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 여행]

자생지 두 곳뿐인 ‘귀한 몸’ 선제비꽃.

학명은 Viola raddeana Regel.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경기도 연천에서 최근 새로 발견된 선제비꽃 자생지. 제법 많은 개체가 옹기종기 모여 꽃 핀 모습이 정답기 그지없다. @사진 김인철
경기도 연천에서 최근 새로 발견된 선제비꽃 자생지. 제법 많은 개체가 옹기종기 모여 꽃 핀 모습이 정답기 그지없다. @사진 김인철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장사익의 노래 ‘아리랑’에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춘삼월, 제비가 돌아오듯 봄이면 이 땅 곳곳에서 어김없이 피어난다고 해서 ‘제비꽃’이라 불립니다. 작지만 앙증맞은 꽃 생김새가 물 찬 제비처럼 날렵해 보인다고 해서 제비꽃이라 불린다고도 합니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제비꽃의 명명(命名) 해석도 제각각이지만, 아예 이름도 제비꽃 외에 오랑캐꽃이니 장수꽃, 씨름꽃, 앉은뱅이꽃, 가락지꽃, 병아리꽃, 외나물 등 여럿입니다. 그중 가장 생뚱맞게 들리는 것이 오랑캐꽃. 제비꽃이 지천으로 가득 피는 때에, 지난가을에 거둔 양식은 바닥나고 햇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 춘궁기(春窮期)에 중국 변방의 오랑캐들이 툭하면 쳐들어오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용악은 ‘오랑캐꽃’이란 시에서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으로 불린다며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하며 오랑캐꽃의 억울함을 대변한 바 있습니다.

높이 30~50cm로 곧게 선 선제비꽃. 댓잎처럼 길쭉한 잎의 겨드랑이에서 위로 길게 뻗은 꽃자루 끝에 꽃송이가 하나씩 달려 있다.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잎겨드랑이를 따라 올라가며 차례로 꽃이 핀다.@사진 김인철
높이 30~50cm로 곧게 선 선제비꽃. 댓잎처럼 길쭉한 잎의 겨드랑이에서 위로 길게 뻗은 꽃자루 끝에 꽃송이가 하나씩 달려 있다.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잎겨드랑이를 따라 올라가며 차례로 꽃이 핀다.@사진 김인철

이렇듯 우리에게 친숙한 제비꽃이 실상은 다 같은 이름의 하나의 식물이 아닙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오른 종만 해도 가지제비꽃부터 흰털제비꽃까지 자생식물 65종, 삼색제비꽃 등 재배식물 18종, 창원제비꽃 등 외래식물 2종 등 무려 95종이나 됩니다. 삼색제비꽃은 유럽 원산의 제비꽃을 개량한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풀로, 팬지(pansy)라고 불리며 봄철 화단이나 화분에 흔히 심는 원예식물입니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그런데 친숙한 제비꽃이 다 흔한 건 아닙니다. 환경부가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한 92개 멸종위기 야생식물 가운데 무려 4개나 포함돼 있지요. 넓은잎제비꽃, 왕제비꽃, 장백제비꽃, 선제비꽃이 바로 그들입니다. 특히 선제비꽃의 경우 이미 알려진 경기도 수원 등의 자생지가 파괴되면서, 단 한 곳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져 그야말로 비상등이 켜졌었습니다. 다행히 종전 발견 기록이 없던 경기도 연천에서 몇 해 전 새 자생지가 발견되면서 한숨을 돌린 상태이기는 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러시아 극동과 중국 동북 3성, 일본 혼슈 및 규슈 등 동북아시아에만 드물게 분포하는 멸종위기식물이라는 게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의 설명입니다.

1cm 안팎의 꽃은 앞은 흰색, 뒤는 보라색을 띤다.@사진 김인철
1cm 안팎의 꽃은 앞은 흰색, 뒤는 보라색을 띤다.@사진 김인철

“저지대의 습지에서 갈대나 물억새와 같은 정수식물에 기대어 산다. 국내에는 경기도 수원과 양산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6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삭과로 6~7월에 익는다. 국내에 분포하는 제비꽃 식물 중에서 높이 70cm까지 자라는 대형 종이다.” 경남 낙동강 하구 자생지의 입간판 설명입니다. 대형 종이라고는 하지만, 양산과 연천의 습지에서 만난 선제비꽃의 실제 모습은 키 30~50cm 정도의 가냘픈 풀꽃이었습니다. 1cm 안팎의 꽃은 곧게 선 줄기에 어긋나기로 나는 잎의 겨드랑이에서 위로 솟아나는 5~10cm의 꽃자루에 하나씩 달립니다. 꽃 색은 앞면은 흰색, 뒷면은 보랏빛을 띱니다. 꽃 피는 시기는 5월 하순부터 6월 말까지로 장백제비꽃과 더불어 국내 자생 제비꽃 가운데 가장 늦습니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김 인 철
    김 인 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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