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붉게 타는 태양을 닮은 진분홍 ‘여름꽃’, 큰바늘꽃!

학명은 Epilobium hirsutum L. 바늘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투명하리만큼 밝은 분홍색으로 다닥다닥 꽃을 피운 큰바늘꽃. 동전만 한 꽃의 맑고 고운 색감이 삼복더위마저 날려 보낼 듯 상큼하다.@사진 김인철
투명하리만큼 밝은 분홍색으로 다닥다닥 꽃을 피운 큰바늘꽃. 동전만 한 꽃의 맑고 고운 색감이 삼복더위마저 날려 보낼 듯 상큼하다.@사진 김인철

한여름 물가에서 환한 홍색으로 피는 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태울 듯 이글거리는 붉은 해는 고개 들어 마주하기 거북하지만, 진분홍 꽃은 바라만 보아도 금세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성인만 한 키에 사방으로 쭉쭉 나온 가지마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둥근 꽃을 가득 달고 선 모습에 삼복더위마저 절로 잊을 듯합니다. 이름대로 키나 덩치가 큰 ‘큰바늘꽃’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바늘꽃, 버들바늘꽃, 한라바늘꽃, 돌바늘꽃, 좀바늘꽃, 회령바늘꽃 등 국내에 자생하는 10여 종의 바늘꽃과 식물 중 하나인데, 꽃이 진 뒤 맺는 씨방이 가늘고 길다고 해서 여타 바늘꽃과 마찬가지로 <바늘>을, 그리고 최대 250cm까지 높이 자란다고 해서 <큰>이란 자기만의 단어를 이름에 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꽃 가운데 큼지막하게 올라온 백색의 암술머리가 4갈래로 갈라진 것이 같은 과, 다른 종들의 곤봉 형태와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꽃은 6월 하순부터 8월 말까지 줄기나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한 송이씩, 한 개체마다 수십 또는 수백 송이가 한꺼번에 달리는데, 둥근 꽃 한 송이의 크기는 지름 1.5cm 안팎, 꽃 색은 진한 분홍색입니다. 번식력도 왕성해 수십, 수백 개체가 무더기로 피어 삼복더위에 자생지를 찾는 야생화 애호가들에게 ‘한여름 밤의 꿈’같은 황홀경을 선사하곤 합니다.

강원도 삼척의 저지대 하천가에 핀 큰바늘꽃. 자생지가 툭하면 물난리를 겪을 강가에, 수시로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변이어서 위태로운 생태환경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사진 김인철
강원도 삼척의 저지대 하천가에 핀 큰바늘꽃. 자생지가 툭하면 물난리를 겪을 강가에, 수시로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변이어서 위태로운 생태환경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얼핏 제법 많은 개체가 모여 풍성하게 꽃 핀 큰바늘꽃의 모습에 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을까 의아할 수 있습니다. 요는 남한 내 자생지가 강원도 삼척과 정선, 주왕산 등 3~4곳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물가나 습지를 선호하는 습성 탓일까? 자생지가 대개 저지대 하천가여서, 여름철 장마나 폭우 때 물에 잠겨 쓸려나가기 십상입니다.

특히 하천 정비나 도로 확장, 택지 조성 등 주변 지역 개발로 인해 언제든지 송두리째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실제 북방계 식물인 큰바늘꽃의 최남단 자생지인 청송 주왕산 개체군의 경우 하천 정비 사업으로 거의 파괴돼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 큰바늘꽃에 포함됐다가 암술머리의 갈라짐이 덜하다는 형태상의 차이로 2017년 신종으로 발표된 울릉바늘꽃의 자생지 한 곳은 대형 호텔 건설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바 있습니다.

줄기와 가지 겨드랑이 사이에서 올라온 숱한 꽃줄기 끝에 한 송이씩 달린 큰바늘꽃. 꽃 중앙에 자리 잡은 흰색의 암술머리가 크게 4갈래로 갈라져 다른 바늘꽃들과 구별된다.@사진 김인철
줄기와 가지 겨드랑이 사이에서 올라온 숱한 꽃줄기 끝에 한 송이씩 달린 큰바늘꽃. 꽃 중앙에 자리 잡은 흰색의 암술머리가 크게 4갈래로 갈라져 다른 바늘꽃들과 구별된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최근 국내 자생 바늘꽃류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바늘꽃류 추출물이 피부 보습용 화장품 개발 재료로써 활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피부 보습 효능이 우수하고, 거친 피부결의 개선, 매끈한 피부 유지, 당김 현상 개선 등의 효과를 가진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2022년 12월 펴낸 ‘큰바늘꽃 증식 · 재배관리 안내서’에 담겼습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데서 나아가 추출물의 효능을 활용해 산업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큰바늘꽃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썩은 살을 제거하고 새살을 돋게 한다. 그래서 골절, 타박상, 종기, 화상, 월경 과다 등에 이용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백두대간수목원의 이런 언급은 큰바늘꽃을 비롯한 모든 멸종위기 야생생물 관리가 종 다양성 보존이라는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 무한의 활용 가능성을 가진 천연자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중대한 일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큰바늘꽃의 사촌 형제인 분홍바늘꽃. 큰바늘꽃과 마찬가지로 한여름인 7, 8월 풍성하고 화려한 꽃을 피운다. 사진은 2023년 7월 초 강원도 삼척의 자생지에서 담았다.@사진 김인철
큰바늘꽃의 사촌 형제인 분홍바늘꽃. 큰바늘꽃과 마찬가지로 한여름인 7, 8월 풍성하고 화려한 꽃을 피운다. 사진은 2023년 7월 초 강원도 삼척의 자생지에서 담았다.@사진 김인철
 김 인 철
 김 인 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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