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들의 아프리카 ‘미소(smile)전쟁’

수단 군벌들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이제 내전으로 치닫는 그 사태가 싸움구경을 즐기는 호사가들에게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젖히고 올해의 볼거리로 자리 잡으려 한다.

전화를 피해 수단을 빠져나오려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2차 대전의 서막을 장식했던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떠오르게도 했다.

그러나 올해 ‘아프리카 전쟁’은 수단 내전보다 훨씬 먼저 시작된 셈이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세계의 강대국들이 아프리카에서 전에 보기 힘든 유형의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그 싸움은 ‘미소(smile)전쟁’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붙일 만하다.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강대국들. 그런 나라에서도 근엄하신 정상급 고위층들이 아프리카로 몰려와 상냥하게 웃어 보이는 시합을 벌이는 판이니 별종의 유니버스 대회 같은 것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면 그 싸움은 지난 연말에 이미 시작된 셈이다.

지난해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아프리카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49개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을 초청해 미국이 향후 3년간 55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지원 액수도 엄청나지만 보다 눈길을 끈 것은 미국이 아프리카 정상들을 그처럼 대규모로 불러들인 정상회담 자체였다.

냉전이 한참일 때도 그런 정상회담은 볼 수 없었다.

미-아프리카 정상회담은 8년 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도 한번 열린 적은 있으나 고작 4개국 정상을 초청했었다. 더욱이 흑인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 정상들과 만난 것이어서 크게 눈길을 끌 수는 없었다.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K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그러다 오바마의 뒤를 이은 도널드 트럼프가 2018년 신년 초에 “아프리카는 거지소굴(shithole)”이라고 특유의 막말을 해서 미국과 아프리카는 인연이 다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판에 보인 미국의 환심이라 세계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그런 아프리카 모시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3년 새해초인 1월20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11일간 세네갈 잠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미국 재무장관이 연초에 아프리카를 방문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방문 중 줄곧 함박웃음을 웃는 옐런의 표정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평소 옐런의 모습과는 어딘지 대조적이었다. 옐런의 인상은 ‘음울한 학문(dismal science)’을 전공한 경제전문가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좋게 보면 심각한 표정이고 심하게 말하면 사나운 시어머니 같은 인상이기도 했다.

그런 옐런이 시종 미소를 지으며 바이든이 약속한 550억 달러의 뒤처리에 매진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3월 중순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에티오피아를 찾아 3억3천만 달러(4370억원)의 인도적 지원을 발표하고 나서 미 국무장관으로써는 최초로 서아프리카 내륙국 니제르를 방문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에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가나 탄자니아 잠비아 3국을 방문해 선심공세를 폈으니 ‘거지소굴’을 낙원으로 만들 기세다.

미국이 그처럼 아프리카에 미소와 달러를 쏟는 배경을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프리카에서 날로 세력을 떨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1991년부터 30여 년간 외교 부장(장관)이 매년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것으로 외교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모처럼 미국 고위층이 총동원된 올해의 아프리카 외교도 중국보다는 한 발 늦은 셈이었다. 아직 설날 기분도 가시지 않은 1월4일에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나이지리아 콩고 보츠와나 탄자니아 세이셸을 순방했던 것이다.

이에 질세라 전쟁에도 바쁜 러시아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월 23일 남아공을 방문했고 다음 달에는 두 나라와 중국이 참가한 해상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측의 지휘탑으로도 바쁜 미국이 왜 갑자기 멀고 먼 아프리카에 열을 올릴까.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장하려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30년이나 되지 않는가.

열강의 그런 아프리카 각축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우선 서방측이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수입을 제한하거나 중단함에 따라 그동안 외면했던 아프리카의 석유가 요긴하게 됐다.

서방은 아프리카의 석유를 탐내어 열심히 개발했으나 세계가 화석 연료로부터 전환을 가속화하면서 생산량을 늘리지 말도록 종용했었다.

