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정주(定住)의 닻’ 높이 들고 안식처를 찾는 참닻꽃!

용담과의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풀. 학명은 Halenia coreana S.M.Han, H.Won & C.E.Lim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바람이 붑니다. 찬 바람이 붑니다. 계절이 바뀌려나 봅니다. 참으로 극성이던 2023년 붉은 여름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파란 가을에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가을은 눈보라와 북풍한설의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려줍니다. 이제 더 이상 객지를 떠돌지 말고 안온한 쉼터를 찾아 정착하라고 채근합니다. 길고 긴 인생의 항해를 그치고, 정주(定住)의 닻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화악산 정상 인근 풀밭에 핀 참닻꽃.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즈음 ‘정주의 닻’을 드리울 안식처를 찾는 듯하다. @사진 김인철
화악산 정상 인근 풀밭에 핀 참닻꽃.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즈음 ‘정주의 닻’을 드리울 안식처를 찾는 듯하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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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절기가 바뀌고 가을과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그리하여 또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일러주는 꽃이 있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이른 봄부터 무더운 여름까지 힘차게 달려온 긴 여정을 뒤돌아보며, 저마다의 보금자리에 들 때라고 말해주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참닻꽃입니다. 8~9월 햇볕이 잘 드는 높은 산 풀밭에서 파란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갈고리를 치켜든 참닻꽃의 황록색 꽃 무더기를 보면 끈질기게 머물 듯싶던 폭염의 여름이 저만치 물러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4개의 길쭉한 꿀주머니가 배를 정박할 때 쓰는 갈고리 모양의 닻을 똑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는 참닻꽃. 실제 보면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진 김인철
4개의 길쭉한 꿀주머니가 배를 정박할 때 쓰는 갈고리 모양의 닻을 똑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는 참닻꽃. 실제 보면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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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갈고리처럼 생긴 4개의 거(距, 꿀주머니)가 특징인 꽃 모양이 배를 멈춰 세울 때 사용하는 닻을 똑 닮았다고 해서 닻꽃으로 불렸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몽골, 일본 등지에 분포하는 닻꽃과 같은 종으로 분류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2019년 신종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국명은 참닻꽃, 학명은 ‘할레니아 코레아나(Halenia coreana)’입니다. 기존에 분류했던 ‘할레니아 코르니쿨라타(Halenia corniculata)’란 학명의 닻꽃에 비해 <꿀주머니가 길고 좁으며 안으로 굽었으며, 잎끝이 뾰족한 꼬리 모양>으로 형태상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는 주장이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것이지요. 또한 유전체 분석 결과에서도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이 차이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참닻꽃은 중국 등지에 분포하는 기존의 닻꽃과 달리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특산식물, 즉 한반도 고유 자생식물로 분류되었습니다.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한 본향으로 불리는 시베리아. 그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 호수 인근 자임카 자연휴양림에서 2015년 7월 만난 닻꽃. @사진 김인철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한 본향으로 불리는 시베리아. 그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 호수 인근 자임카 자연휴양림에서 2015년 7월 만난 닻꽃. @사진 김인철

닻꽃으로 불리던 2012년부터 이미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의 보호· 관리 대상으로 지정된 데서 알 수 있듯 흔히 만날 수 있는 야생화는 아닙니다. 북쪽에 고향을 둔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로서 화악산과 대암산, 방태산 등 불과 3~4곳의 높은 산 풀밭이나 숲 가장자리에 자생합니다.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풀인 만큼, 한두 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뿌리까지 고사하기에 자칫 서식 환경이 악화해 이듬해 싹을 틔우지 못하면 아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 예전에 지리산과 설악산, 한라산에서도 자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최근 수년간 발견된 기록이 없어 아예 절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8년  8월 백두산 인근 황송포 습지에서 만난 닻꽃. 참닻꽃과 달리 꿀주머니가 짧고, 잎끝이 길어 구별된다. @사진 김인철
2018년  8월 백두산 인근 황송포 습지에서 만난 닻꽃. 참닻꽃과 달리 꿀주머니가 짧고, 잎끝이 길어 구별된다. @사진 김인철
김 인 철
김 인 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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