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연합뉴스 TV 관련화면 캡쳐
사진 연합뉴스 TV 관련화면 캡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의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 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회담에 대해 서방의 언론들은 ‘왕따(Pariah)회담’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이 국제사회에서 왕따인 것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푸틴의 경우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도발 전까지만 해도 G7이나 G20 회의에서 당당했던 위상에서 급전직하한 것이다.

과거 러시아 제국과 소련연방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푸틴으로서 이같은 급격한 위상 추락은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전범의 처지여서 최근 인도에서 열린 G20회는 물론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BRICS) 회의에도 참석치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제국주의 세력과의 성전(聖戰)이라며 러시아의 승리를 기원한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중국 인도 이란 등이 러시아를 지지한다지만 서방에 등을 돌린 상태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에 종전을 촉구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완전 고립된 푸틴의 입장에서 김정은의 지지만으로도 고마운데 무기지원까지 해 준다니 감읍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지각을 자주 해 ‘지각대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가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30분 전부터 기다렸다는 것이나, 예상밖으로 감정은의 평양방문 초청을 수락해 23년 만에 평양에 가기로 한 데서 푸틴의 절박감이 묻어난다.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과 함께 전승국이었고, 냉전시기에는 미국 다음의 강대국이었다. 북한과 중국을 조종해서 한국전쟁을 일으킨 공산주의 맏형 격인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고 감지덕지하는 상황이 됐다.

소련 시절 최고의 실권자는 당서기장이었는데, 스탈린을 비롯한 모든 당서기장 가운데 북한을 방문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이젠하워 이후 재임 초 암살된 케네디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한 차례 이상 방문한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소련 해체 후로도 북한을 찾은 러시아의 국가원수는 2000년에 평양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그가 다음에 평양을 방문한다면 해방 후 78년 만에 두 번째 평양을 찾는 소련의 국가원수가 되는 셈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변방일 뿐이었다는 반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반짝 주목을 받고 있는 모양새이나, 무기 외에 두 나라 사이에 거래할 물품은 별로 없다. 무기 거래도 서방의 감시를 피하는 비밀 거래여야 한다. 회담 후 푸틴이 북한과 관련한 협의를 위반하지 않겠다고 한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러시아의 지원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김정은이 푸틴과 함께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아무르 주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였고, 푸틴으로부터 위성발사기술에 대한 협력 약속을 얻어냈다. 지난 5월과 8월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에 잇달아 실패했고, 오는 10월에 세 번째 발사를 예고한 바 있다.

북한이 실패한 위성의 잔해는 우리 해군에 의해 인양돼 그들의 우주 기술의 밑천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세 번째 발사마저 실패한다면 북한의 망신은 치명적이다. 그것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첫 방문지를 우주기지로 잡은 이유일 것이다. 위성발사 기술은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미국도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은 우주기지 다음으로 하바로브스크 인근의 전투기 생산 공장과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러시아의 첨단 전투기와 전투함들을 둘러봤다. 북한의 주력 전투기나 전투함들은 한국전쟁 때 쓰던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낡은 것들이라 김정은의 방문 의도도 이해된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외교는 중국과 소련 및 러시아가 사실상 전부였다. 김일성이 비동맹 외교의 강자로 행세할 때 동구권 등 제3세계를 방문한 적이 있으나 김정일과 김정은은 두 나라 외에 밖으로 간적이 없다.

다만 김정은은 이번에 두 번째로 푸틴과의 회담을 갖게 됨으로써 미국 중국 러시아라는 이른바 3대 핵보유국 국가원수를 상대한 지도자가 됐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세 차례 만나 정상회담을 했고, 북미회담을 전후 해 중국에서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주석과 2차례 회담을 가졌다.

2018년 트럼프와의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중국에서 빌려준 여객기를 탄 것은 최초의 비행기 여행이었다. 그 밖에는 모두 아버지 김정일처럼 열차여행만 했다. 이번에도 평양에서 아무르 주까지 사흘간 열차로 갔다. 비행기로 3시간, 고속열차로는 7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광속의 시대에 우주개발을 꿈꾸는 그가 중세 시대 왕이 마차행차 하듯이 여행하는 모습은 갓 쓰고 디스코를 추는 기괴함이다. 북한에 만연한 빈곤과 기아를 놔두고 핵무기나 인공위성 개발에 매달리는 부조화도 보기 딱하다.

김정은은 강대국들이 자신을 상대해주는 것이 핵무기의 힘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핵개발 집착이 더 강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보다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고작 협박이나 할 뿐 쓰지도 못하고, 전범신세로 국제적 왕따가 된 푸틴의 신세를 보고 김정은에게 큰 깨달음은 올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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