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유일한 해외출장은 6년 전 상하이였다. 그땐 석유화학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플라스틱을 만드는 회사답게 매년 중국에서 열리는 '차이나플라스'라는 플라스틱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부스 제작과 운영을 담당했던 난 무사히 전시회를 마치고 뒤풀이에 참가했다. 이렇게 돈을 펑펑 써도 되는 건가 싶도록 처음 보는 중국요리들이 끝없이 나왔고, 메뉴판의 가장 아래에 있는 고량주 말고 중간 정도의 고량주를 원 없이 마셨다.

산초가 잔뜩 들어간 무슨 볶음요리를 먹으며 '겁나 내 스타일이네' 쩝쩝대고 있는데, 중국 법인에서 일하던 과장님 한 분이 옆자리로 왔다. 말없이 음식만 먹는 이십 대 신입사원을 보니 한 말씀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x라 재미없지? 다들 그냥 아저씨, 아줌마들 같지만, 얘기하다 보면 괜찮은 부분 하나씩은 있어. 그걸 찾아다니다 보면 회사생활이 아주 지루하진 않을 거야."

얘기가 끝나자마자 과장님은 술잔과 젓가락을 들고 또 다른 자리로 옮겨갔고, 난 다음 요리에 집중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저씨가 술김에 했던, 그것도 고량주를 한 병 넘게 마신 상태에서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은 걸 보면 제법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후 6년간 난 사람들이 가진 장점을 찾아다니기는커녕 멀찍이 거리를 두며 지내왔다. 모난 부분에 찔려 다칠까 걱정하며 말이다. 회사에는 유독 인정에 목말라죽기 직전인 사람처럼 자신의 가치관과 능력을 추앙해달라며 들이대는 사람들로 복작였다. 직장생활의 길이는 인품이나 능력과 비례하지 않았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기 잘난 맛에 취해버려서 굳이 내가 '괜찮은 부분'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그 결과 회사는 사람이 아니라 역할놀이하는 기계들이 모인 곳이니, 내 할 일 하면서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가자는 마인드가 자랐다. 누군가의 장점을 찾고 진심으로 감탄하는 대신, 영혼 없는 아첨만 늘었다. 사람을 직접 겪고 판단하는 대신,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평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됐다. 그 덕에 안전한 직장인 라이프를 영위할 수 있었지만, 내 직장생활은 점점 노잼이 되어 갔다.

사진 논객닷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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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성장도 멈췄다는 점이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사람과의 교류에 선을 그은 탓이었다. 생각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심지어는 업무스킬마저 제자리걸음인 느낌이었다. 회사 밖에서 자기 계발에 힘쓴다 한들 한계가 있었다. 책으로 하는 공부는 사고의 지평은 넓혀줄지 몰라도 내 그릇 자체를 넓혀주진 못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주제에 뭐가 대단하다고 혼자 고고한 척인지 말이다. 대단한 가치관을 가진 것도 아니고 성숙하지도 못하면서 뭘 지키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지 스스로 우습게 느껴졌다. 다가오는 걸 허용하지 않을 때만 지켜지는 거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거다. 지지고 볶고 진흙탕에 굴러도 그대로인 게 진짜니까.

그리하여 내 목표는 정해졌다. 앞으로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장점을 하나씩 찾는 걸로. 그리고 나만 보이는 고라니톡 프사에 상대방의 못난 부분 말고 괜찮은 부분을 등록해 놓는 게 목표다. 그럼 회의가 됐든 회식자리가 됐든 사람을 만날 때 설렘까진 아니더라도 귀찮음은 덜 느낄 것 같다.

누가 그랬었다. 30대의 연애가 20대보다 어려운 이유는 안 맞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바로 멈추기 때문이라고. 연애 상대뿐만 아니다.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장점보단 단점을 찾게 됐다. 좋아할 이유 대신 비난할 거리를 찾고, 좋은 면보다 부족한 부분에 집중하며 거리를 둔다.

하지만 누군가의 '괜찮은 부분'을 찾고 거기에 볼드 처리를 한다고 내가 손해 볼 건 없다. 그럴수록 내 안에도 그 괜찮은 부분이 자리할 테니까.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어떤 걸 볼지는 내 선택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선택을 해보길, 2023년의 내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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