아줌마 △하이힐 신고 뛰어다니면 아가씨, 운동화 신고도 잘 못 뛰면 아줌마 △‘아줌마’라고 불렀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아가씨, 부른 사람 째려보면 아줌마 △의자에 앉았을 때 다리를 꼬면 아가씨, 한쪽 다리를 접어 올리면 아줌마 △목욕탕에서 수건을 몸에 두르면 아가씨, 머리에 두르면 아줌마

‘아줌마와 조직폭력배 공통점’이라는 우스개는 아줌마 이미지에 괴팍한 기질까지도 더합니다. “우르르 몰려다닌다. 형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칼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이따금씩 애들을 손본다. 가끔 큰집에 간다….”

이쯤 되니 아줌마의 어원이 궁금합니다. 국어학자들에 따르면 ‘아줌마’는 옛 문헌에 ‘아자마’로 나와 있습니다. 아자의 '자'는 모음이 'ㅏ'가 아니라 아래아(·)입니다. 아자마가 ‘아주마’를 거쳐 오늘날 아줌마가 됐습니다. ‘아자마’는 우리말 ‘아자[小·작다]’와 한자 ‘모(母)’의 결합어입니다. 아자는 송아지 강아지 망아지 등의 ‘아지’를 떠올리면 ‘어리고 작은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아자마는 요즘 말로 ‘작은어머니’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제 친족인 작은어머니를 뜻하는 건 아니고 호칭 체계상 어머니 항렬의 여성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고모 이모 외숙모 등이 해당됩니다.

아주머니 역시 아자마에서 나온 말입니다. ‘머니’는 할머니, 어머니의 ‘머니’처럼 여성에게만 쓰이는 말입니다. 아주머니는 아줌마보다 품위 있게, 아줌마는 아주머니보다 친근하게 들립니다. 마치 ‘어머니’와 ‘엄마’의 차이처럼.

수인분당선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여성은 지난 18일 열린 1차 공판에서도 자신의 특수상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줌마가 아니라고 얘기했는데도 아주머니가 계속 말을 해 화가 나서 회칼을 사용했다”며 ‘아줌마’ 호칭에 대한 불쾌함만 거듭 드러냈습니다.

‘아줌마’ 소리가 듣기 싫어 흉기까지 휘두르는 세상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아줌마들이 나서서 긍정적 이미지를 키워야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활기차고 당당하되,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또, 누군가를 처음 대할 땐 말 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호칭은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기분이 좋아야 합니다. 나는 정겹고 친근한 아줌마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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