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북극성은 보통 길잡이 별로 통한다. 대항해 시대 때 뱃사람들이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보고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한 데서 그 의미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극성이 어떤 별인지 찾아보니 그것은 사실 별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순위였다. 자전축 가장 가까운 곳에 떠 있는 1순위 별. 그래서 북극성은 고정된 별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이면서 바뀐다는 것이다.

돌아보니 내 인생 항해에도 나의 자전축을 밝혀주는 서로 다른 이름의 북극성들이 있었다. 엄마, 절친, 애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들. 쉼 없이 반복되는 자전 속에 그들은 느린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나의 1순위 별이 되어주었다. 그러다 언젠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운명인 듯 다가와 길잡이가 되어준 별. 그 별과의 추억을 되새김질해볼까 한다.

횟수로 3년 정도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인 돌봄 활동을 다녔다. 한 동물권 단체에서 구조한 새벽이와 잔디라는 돼지들이었는데 활동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맡아주자는 심정으로 꾸준히 다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는 길에 쇠사슬에 묶여 창고를 지키고 있는 일명 ‘지킴이 개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개와 함께 살아서인지 개에 대한 나의 마음은 좀 각별한 면이 있었다. 우리 개가 아니어도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개들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울컥해졌다. 창고지기 개들한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자유를 줄 수는 없지만 작은 즐거움이라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돌봄 활동을 갈 때마다 개들 간식거리를 챙겨 갔다. 개집 근처에 쌓여 있는 대변을 저 멀리 치워주기도 했다. 단 몇 분만이라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 이마와 등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은 반쯤 눈을 감고 나른해 보이는 표정을 짓다가 벌러덩 드러누워 배를 내밀기도 했다.

그렇게 묶여 있는 개 중에서 특별히 더 마음이 쓰이는 개가 있었다. 바로 ‘진0’이라는 이름의 암캐였다. 먹을 것을 주면 덥석 받아먹는 다른 개들과는 달리 ‘진0’이는 꼬리만 흔들 뿐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내민 간식을 기꺼이 받아먹게 된 뒤에도 내가 쓰다듬어 주려고 하면 겁먹은 눈빛으로 슬슬 뒷걸음질을 치곤 했다. 낯가림도 심하고 겁도 많고 털에 윤기도 없이 빼빼 마른 ‘진0’이. 그런데도 그녀는 쇠줄에 묶인 채 일 년에 두 번 정도 임신을 하고 새끼들을 낳아 젖을 물렸다.

사진 연합뉴스TV 관련화면 캡쳐
사진 연합뉴스TV 관련화면 캡쳐

‘진0’이가 강아지들을 낳을 때마다 나는 미역국을 끓여 갔다. 다른 간식도 두배 세배 더 싸 들고 갔다. 그녀가 정신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는 사이 등을 쓰다듬어보면 갈비뼈의 골이 선명하게 잡힐 정도로 말라 있었다. 어쩌다 마주친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중성화 수술’ 얘기를 꺼내기도 했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성난 목소리가 돌아올 뿐이었다. 태어난 지 한두 달이 지나면 어김없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들은 도대체 어디로 보내진 것인지는 차마, 묻지 못했다.

그저 나는 강아지들이 태어날 때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눈물로 베갯잇을 적실 뿐이었다. 쓰이는 마음의 크기만큼 그들에게 뭔가를 많이 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서였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다른 수많은 ‘지킴이 개들’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종을 넘어서, 같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동질의식 때문인지 견생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길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동물보호법 9조와 10조에 동물의 소유자가 지켜야 할 의무 사항들이 명시되어 있다. 거기에는 적절한 음식과 사육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외에도 운동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고 건강 관리도 해주어야 한다는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사항들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받지는 않다 보니 ‘지킴이’로 낙인찍힌 개들은 중성화는커녕 그 좋아하는 산책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행히 올해 1월에 이러한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이른 시일 안에 이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동물권 활동을 시작한 이래 나는 수시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대변해줘야 할 권리는 너무 많은데, 나서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실 인식에서였다. 나름 선량한 소시민으로서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의 껍데기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저런 동물권 활동을 하면서 마주했던 수많은 눈동자,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감정의 격동을 불러일으켰던 ‘진0’이의 눈빛이 여전히 나의 길잡이 별로 자리하고 있고 나는 그 눈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앞으로도 계속 항해해 나갈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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