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 주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지가 집에 도착했다. 내 몸 여기저기 나도 좀 신경 써달라는 듯 조금씩 문제가 있었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단 관리 없이 이 정도면 선방했네 하면서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내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 갔다. 건강검진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작년에 수술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사소한 문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번 건강검진 선택 항목에서는 그동안 안 해봤던 스트레스검사를 해봤는데 특히 그 결과가 몹시 처참했다. 스트레스 저항도, 스트레스 지수, 피로도 모두 "매우 나쁨'이었다. 하필 건강검진을 받았던 즈음 스트레스가 최고조긴 했었는데, 내 심박변이도도 내 스트레스가 매우 나쁜 상태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료 사진@닥터 이걸TV  영상화면 캡쳐
자료 사진@닥터 이걸TV  영상화면 캡쳐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는 너무도 많지만, 일반 직장인인 나의 경우 주 5일, 하루의 35%~50%를(24시간 중 최소 9시간~최대 12시간) 회사에 머문다. 확률적으로나 비율적으로 회사원으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잦고 클 것이다.

얼마 전 계급, 권력, 지위와 신체적 건강과의 상관관계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마이클 마멋 교수에 따르면 높은 위계에 오를수록 사망률이 낮은데(지위신드롬), 높은 직급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을 느끼더라도 '스스로 지배력을 갖고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지배력을 갖고 있다는 걸 달리 표현하면 자기 통제감일 것이다. 통제감이 낮을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실제로 나는 집에서 나와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회사용 모드로 나를 전환한다. 일을 찾아서 남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 말고 회사업무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내게 주어진 혹은 갑자기 지시당한 일만 처리해도 하루가 다 가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내 생각이나 의견이 끼어들 성질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고 나서는 아이디어와 의문을 품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내가 일을 주도하지 않아서 편한 점도 많다. 머리 쓰지 않아도 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하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동료 직원들한테 칼 맞을까 봐 친한 몇몇 직원에게만 말했었는데, 여기 일은 하루빨리 AI시스템, 그 시스템이 탑재된 로봇이 하는 게 속도나 정확도 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출근 후부터 퇴근 전까지 자기 통제감이 온전히 발현되는 순간은 오늘 점심 뭐 먹지? 밥 먹고 커피를 때려? 말어? 정도인 것 같다.(점심시간이 유일한 자기 통제감의 시간이라 그토록 좋았던 건가...) 그나마 지금은 모시며 일하는 시어머니가 한 분뿐이긴 한데 워낙 또 지배력이 있으신 분이라 안 그래도 변변치 않았던 자기 통제감이 더 쪼그라져있는 상태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나란 사람을 잃고, 나의 가치를 확인받지 못하다 보면 실제 더 피로하고 무기력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퇴근할 때마다 나 지금 뭐 하다 집에 가는 거지? 하는 생각에 차에서 옹달샘이란 동요를 틀어놓고 따라 부른 적도 있다.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

자기 통제감의 상실이 사람을 정신적으로 시들시들하게 만들고 신체적인 건강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이상 그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발 딛고 있는 현실세계를 한꺼번에 바꿀 수도 없다. 자기 통제감을 지키면서도 내가 바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늘려보기로 한다. 작심삼일마저 넘기며 요즘 실천하고 있는 건 다이어트를 위해 저녁을 안 먹고 그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결과는 없는데 의외로 내가 느끼는 자기 통제감은 꽤 커졌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미친 듯이 구매해서 방 한가득 소유했던 것, 자유여행 일정을 짜서 툭하면 해외로 도피했던 것, 갑자기 파이어족이 되겠다며 한참 알아봤던 것, 소확행으로 꾸역꾸역 버텨보려 했던 것.

모두 그 저변에는 잃어버린 자기 통제감을 어떻게 해서든 되찾아보려고 싶었던 속마음이 있었다. 위의 것들도 도움은 되었지만 거기서 오는 "통제한다는 느낌"은 너무 찰나였고 지속되지 못했다.

모면하기 위해서 자꾸만 무언가를 하려 했던 건 접어두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 통제감을 잘 지킬 수 있는 태도와 단단한 마음에 대해 고민 중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해 장소 간 이동할 때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운전하는' '내 차'로의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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