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지난달 말 인천 강화도 앞 바다에서 다리에 마약을 매단 북한인으로 보이는 시신이 발견됐다.매달린 마약은 70g 안팎으로, 2,300명에게 투약할 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이 괴이한 사건은 필자에게 오랜 의문이었던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마약과 북한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캡쳐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캡쳐

한국은 해방 이후 마약 청정국으로 간주됐다. 마약은 패가망신의 동의어였고, 당국의 단속도 강했다. 마약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도 높았다. 그러다가 2020년대 접어들어 마약사범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 많이 퍼져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게 한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해야 했다.

마약이 흔해진 것은 국제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요공급의 문제다. 공급이 많아지자 값이 싸지고, 공급으로 인해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수요 창출의 도구로 SNS 환경이 주요한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SNS에 익숙하고 호기심이 왕성한 학생층에서 마약사범이 늘고 있는 이유라고 하겠다.

마약의 공급자는 국내에도 있을 수 있지만 해외에서 제조돼 밀반입된 것을 유통시키는 것이 단속을 피하는 데 낫다. 그런 공급자는 세계 도처에 있고, 그런 조직은 어느 나라에 존재하든 정부의 단속을 피해 숨어서 활동한다.

북한에도 그런 조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의 밀매조직은 여타 지역의 밀매조직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부의 단속대상이 아닌 것이다. 정부가 이 조직에 직접 개입돼 있거나 묵인 하에 활동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마약이 흔해졌기로 한국이 마약청정국에서 하루아침에 마약위험국이 되는 것은 뭔가 석연찮다. 항공기나 선박을 이용한 마약의 밀반입 외에 다른 루트가 없이는 국내에서 마약이 그처럼 흔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세관을 통관하는 마약의 밀반입 기법도 기상천외하게 발달하고 있지만, 마약단속 기술도 못지 않게 진화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소량의 밀반입은 몰라도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대량의 밀반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정상적으로 운항되는 항공기와 선박을 제외하면 국내로 마약이 들어올 통로는 없다. 휴전선으로 인해 육로는 차단된 상태다. 그 외 뚫려 있는 곳은 3면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선뿐이다. 남북한은 휴전선을 경계로 붙어 있어, 남한의 해안선은 북한으로서는 지근거리인 셈이다.

북한이 남한에 동업조직만 있다면 해안선을 침투로로 삼을 수 있고, 공해 상에서 접선하는 것은 더 안전한 방법이다. 그런 공작을 위해 어선을 위장한 공작선이나 쾌속정, 소형잠수정을 이용한다면 효과는 배가된다.

동서해 NLL(북방한계선) 일대의 바다는 남북한의 어선은 물론 중국의 불법조업 어선들까지 뒤섞여 혼란스럽다. 마약밀매선이 파고들 틈새는 넓다. 강화 앞바다 시신 사건은 인간이 침투수단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원시적이다.

북한의 마약밀매사업은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우선 마약밀매에 대한 죄의식이 희박하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시에 영국이 중국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과 흡사하다. 중국인 중에 마약중독자가 많을수록 돈을 더 벌고, 중국의 망국도 쉬워질 것으로 봤다.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을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므로 그들을 망하게 하는 방법이라면 마약밀매인들 못할 이유가 없다.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다. 돈벌이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그들의 오래된 버릇이다.

김정일 시대에는 양귀비 밀재배를 지시로 했고, 영변에 마약가공공장까지 세웠다. 외교행랑을 밀수의 수단으로 악용한 것에서부터 위폐제조, 해킹 등을 일삼고 있다. 유엔의 제재로 굶어 죽게 된 판에 못할 짓이 무어냐는 앙심과 저주가 이런 막가파 행동의 기저에 있다.

마약이 망국의 물질로 인식된 이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단속에 나선다. 적발될 경우 해당국으로부터 강력한 보복을 면할 수 없다. 한국 다음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게 중국이다. 북·중 간에는 압록·두만강을 경계로 육로의 국경선이 있고, 서해 쪽으론 북·중 간을 잇는 긴 해안선이 있어 북한은 중국을 마약밀매 사업의 거점으로 이용해 왔다.

이같은 밀매사업은 김정일 시대부터 여러 번 들통이 나 중국으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은 상태다. 북한이 맘 놓고 마약장사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는 셈이다. 한국에서 적발되더라도 잡아떼면 그만이고, 우리가 실효 있게 보복할 방법도 없다. 한국에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성실하게 수행하는 종북세력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화도 앞 북한인 시신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하나? 단순한 일회성 사건인지 아니면 조직적 다발성 사건의 하나인지는 물론 그가 정확히 북한인인지 한국인인지도 확인돼야 한다. 그가 어떤 동기로 넘어 오려했든 국내에 접선상대가 있었을 것이므로 그 부분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개인이 헤엄쳐서 가져오려니 70g이었지 어선, 잠수정을 이용한 침투였다면 그것이 몇 kg, 몇 천억 원 어치가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런 밀무역이 어느 해안에서, 공해상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들어온 마약이 우리 사회를 좀먹게 놔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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