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는 타인을 인내하는 수행이다. 내 계정에 들어찬 이물(異物)들을 참아야 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이물일 것이므로 공정한 계약이긴 하다. ‘좋아요’ 아래 가려진 솔직함, 우리는 타인의 일상이 지긋지긋하다.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갔다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내 계정으로 로그인 했을 때, 타인의 피드가 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방에 타인이 무단 침입한 듯 불쾌했다.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독립성을 무시한 체계에 적응할 수 없었다. 나의 소통이란 서로 합의한 내용을 나누는 것이지 모든 수다를 일방적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일상 쓰레기통이 된 내 계정을 지웠다.

사진 인스타그램 화면 캡쳐
사진 인스타그램 화면 캡쳐

시대에 맞춰 가기 위해 별 수 없었다. 먹고 살자니 인스타가 필요해졌다. 10여 년 만에 복귀한 SNS는 효용성 높았지만, 역시 피곤했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던 31년 전 아주 오래된 연인들처럼 ‘좋아요’를 품앗이 하는 신인류의 매너를 감정 없이 수행했다. 과연, 매너가 사람을 만들었다. 가끔씩은 하트 뿅뿅 달린 말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진심은 아니었다. - 서로 다 아는 이야기를 지금 노골적으로 밝힐 뿐이다.

그나마 스토리는 안 보면 그뿐이었지만, 알람이 떠 있으면 지워야 하는 J의 특성상 하나하나 체크해야 했다. 팔로워들의 일상은 내게서 지워내는 숙제이지 관음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당신이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한심해진다. 우리는 관계할수록 서로 데이터스모그에 수렴해간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농도 높은 데이터스모그일 것이다. 자제하고 있을 뿐, 마음 내키는 대로 하자면 오늘 눈 똥까지 다 공개하고 싶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인간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을 발산하는 존재다. 자기 발산은 권력 의지로서 본능이자, 숙명이다. 데이터스모그를 모른 척해주는 것은 진짜, 신인류의 관계 맺기인 것이다. 알기에, 꽤 멀쩡히 사회생활 중이다. 혹은 그렇게 생각한다.

중학생들에게 교실에서 발생하는 ‘급(級)’을 물었을 때, 여학생들의 경우 인스타 팔로워 수도 그 기준에 포함된다고 해서 놀랐었다.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는 것이 실질적 갈등이 된다고도 했다. 인간의 수준이 얇은 관계의 양으로 결정되는 현실은 설명되어야 할 것인지 비판되어야 할 것인지, 아직은 가늠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내 취향은 아니다. 특기할 만한 콘텐츠이기는커녕 신변잡기만도 못한 수다를 긍정 받는 것은 의미 없다. 예쁨 받고 싶다면 예쁜 사람이 되어야지, 품앗이로 구축한 예쁨의 성적표를 받고 기쁘다면 가련하다.

안타깝게도 나도 가련한 것들 중 하나다. 열심히 좋아요를 구걸 중이다. 당신이 뭘 했는지 몰라도 상관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꺾이지 않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성실함이다. 그래서 이 얇은 관계의 진창이 피곤하다. 내가 타인에게서 받는 무관심의 긍정과 내 영역에 들어선 관용해야 하는 구체적인 부정떼거리의 산수가 자아의 공리에 부합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일단 필요하니 (눈웃음)(하트)(최고) 할 뿐이다.

필요와 편리가 상호작용하지 않고 충돌하는 것은 인스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듯하다. 단언컨대, 인스타는 사적 공간이 아니다. 상호침투 되는 공적 공간이다. 인스타 사용자는 공적 주체로서 자신을 자각해야 한다. 인스타는 사적 자아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존재다. 팔로워에게 필요한 건 콘텐츠다. 자기 스스로가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면 오만하다. 우리는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가 아니다. 나의 일상은 당신에겐 당신이 오늘 간 화장실 횟수보다 무가치함을 안다. 그럼에도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서로 피곤해지는 것이다.

인스타 시대의 새로운 매너다. 서로 읽을 만한 게시물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사적인 것의 교류는 대면 관계에서 해소할 일이다. 대면 관계에서도 나누지 못할 가십과 의미 없는 예쁨을 타인의 계정에 뿌려대는 건 무례하다. 커뮤니티 게시판 도배는 오래 전부터 비난 받을 일로 분류되었다. 비슷한 수준의 요구를 할 뿐이다. 인스타와 커뮤니티 게시판은 다르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데이터 스모그가 되는 일에 ♡가 주렁주렁,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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