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하늘은 쑥을 키우고, 백양더부살이는 그 쑥에 붙어살고…
학명은 Orobanche filicicola Nakai ex Hyun, Y.S.Lim & H.C.Shin 열당과의 여러해살이 기생식물,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쑥은 우리와 참 친숙한 풀입니다. 우선 단군신화에 쑥과 마늘을 먹은 곰이 여자로 변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등장하지요? 실생활에서도 쑥은 쑥떡, 쑥국, 쑥차 등 각종 먹거리와 약재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고 흔히 만날 수 있는 그 쑥이 우리의 생물 다양성을 넓히는 데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종인 백양더부살이와 영양분을 나누며 생명의 은인이 되는 것이지요.
‘더부살이’란 말이 이름에 든 데서 짐작되듯, 독자적으로 살 수 없고 제삼자인 숙주(宿主)에 철저히 그 생명을 기대는 기생식물입니다. 줄기는 물론, 퇴화해 흔적만 남은 잎 등 식물체 어디에도 녹색의 엽록소가 없어 아예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영양분인 탄수화물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부살이의 방식은 숙주인 쑥의 뿌리 안에 자기의 뿌리를 집어넣어, 쑥이 빨아올린 물과 쑥이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을 빼앗아 자기의 뿌리와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우는 식입니다.
5월 무성한 연두색 풀숲에 청보라색 꽃방망이가 불쑥 솟아있습니다. 자세히 살피니 곧추선 높이 10~30cm의 황갈색 꽃대에 푸른 보라색 통꽃 10~30개가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달렸습니다. 통 모양의 꽃은 입술처럼 위아래로 갈라집니다. 수술은 4개이고, 1개인 암술머리는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적게는 한두 개, 많게는 열 개 넘게 무리를 지어 올라온 꽃대는 쑥 등 초록색 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전북 백양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백양’이란 앞머리가 붙은 백양더부살이.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1928년 백양사 근처에서 단 한 개의 표본을 채집해 도쿄대학 식물표본관에 보관하였으나, 학계에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추가로 관찰하고 채집할 수 있는 표본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이후 추가 채집도, 연구도 없어 아예 절멸한 것이 아닐까 우려됐던 백양더부살이가 70여 년 만인 지난 2000년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첫 발견지에서 멀지 않은 정읍의 한 천변에서 수백 포기의 꽃을 피운 모습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현장을 확인한 현 소장 등이 미국에서 발행되는 식물연구 잡지인 ‘노본(Novon)’에 한국의 특산식물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 후 전남 강진과 신안, 경남 통영, 제주도 등 4~5곳의 자생지가 추가로 확인됐지만, 여전히 개체 수가 많지 않고 자생지의 훼손 가능성 등이 우려돼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사한 식물로서 초종용이 있는데, 쑥에 곁붙어 사는 백양더부살이와 달리 초종용은 바닷가 사철쑥에 기생합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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