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 드라이펜]

데이비드 메이슨 씨(65)는 41년째 한국에 살면서 외국인을 위한 관광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한국 이름은 최매선(崔梅仙). 스스로 경주 최부자집 양자라고 말한다. 그가 경주 최씨 양자가 된 것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몰년 미상)과의 인연 때문이다.

신라의 학자로 당나라에 유학을 가 현지에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의 중국 강소성 양주에서 고위 관직을 지낸 고운의 특이한 업적과 생애에 매료돼 그의 일대기를 다룬 최초의 영문 책 ‘외로운 현인(Solitary Sage)'을 쓴 것이 경주 최씨 문중과의 인연이었다.

메이슨(가운데) 씨가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미국인 관광객들에게 경복궁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한 건축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메이슨(가운데) 씨가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미국인 관광객들에게 경복궁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한 건축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가 주로 출근하는 곳은 광화문과 경복궁이다. ‘한국불교대사전’과 ‘산신(山神)’이란 영어 책도 냈을 정도로 한국의 역사 특히 토속신앙에 대한 연구가 깊은 사람답게 그의 경복궁에 대한 문화해설은 깊이가 다르다.

지난 달 초순 경복궁에서 우연히 그가 미국인들을 상대로 행하는 경복궁 해설을 듣게 됐다. 평소 몰랐던 흥미로운 내용이어서 10여 분 동안 일행에 끼어 설명을 들었다. 다른 일정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그와 헤어졌는데, 지난달 26일 메이슨 씨가 자유칼럼의 두 필자(김수종과 임종건)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그와의 대화를 간추린다.

-당신의 경복궁 해설 중 중국 자금성과의 차이점을 비교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금성이 경복궁보다 10배쯤 큰데 그 크기가 과시하는 것은 권력과 부이다. 백성들에게 위압감을 주어 군림하자는 것이다. 곳곳에 거대한 청동사자상이 험상궂은 얼굴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나, 모든 건축물의 외관을 진홍색으로 칠한 것도 같은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을 당시 조선에선 가장 큰 건물이었을 텐데.
▲물론 그렇다. 그러나 자금성에 비하면 소박한 건물이고, 백성들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건축물은 아니다. 같은 동물상도 궁궐계단이나 월대에 손에 잡힐 만큼 작고 얌전한 모습으로 납작 엎드려 있지 않나? 건물의 단청이 담홍과 청색의 조화를 이룬 것도 궁궐 외부가 진홍 일색인 자금성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경복궁내 모든 궁궐 출입문과 창문은 자연의 색깔이자 평화의 색깔인 녹색이다. 당시 조선은 크고 화려한 궁궐을 만들 수 있는 부와 기술이 있었으나, 그런 것을 과시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 앞 뜰의 바닥돌이 다듬어지지 않은 돌로 돼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자연친화적인 배려라고 본다. 내 눈엔 비나 눈이 올 때 미끄러지지 않아서 좋을 것 같다(웃음). 한민족은 이미 신라시대 경주 석굴암의 불상을 만든 완벽한 석공기술을 갖고 있는 민족인데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돌을 썼겠나?

-관광가이드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중국에 관심이 있었다. 1981년 미시건 대학을 졸업한 뒤 무작정 중국에 가려고 홍콩에 왔다가 개방이 안돼 대만 일본 필리핀 태국 등을 거쳐 1982년 한국에 왔다. 한국이 중국 일본과 같은 듯하면서 다른 것이 많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한국을 알기 위해 교보에 가보니 1900년 무렵 선교사들이 쓴 책과, 미국 UCLA대 교수이자 송광사 승려를 지낸 로버트 버스웰 교수의 한국불교에 관한 책 뿐이었다. 1983년에 중국여행이 개방돼 비자발급번호 978번째 미국인으로 중국에 입국해 6주 간 여행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차이를 재확인했다. 그 차이를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영어 학원의 원어민 강사로 취직해 생계대책을 마련한 뒤 한국에 대해 연구를 시작해 10여 권의 영문 한국입문서를 썼고, 여러 대학에서 관광영어 강의를 했으며, 정부의 홍보정책을 도왔다. 특색 있는 가이드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문화관광부, 서울시 등 지자체, 관광공사, 주한외교사절단 등에서 관광안내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관광 실태는?
▲호주에서 발간되는 여행안내서 '외로운 행성(Lonely Planet)' 미국판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유럽판에는 중국의 속국이었던 나라로 소개된 게 고작이었고, 관광은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에나 붙는 말이었다.

