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채널A  관련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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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한 동생과 카톡으로 MBTI 얘기를 하며 서로의 유형을 추측하다가 "누나는 S(현실, 실용) 일 거고..."라는 말을 들었다.

- 어? 나 비현실의 끝판왕인데 나 현실적으로 보이는구나? 어찌 보면 성공인 건가?

- 근데 진짜 비현실적인 사람은 공공기관 10년 넘게 못 다녀. 그렇게 끝판왕인 사람은 ㅋㅋ 그런 사람을 못 봐서 그래.  

그가 툭툭 던지는 말 마디마디 다 뼈를 때려서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래 맞지. 누가 봐도 나의 궤적은 현실에 발을 찰싹 붙이고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온 삶이었지.

이십 대 후반의 나는 세상의 잣대에서 열외가 될까 봐 무서웠고, 세상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럴 듯(?)한 곳에 나를 걸쳐두고 안심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흔의 프락치 회사원으로 무럭무럭 늙은 지금, (비겁했던 나를 이제 그만 미워하기 위해서) 그때의 선택이 그려온 발자취를 돌아본다.

남들의 정답을 내 정답이라고 적어낸 시험의 결과는 뻔하였다. 커닝을 한 벌을 받아야 했고, 오답을 적어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과응보의 나날들.

처음에는 나도 그게 내 정답인 줄 알았기에 내가 쓴 답대로 살려고 연기 아니... 노력했다. 그런데 끼워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눈에서는 눈물이 새 나왔고, 얼굴이 말도 못 하게 뒤집어졌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직장인 괴롭힘으로 상사 두 명을 고발하는 절차를 거치면서 적응 장애라는 정신과 질환을 얻었고, 승진 바로 직전에는 (원래 마른 적도 없었지만) 토사물을 쪼아 먹는 도시의 비둘기처럼 살이 뒤룩뒤룩 쪄서 인생 역대급 몸무게를 갈아 치우기도 했다. 어차피 금방 들통났을 발연기는 이토록 내 신체와 정신 건강 모두를 바닥으로 내몰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순응'하는 것으로 묻어가고 싶었지만, 매사가 물음표에서 시작하여 느낌표로 끝나는 나란 인간이 감히 소화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발) 연기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연기보다는 가면이 낫겠다 싶어 내 나름대로 세팅한 회사용 가면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여기까지 어영부영 버텨왔다.

회사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프락치로 받아들이고, 굳이 나의 발자취까지 돌아본 건 이제 그 가면마저도 벗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 뒤집어썼다가는 무엇이 가면이고 무엇이 얼굴인지 구분이 안 가서, 가면이 내 얼굴 행세를 할 것만 같다. 나중에 허겁지겁 가면을 벗었을 때, 얼굴이 가면에 붙어 뜯겨 나올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20대 후반의 불안이 세상으로부터의 '열외와 무소속'에 있었다면, 40대 초반의 불안은 '참된 나'로부터의 '열외와 무소속'에 방점을 찍는다.

살아보니 당장이 괴로워서 아닌척하고 덮으려 했던 것들, 귀찮아서 모른척하고 방치했던 것들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내 발목을 잡았다. 석연치 않지만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서 뭉개버린 것들은 귀신같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나, 아직, 여기 있어요 라며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내 나를 압도했다. 40대 짬바가 있는데 20대의 나보다는 조금이라도 현명해야 하지 않을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은 이제 그만. (결정적으로 이제는 그럴 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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