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집 앞 대형마트가 리모델링을 한다고 잠시 문을 닫았다. 줄어든 쇼핑객만큼 한산한 집 앞 거리에는 플래카드들이 내걸렸다. 절규하듯 외치는 플래카드들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마트 직원은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리모델링 목적이 인원감축? 일방적인 강제 타점 발령 중단하라!’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을 연 마트 안에는 리모델링 전보다 훨씬 더 줄어든 적은 수의 직원들만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고, 캐셔가 있던 자리는 키오스크가 대체하고 있었다. 키오스크 주변에는 ‘계산은 키오스크가 아닌 점원에게 와서 해달라’는 쇼핑객들을 향한 간곡한 노동자들의 요청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 갔는지 한탄했던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 많던 노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많은 업무는 그럼 다 누구에게로 가는가?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올라갔는가? 키오스크로 계산하면 절감된 인건비만큼 물건의 가격을 깎아주나? 도대체 노동자들은 어디로 내몰렸는가?

사진 KBS 관련방송 화면캡쳐
사진 KBS 관련방송 화면캡쳐

프랑스의 문화연구가인 롤랑 바르트는 ‘현대판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신화는 당연시되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어떠한 것을 믿는 데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을 ‘신화’라고 롤랑 바르트는 정의했다. 그렇다면 현대에 와서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신화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호(sign)는 기표(sgnifiant)와 기의(signifie)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신호등의 파란불은 겉으로 드러나는 초록색 ‘기표’와 초록색일 때 건너라는 사회적 약속인 ‘기의’가 합쳐져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 신호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현대 물질문명이 고도화됨에 따라 이러한 기호를 사람들이 인식함에 있어 오류가 발생하게 되었다고 인식하고, 그것을 잘못된 현대판 신화라고 보았다. 현대의 모든 기호는 특정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한다. 어떠한 기표가 반드시 어떠한 기의를 동반하는 것이라고 특정 집단에 의해 세뇌화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프로레슬링을 대표적인 현대판 신화의 예시로 제시하는데, 짜고 치는 레슬링 판에서 잘생기고 몸도 좋은 ‘영웅의 모습’을 한 선인이 못생기고 위협적인 ‘악인의 모습’을 한 사람을 해치우는 걸 보며 대중들은 희열을 느끼고,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겉모습을 통해서만 선인과 악인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기표가 반드시 특정한 기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잘생겼다고 영웅, 못생겼다고 악당이 아닌 것처럼, 핑크색이 반드시 여아의 것이 아닌 것처럼, 좋은 학교 성적이 좋은 성품을 명시하는 건 아닌 것처럼, 사회적인 맥락상 당연시되어오는 것들 중에는 일반화의 오류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는 특정 기득권이 유지하고픈 사상을 전파하고 해당 계층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롤랑 바르트의 ‘현대판 신화’인 것이다.

바야흐로 AI의 시대다. 인공지능은 키오스크 등의 형태로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있고,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인공지능이 삶의 더 많은 부분을 대체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일상화되는 것의 유익은 무엇인가? 이 지점에서 현대판 신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보급화/일반화가 당연히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일상 도입은 사람을 사라지게 한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한 대책이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이는 AI에게 일자리를 내어준 노동자들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는 없는데, 기술은 발전한다. 따라갈 능력이 없는 시민을 뒤로하고, 기술을 앞세운 급속한 발전을 명목으로 대기업은 앞서 나간다.

마트 노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청년의 입장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머지 않아 AI가 할 수 있게 되고,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어질 거라는 건 다소 끔찍한 공포다. 업무처리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AI를 다룰 줄 알고, AI와 소통하는 능력이라는 건 기괴하기까지 하다.

기술의 발전은 한계비용을 줄이고, 생산비용과 인건비를 절감하고, 빠른 일처리와 적은 투입으로 효율성을 높인다. 그러나 그 기술의 발전, AI의 도입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만 만드는지는 재고의 여지가 필요하다. “AI = 좋은 것”이라는 일종의 공식과 사회적 도입은 때로는 많은 사람의 삶의 터전과 일자리를 앗아가고, 삶이 윤택해지는 사람들의 뒤로 삶이 어두워지는 사람들의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다. 빨라지는 기술의 발전만큼 그에 대한 성찰과 사회적 대안이 마련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은 언제나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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