-한국관광산업의 부침을 보았겠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관광한국의 대외 개방의 기폭제였고, 2002년 한일월드컵이 제2의 도약대가 됐다. 한·중수교 후 1,000만 명의 중국 관광객이 몰려오던 201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가 제3의 도약기였고, 2017년 주한미군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과 코로나19의 엄습이라는 이중고로 한국관광산업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으며, 올해 들어서 겨우 회복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기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중국인 관광객 러시 기간도 나에게는 시련기였다. 중국 관광객에 치어 영어권 국가들의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회복기는 한국관광에는 전화위복이다. 동남아 관광객이 중국 관광객을 대체하고 있고, 중동,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골고루 오고 있다. 한국관광이 균형과 안정을 찾아가는 선순환 구조로 들어섰다.

-한국의 산신령과 무속에 대한 연구가 깊은 줄로 안다. 한국 사회의 무속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한국생활에서 오해나 어려움은 없나?
▲전국에 1만 개의 산신각이 있고 10만 명 무당 중에 전업 무당이 5만 명에 이른다고 본다. 이들을 찾는 사람도 몇 백만 명은 되지 않을까? 그런 실체는 인정해야 하지 않나? 대통령 선거 때 무당을 찾지 않는 후보가 있었나?(웃음). 이들이 행하는 의식을 미신이라고 백안시 하지 말고, 자연에 대한 존중이 본질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태백산에 주한 외국 대사들을 위한 관광가이드를 했던 적이 있다. 단군성전에서 무속의식을 소개하자 공무원이 와서 저지하더니 석탄박물관으로 가라고 했다. 대사들이 흥미 있는 곳을 못 보게 하고,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을 보게 하느냐고 불평하더라.

-공무원들이 무당을 싫어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무당을 미개로 여기는 인식과, 관료사회가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서울을 둘러싼 산들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없을까?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수도들이 평지에 세워진 것과는 달리 산들로 둘러싸인 서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1,000만 시민에겐 접근성이 좋고, 높지도 낮지도 않아 오르기에 좋은 산들이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서울의 산에 오른다면 서울을 재발견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은 한동안 연간 600만 명이 찾는 세계 최다 등산인파를 자랑하는 공원이었는데, 중국이 15년 전 국립공원제도를 시행해 황산의 등산인파가 2,400만 명으로 1위가 된 이후 북한산은 현재 18위에 그치고 있다.

-경복궁의 집현전 터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설명하던데.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언어다. 세종대왕이 한문을 몰라 소통이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글에 깃든 애민정신도 탁월하다. 그러나 한글은 배우기는 쉬워도 말하기는 어려운 언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가나다라'를 1시간 배우고 나서 버스의 행선지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1시간을 배워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문자가 세상 어디 있나? 그러나 문법이 어려워 나의 한글말은 여전히 서툴다.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나? 관광자원으로서 북한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은 고조선 고구려 고려의 역사가 담겨있는 땅이다. 개인적으로 북한에는 두 번 갔다. 개성 한 번, 금강산 한 번. 개성은 주한 외국대사들 가이드로 갔는데 박연폭포, 선죽교, 성균관, 서원 한 곳 등 네 군데로 안내됐다.
북측 관리가 내가 미국 사람인 것을 알고 난 후 "북한에 대해 뭘 안다고 가이드를 하냐?"며 제지 했다. 6·25전쟁 때 개성의 유적과 민가가 미군의 폭격으로 모조리 파괴됐는데 성균관만 파괴를 면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억지 소리 같았다. 금강산 관광에서 느낀 점은 바위란 바위에 거대한 글씨로 정치적 구호를 새긴 자연파괴에 가슴이 아팠다.