그러다 유럽에서 가스 대란이 발생하자 다시 아프리카 석유에 관심이 돌아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삼 아프리카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에 눈길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유엔총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 투표에서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절반 정도인 28개국만이 찬성한 것이 그렇다. 물론 그 결의안은 압도적으로 가결됐으나 지난날 서방에 굽신거렸던 아프리카의 그러한 모습은 서방세력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지금껏 아프리카의 자원을 욕심내면서도 그곳의 새까만 주민들은 경멸해 왔던 서구 세력들의 자세가 변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 아프리카는 ‘제3 시대’를 맞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식민지 쟁탈에 광분한 서구세력이 아프리카 지도를 놓고 피자처럼 직선으로 쪼개어 나누어 먹던 시기를 제1 시대로 치면 20세기에 들어와 마르크시즘까지 가세한 해방전쟁으로 시끄러웠던 제2 시대를 거쳐 이제 아프리카인들이 전보다 안정된 분위기에서 나름의 안목으로 국가를 이끌어 가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실은 그런 기류가 오래 전부터 형성돼 오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확연히 드러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 벌어진 수단의 내전은 그런 강대국들의 미소 전쟁과 딴판으로 보이나 근원에서는 다 같은 ‘새 아프리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그 내전의 향방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도 미국 등 서방세력의 약화에서 비롯된 셈이다. 여기에다 내전의 한 쪽 군벌인 신속지원군(RSF)은 러시아 용병 바그너와 오랜 결속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그런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 아프리카에서 서방의 세력은 오래 전부터 약화됐고 그 과정은 진행 중이다.

서방세력은 아프리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각각 독특한 전략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 아프리카의 오랜 기득권 세력인 서방측에 비해 국공내전이 끝난 뒤인 1950년대에야 아프리카에 접근했으니 가난한 후발 세력이었다.

하지만 그 몇 년 전까지 제국주의 침략세력(일본)과의 싸움을 벌인 중국은 식민지배 세력인 서방측에 비해 주민들과 끈끈한 연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착취에 습관이 된 서방세력에 비해 중국 기업들은 활달한 투자로 이제 아프리카 대륙 전체 산업생산량의 약 8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사와 안보면의 유대도 강화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중국의 아프리카 무역은 2540억 달러로 미국(643억 달러)의 4배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중국의 아프리카 전략을 두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은 심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를 넘어 세계적으로 추진하는 1대1로 사업이 그 주 표적이다. 그 사업이 거쳐 가는 국가들의 공사과정에서 중국에게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빚잔치’니 ‘부채 폭탄’ 등 표현도 여러 가지다.

그래서 이 사업은 곳곳에서 차질을 빚기도 한다. 그럼에도 중국이 이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사업을 폄하하는 서방 언론의 과장보도와는 달리 현지인들의 반응은 반대보다 환영이 훨씬 강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사업이 큰 장애 없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일대일로로 추진되고 있는 많은 사업들은 해당국가가 오래 전부터 의향을 가지면서도 자본 등의 문제로 추진하지 못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중국이 부채 문제에서 고리대금업자처럼 행동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도 깔려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2000년 이후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채 약 100억 달러를 탕감해준 바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마디로 1대1로 사업은 적어도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훼손하기 보다는 증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저지할 세력은 없다.

한편 러시아의 아프리카 접근은 중국과는 딴판이지만 서방세력에게 곤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냉전시절 초기부터 세계 공산주의의 본산인 소련은 저절로 아프리카 해방전쟁의 후견인 격이 됐었고 그런 역사는 소련이 해체돼도 러시아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앞서 2019년 10월24일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아프리카 54개국의 대표들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것이다.

더욱이 소련시절 아프리카에 무기를 공급해온 전통 등이 우여곡절을 거쳐 러시아 용병의 출현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 일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소치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 측은 무기들을 중점적으로 전시해 보였다.

그 용병이 등장하는 나라에서는 서방 세력이 힘없이 물러나고 있다. 주로 서아프리카에서 기세를 떨쳤던 아프리카 식민세력의 원조 격인 프랑스가 그 대상이다.

말리 세네갈 카메룬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차드 등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1960년대에 독립했으나 오랜 동안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프랑스가 세력을 잃어가면서 러시아 용병에게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프리카에서 미소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 중 러 등 강대국들은 태생적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는 인상이다.

아프리카를 노예 공급지 정도로 여겼던 미국은 국제정치상의 필요에 따라 미소를 보이면서도 ‘태생적인 입버릇’ 때문에 곧잘 ‘거지 소굴’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잔인한 식민정책을 편 것으로 악명 높은 벨기에가 그 피해자들인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국민들에게 보인 반응도 그런 것이다.

벨기에는 1885년부터 1960년까지 민주콩고를 지배 했으며 그 초기 23년에 해당하는 레오폴드 2세 시절 약1000만 명이 살육과 기근 등으로 사망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원주민들의 손목을 자른 것이었다.

벨기에는 이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다가 민주콩고 독립 60주년을 맞아 필리프 국왕이 ‘유감’을 표시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민주콩고를 방문해서도 ‘유감’을 표시했을 뿐 ‘사죄’를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소국이라도 유럽의 국왕님이 어찌 거지 소굴에다 사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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