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관광객으로 위장했다가 자진 월북한 주한 미군 소속 트레비스 킹 이병의 송환문제가 미북 사이에 주요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주한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킹 이병의 송환협상을 시도하고 있으나 북한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의 침묵은 이 사안의 복잡성으로 인해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킹 이병의 월북 동기는 외형상으로는 그가 주둔지 한국에서 저지른 폭력 o등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의 두려움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 내에서 처벌을 받다, 본국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탈영해 북으로 넘어갔다.

사진 MBC 관련뉴스 화면캡쳐
사진 MBC 관련뉴스 화면캡쳐

하급 병사로서 그가 다룬 업무에 큰 정보적 가치가 있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범법자의 신분인 그를 북한이 중요하게 여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이 굴러들어 온 떡을 내뱉을 이유도 없다. 요리만 잘하면 국내용으로 체제선전에 써먹을 수 있는 재료로 손색이 없다. 비록 적국이지만 세계 최강국의 병사가 지상낙원인 북한을 찾아온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도 자국민의 신변안전과 인권보호 차원에서 킹 이병에 대한 송환협상을 하려는 것이지, 본인이 본국송환을 거부한다면 데려올 방법이 없다. 북한에 의해 강제 납치 또는 억류된 미국인에 대한 협상과는 성격이 다르다.

1960년대 이후 주한미군 가운데 자진 월북한 병사가 6명인데 그중 찰스 젠킨스 1명만 39년만에 미국으로 돌아왔고, 나머지는 체제선전 도구로 활용되다 북한에서 죽었다. 젠킨스가 돌아온 것도 북한에서 결혼한 일본인 아내 덕분이지 미북협상의 결과는 아니었다.

킹 이병의 가족들만이 북한에 강제 억류되어 있다 가사상태로 본국송환 됐으나 1주일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악몽을 떠올리며 정부에 송환협상을 촉구하고 있으나, 범죄를 저지르고 북한으로 도망친 그에게 미국 내에서도 동정 여론이 클 것 같지도 않다.

현재의 남북관계나 미북관계 측면에서도 킹 이병의 조기 송환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날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는 북한의 핵도발에 대응해 한국과 미국도 대북 제재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약속에 따라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의 한반도 전개가 이어지자, 북한도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핵전쟁에 혈안이 돼 있다며 미사일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킹 이병은 북한으로 하여금 한미의 대북 호전주의를 선동하는 도구로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가 군생활 부적응자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런 역할을 자진해서 택할 수도 있다. 북한은 과거 해외에서 납치해간 남한 사람들을 부패한 남한 사회를 버리고 지상낙원을 찾아 귀순한 것처럼 조작해 체제선전에 이용하기 바빴다.

1979년 노르웨이 여행 중 착오로 북한 대사관을 찾아갔다가 납치된 고상문 교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평양에서 이른바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의 썩어빠진 교육제도에 염증을 느껴 귀순했다고 했었다. 그는 북에서 탈출을 기도하다 체포돼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킹 이병이 그런 목적에 이용될 경우 평양에서 기자회견이든 대규모 군중환영대회를 통해 입장 발표의 형식을 취할 것이다. 그것으로 그에 대한 북미 간 송환협상은 무의미해지고,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킹 이병의 월북 과정에서 하나 특기할 것은 총격전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월북을 저지하려면 유엔사측 경비병이 킹 이병을 향해 총격을 가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자칫 북측 경비병에 의한 대응사격을 촉발, 총격전으로 번져 남측의 관광객들의 안전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판문점 월북 귀순 사건에서는 우리 측은 총격을 가한 적이 없었으나, 월남 귀순사건 때마다 북측은 귀순자를 향해 사격을 가해 남북 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많은 사상자를 냈다. 1984년 평양체류 중이던 소련유학생 바실리 마투조크가 판문점 관광 중 군사분계선 넘어 남쪽으로 귀순하자 북한군의 총격으로 남북 간 총격전이 벌어져 한국군 1명과 북한군 3명 사망했다.

2017년 북한군 오청성 하전사가 귀순할 때도 북한군이 우리측 경비지역까지 침범해 총격을 가했다. 오 씨는 중상을 입고도 첨단의 의료혜택으로 목숨을 건졌는데, 우리 측의 자제로 총격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1967년 북한의 기자 이수근 씨 귀순 때는 이 씨가 탄 차를 향해 500여발의 총격을 가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지금도 북한은 탈북자의 등을 향해 총을 쏜다. 2020년 9월 조난당한 한국의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 씨에 대해서는 정면에서 총살했다. 오는 사람이든, 가는 사람이든, 살상할 목적으로 총격을 가하는 것은 무자비한 살인이다. 북한의 핵도발의 뿌리는 인명을 파리 목숨 취급하는 인명경시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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