-개성의 고려왕궁은 공민왕 11년(1362년) 홍건적의 난으로 전소된 이후 복원되지 못했는데.
▲북한은 고려왕궁은 거들떠도 안 보고, 단군릉 복원에 열중한 것 같다. 단군 왕과 왕비의 유해를 찾아냈다며 유골과, 실물대의 조형물까지 전시하고 있다. 뼈는 아마도 프라스틱제일지도 모른다. 외부의 전문가 검증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런 돈과 정성으로 고려 왕궁을 복원이나 할 것이지.

-왕조는 공산주의의 타도 대상이 아닌가?
▲공산주의의 목표는 자본주의와 전제주의 타도였기에, 북한에서 조선왕조나 고려왕조는 타도 대상이었을 것이다. 고구려 왕조와 고조선 왕조는 정체성 확보 차원에서 강조됐지만, 결국은 김일성 왕조를 세우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신라와 조선 역사가 강조된 반면, 고구려, 백제, 고려 역사에는 소홀했었고.

-북한의 단군왕릉은 통일 후엔 없어져야 할 기념물이 아닐까?
▲역사 왜곡의 증거물이니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것이 낫지 않겠나?(웃음).

-단군에 대한 평가는?
▲민족의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통일 한국의 인구는 8,000만 명으로 8,200만 명인 독일 다음의 세계 11번째 인구 대국이다. 단군은 통일 후 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고객 관리에 비법이 있나?
▲정부 기관들의 의뢰 외에 SNS를 이용한 개인적인 해외 연결망을 갖고 있다. 이 연결망을 통해 다양한 관광 수요가 만들어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자들을 안내한 적도 있다. (*인터뷰 직전까지 그는 미국인 부부를 안내했다고 했다. 지난 1월 미국 뉴욕 여행 중 폭설로 조난 당한 한국인 여행객들을 자기집으로 데려가 보살펴 준 미국인 부부의 미담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관광공사가 이 부부를 초청했고, 공사는 메이슨 씨에게 특별 안내를 부탁했다고 한다.)

관광정책에서 칭찬 받을 게 있나?
▲전국에 45개나 되는 국립 및 도립공원 정책이라고 본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세계은행에 국립공원 건설을 위한 원조를 요청했을 때, 부자 나라나 만드는 것이라며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1967년 지리산을 제 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 세계 13번째 국립공원설치 국가가 됐다. 월남전 파병으로 받은 돈을 국립공원에 투자했다. 경부고속도로나 한라산 관통도로는 기본적으로 산업용 이지만 관광 개발을 의식한 도로였다. 박 대통령은 관광에 대한 비전도 탁월한 지도자였다.

-한국의 관광정책에서 아쉬운 점은?
▲한국의 관광은 중국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 지폐의 인물인 이황 신사임당 이순신만 봐도 1300년대에서 1500년대까지 유교의 극성기였던 200년 동안 인물들 아니냐? 그밖에는 10원짜리 동전의 경주 불국사 다보탑이 유일한 신라 유적이다. 연대가 좀 더 올라가고, 또 내려올 필요가 있지 않나? 세종대왕이 훌륭한 임금인 것은 맞지만 국가 기념물에 세종로 세종시 세종회관 등 세종이 너무 많다. 조선에도 태조, 영·정조 등이 있고, 신라에는 선덕 진덕여왕도 있지 않나? 관광담당 공무원 중 관광명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 경주에 여러 번 갔다는 공무원도 경주의 호텔에만 갔지 남산에 올랐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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