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여름이 시작되고 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일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솟구쳐 오른 애사심 때문이라고 하면 좋으련만...

여름에는 사무실만큼 시원하고 쾌적한 곳이 없기에 원래 여름휴가를 잘 안 가는 편이다. 그러다 9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나다니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에게 쉼을 주기로 한 첫날, 나는 미술로 하루를 시작해 음악으로 하루를 맺었다. 정말 오랜만에 행복감으로 마음이 꽉 차 올랐다. 나름대로 국어와 사회와 과학을 좋아했던 범생이었지만, 살아 보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유효했던 시험의 주요 과목들은 삶의 기쁨과는 큰 관련성이 없는 듯하다.

온종일 예술가들의 예술혼에 허우적거리며 행복에 겨웠던 나는 새삼 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 그토록 숨 막히게 재미없는 일을 해 가며, 돈을 벌었구나.

사진 롯데콘서트홀 홈피 캡쳐
사진 롯데콘서트홀 홈피 캡쳐

공연은 롯데콘서트홀에서 밤 10시 넘어서 끝날 예정이었다. 그 시각에 서울서 인천으로 오는 두 가지 교통수단을 견주어보았다.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를 타고 길이 안 막히면 자동차로 50분 컷, 지하철을 타면 두 번을 갈아타고도 딱 두 배의 시간이 더 걸렸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혼잡한 1호선과 2호선을 떠올리니 답이 안 나왔다. 지하철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치이면 모처럼 공연에서 얻은 귀한 감동이 너덜너덜해질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같은 강남권인 미술관에서 공연장까지는 대중교통이 빨랐겠지만, 최종적으로 집에 오는 길을 고려해 결국 차를 끌고 갔다. 오고 가는 길이 쾌적하고 편했기에 내 차로 움직인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예술작품과 예술가가 준 경이로운 감격도 그 모양 그대로 수호할 수 있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두 번의 주차비 지불이 나로 하여금 부동산과 돈에 대해 골똘하게 만들었다. 관람객이라 주차비를 할인받았기 때문에 큰돈을 낸 건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도 유료 주차인 곳이 널렸으니 돈 내고 주차해 본 경험도 많이 있다.

대학시절, 짧게 서울 살이를 해 본 것 외에 서울이 생활 터전인 적이 없었던 나는 조금 의아스러웠을 뿐이다. 그날 하루 미술관에서 관람 티켓과 전시 관련 굿즈 구입으로 내가 쓴 돈은 10만 원이 넘었다. 공연장이 있던 건물에서는(푸드코트 밥 값을 뺀) 티켓 만으로 10만 원을 넘게 썼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인천에서 이 정도 돈을 쓰고 주차비를 낸 적은 없었다. 강남 3구(미술관은 서초, 공연장은 송파) 부동산의 시세를 고려할 때, 10만 원 남짓 쓴 고객이 무료 주차 베네핏까지 기대했다니. 이건 지나치게 나이브하고 양심불량인 심보였을까. 부가세 별도처럼,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의 공간이용료는 얄짤없이 별도인데 말이다. 

문화 인프라만 떼어놓고 봤을 때, 즐기고 감상할 거리가 집중된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번 주차비의 교훈으로 갖가지 비용들이 촘촘히 반영된 서울의 생활 물가를 (안 되는 머리로) 슬쩍 계산해 본다. 내가 만약 서울에서 의식주를 영위했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부동산과 돈을 바라보고 라이프스타일의 양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충분한 돈이 필요하다 생각하니 이 굴레가 약간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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