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 당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유럽, 그것도 명품과 패션의 성지라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있자니 확실히 명품 가시성이 높음을 느낀다. 요즘에야 한국에도 명품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국민 전체의 명품 소비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니 명품이 생소한 존재는 아니지만, 확실히 본고장이 가지는 접근성과 가시성은 따라잡을 수 없는 듯하다.

패션위크 시즌에는 온 유럽이 들썩이는데, 그중 단연 핫한 곳은 파리, 밀라노 등 명품이 탄생하고 그 역사를 이어온 도시들이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패션위크에 화려한 착장으로 등장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예인도 보고 명품 트렌드도 확인하려고 유럽으로 몰렸다. 이 시즌에 창출된 관광 수익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반적으로 많이 들어본 명품 브랜드는 거의 유럽에서 출발했다. 샤넬, 디올, 입생로랑의 고장은 프랑스 / 루이비통, 구찌 등은 이탈리아 / 버버리, 폴로 랄프 로렌은 영국 등지다.

중국에서 시작된 명품 브랜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만이나 태국 출신의 이름난 명품이 있던가? 인도네시아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패션, 명품 브랜드가 있었나? 문득 떠오른 의문이다.

이상하리만치 모든 명품 브랜드는 유럽에서 출발했다. 마치 누군가가 작정하고 ‘유럽=명품’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내고 싶어했던 것처럼.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캡쳐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캡쳐

명품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사전은 명품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제공한다. 1)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 2)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고 가격이 아주 비싼 상표의 제품.

통합하여 말해보자면 명품은 “하이 퀄리티의(뛰어난)” “작품과도 같은” “비싸고” “유명한” 제품이다. 여기서 뛰어나다는 것은 뛰어나다고 이름난 장인들에게서 만들어지며 한번 구매하면 오래도록 녹슬지 않고 좋은 품질이 유지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명품의 탄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가진 ‘고급진 이미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영국은 ‘레임덕(lameduck)’ 문제를 겪게 된다. 레임덕이란, 생산하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지만, 산출물의 질도 그다지 좋지 못해서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산업들을 일컫는 용어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아시아는 저가로 좋은 질의 제품을 뽑아내는 시장 경쟁력을 재빠르게 키워왔다. 근대화와 제국주의를 통해 큰 번영을 누리던 영국은 높은 인건비를 감당해내기 버거웠고, 그만큼 좋은 질의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더이상 영국에서 만들어진 탱크를 살 이유가 없어졌다. 아시아 시장에서 더 저렴한 값에 더 질 좋은 탱크를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옷, 신발 등 제조업 기반의 상품들 대부분의 사정이 그러했다.

이러한 ‘레임덕’들을 그만 포기하게 되면 이제 무엇으로 승부를 봐야 할지, 그것이 영국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제국주의를 통해 쌓아 올린 나라의 ‘명성’을 이용하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품은 고급지고, 아무나 가질 수 없고,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이라고 광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인가? 장인이 ‘직접’ 만들기 때문에 몇 개 존재하지 않아서 희소성이 있고, 개인의 취향대로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하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세련됨을 가지고 있다고 홍보한다. 영국군에 납품하던 방수 코트는 버버리가 되고, 가죽 가방을 만들어 팔던 공예사들을 ‘장인’으로 등극시켜 그들의 제품이 가진 가치를 극대화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명품”이다.

명품을 빼면 유럽에서 가치 있는 산업에는 무엇이 있는가? 관광산업 정도가 생각난다. 그러나 이 관광조차 번영했던 과거를 지닌 나라, 명품을 만들어내는 나라라는 명성이 없다면 지금처럼 활성화되어있지 않았을 것이다.

위 스토리는 필자가 프랑스에서 유럽의 경제사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이다. 픽션이 아니라 정말로 유럽은 그들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며 쌓아올린 대국의 이미지를 아직까지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명품, 그렇게나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가치가 있나? 명품에 대한 신화가 깨지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현대물질문명 속에서 기호를 소비하고, 명품이 가진 기호는 다름 아닌 ‘명성’이다. 그 명성의 과거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제국주의로 쌓아 올린 추악한 부와 부끄러운 역사만 있을 뿐이다.

명품이 가진 신화는 무엇인가? 명품을 가진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돈이 많으면 존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판 명품 신화는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곧 당신을 가치 있어 보이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품이 가지고 있는 그 ‘가치’, 그 자체가 신화라는 것이다.

전제 오류가 나버리는 그다음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즉, 명품이 가진 ‘가치’ 자체가 물질문명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존하지 않는다면, 명품이 그대를 가치 있어 보이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도 만들어진 허상, 즉 멀리 있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K-POP, SNS등의 발달로 인해 이제 명품의 가시성은 더더욱 높아졌다. 프랑스나 밀라노에 가지 않아도 누구든 명품에 접근 가능해진다. 그리고 누구나 명품을 원하는 것과 같은 기류가 형성되었다.

명품이 가진 좋은 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본인이 좋다면 그 소비를 말릴 재간은 없다. 하지만, 사회적인 성공의 표상이 명품이라는 헛된 신화에서는 벗어나길 바란다. 돈과 명예가 있어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명품을 걸치면 돈과 명예가 있어 보인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너도나도 따라 명품을 구매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녹슬고 사라질 물건이 당신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그 어떤 현대 물질문명의 산물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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