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알렉산드르 푸슈킨

충성스러운 아버지와 놀기 좋아하는 16살 아들

러시아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II)는 독일 출신이다. 1762년 남편 표트르 3세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여황제에 올라 러시아를 34년간 통치했다. 행정개혁, 법치주의를 도입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으나 귀족을 우대하고 농민들을 농노로 전락시킴으로써 사회 부조화와 갈등을 만들었다. 1917년 러시아대혁명의 씨앗은 사실 이때 뿌려졌다고 할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예카테리나 2세 시절에 약 60번의 농민반란이 일어났으며 그중 푸가초프(Emilian Pugachev)의 반란이 가장 크고 유명하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반란자는 반란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소설을 남기게 되어 있는데 푸가초프의 반란도 소설의 소재가 되었으니 바로 푸슈킨의 <대위의 딸>(Капитанская дочка, The Captain‘s Daughter)이다. 1772년부터 1774년까지가 주된 배경이다.

200자 원고지 약 690매 분량의 중장편인 이 소설은 대부분의 러시아 소설이 그러하듯 3가지 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러시아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낯설어 기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박철수, 한혜자, 스미스, 줄리엣 등은 기억하기 쉽지만 안드레이 빼뜨로비치 그리뇨프, 이반 이바노비치 주린, 바실리 끼릴로이치 뜨레짜꼬프스키 등의 이름은 가독성(可讀性)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메모지를 옆에 두고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를 적어가면서 읽기를 권한다. 3번째는 지명이다. 러시아는 광대하기 때문에 어느 도시(마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어느 도시로 번졌는가를 실제 지도를 찾아가면서 읽으면 훨씬 이해가 빠르다.

심비르스크(=울랴노브스크)는 모스크바에서 동쪽 직선거리로 약 699km 떨어진 작은 도시이다. 지금 기차를 이용하면 15시간 걸린다. 볼가강과 붙어 있는 이곳은 1648년에 요새가 세워졌으며 1671년에 스텐카 라진(Stenka Razin)의 난으로 대혼란을 겪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17세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뾰뜨르 안드레이치 그리뇨프는 심비르스크의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귀족 청년이었다. 중령으로 퇴역한 애국심 충만한 아버지는 농노 300여 명을 거느린 부호였다. 그리뇨프가 16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입대를 명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유명한 러시아 국민문학 작가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유명한 러시아 국민문학 작가 푸슈킨

오지에서 오지로 떠나는 청년 장교

갑작스런 군 입대였으나 그리뇨프는 오히려 좋아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상사로 등록되어 있었기에 수도 빼제르부르크(지금의 레닌그라드)의 근위대 장교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근위장교가 되어 멋진 제복을 입고 화려한 대도시에서 호사스러운 나날을 보낼 것을 상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추천장을 써보내는 안드레이 까를로비치는 빼제르부르크가 아니라 오렌부르크라는 낯선 곳의 작은 요새 지휘관이었다. 오렌부르크는 현재 카자흐스탄과 접한 국경 마을이고 심비르스크에서 아래쪽으로 560km 떨어진 곳이었다.

하인 싸벨리이치와 길을 떠난 그리뇨프는 한겨울에 눈보라로 길을 잃어 죽을 고비와 마주쳤으나 낯선 사내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고 그에게 토끼털 옷을 감사의 선물로 준다. 고난 끝에 오렌부르크에 도착했으나 요새 사령관 까를로비치는 그리뇨프를 40km 더 가야 하는 벨로고르스크 요새로 보내버린다. 화려한 수도 빼쩨르부르크를 꿈꾸었으나 동쪽 작은 도시에 가까스로 도착하고 그마저도 근무처가 아니라 가장 변두리로 배속된 것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 옆에 충직한 하인인 싸벨리이치가 밤낮으로 보살펴준다는 것과 소위라는 장교 계급장이었다.

1770년대를 뒤흔든 농민반란 지도자 푸가초프
1770년대를 뒤흔든 농민반란 지도자 푸가초프

반란에는 반드시 사랑과 배신이 있다

벨로고르스크 요새의 지휘자는 이반 꾸즈미치 대위였다. 그 옆에는 아내 바실리사가 있었는데 사실상 그녀가 요새의 지휘를 맡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외모를 지니고, 수줍음을 많이 타고, 겁이 많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딸 마리야 이바노브나가 있었다. 그리뇨프는 그녀에게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중위 쉬바브린은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변방 오지의 요새이지만 사람들은 착하고, 하인이 있고, 장교이고, 전쟁의 징조도 없었기에 무사히 군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전체적으로 커다란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고, 벨로고르스크 인근에는 정통 슬라브인, 카자크(코사크)인, 바슈끼르인, 끼르기스인 등 여러 민족이 뒤섞여 위태로운 평화를 가까스로 유지하는 상태였다.

결국 1773년 10월 초순, 분리파(分離派) 교도 돈 까자크 예밀리안 뿌가초프가 감옥을 탈출해 스스로를 표트르 3세라 칭하고 농민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굶주리고 차별받는 카자크인들을 규합해 변방을 종횡무진하며 요새를 함락시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윽고 벨로고르스크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평원에 진을 쳤다.

전투의 결과는 빤하다. 작은 요새의 수십 명에 불과한 뒤죽박죽의 병사들이 대규모의 반란군을 이길 수는 없다. 더구나 그들은 여러 인종이 섞인 다민족 군대였고, 배신자는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이반 꾸즈미치 대위와 아내 바실리사는 처형당하고, 이제 그리뇨프가 올가미에 매달릴 차례였다. 그때 급반전의 상황이 펼쳐진다. 과연 그리뇨프는 어떻게 목숨을 구하고, 대위의 딸 마리야는 어떻게 될까?

레닌그라드에 있는 푸슈킨 동상
레닌그라드에 있는 푸슈킨 동상

역사와 로맨스의 극적 조화

이 소설은 푸슈킨이 1833년에 착상하여 4년 후 완성되어 <쏘브레멘니크>에 발표되었다. 푸슈킨은 극비문서인 푸가초프의 반란 자료를 열람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으며 <뿌가쵸프 반란사>라는 책도 집필했다.

1장 ‘근위상사’에서 시작하여 14장 ‘사문’(査問)으로 끝나고 부록으로 ‘제13장의 보유’가 붙어 있다. 이 부록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각 장마다 러시아의 시, 민요, 속담 등이 첫머리에 첨가되어 있으며, 14장 마지막에는 1836년 10월 19일이라는 발행 날짜가 표기되어 있다.

이 소설은 자칫 역사소설로 끝날 수도 있었고, 로맨스 소설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푸슈킨은 역사 자료를 근거로 반란과 충성, 사랑과 배신,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극적 조화를 이룬 명작을 탄생시켰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에 마리야가 여황제를 만난다는 설정이다.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골의 평범한 처녀가 황제나 대통령을 우연히 만나 무언가를 하소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푸슈킨도 이를 잘 알고 있었겠으나 해피엔딩을 위해 그렇게 설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더 알아두기

1. 알렉산드르 푸슈킨(Alexander Sergeyevich Pushkin)의 어머니 오시포브나 한니발은 에티오피아 황태자의 후손이다. 즉 아프리카인의 피를 지니고 있었기에 푸슈킨의 사진을 보면 전형적인 러시아인의 얼굴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32세 되던 1831년에 나딸리아 곤챠노프와 결혼했으나 그녀는 사교계에 빠져 낭비가 심했다. 푸슈킨은 빚쟁이가 되었으며 값나가는 살림살이는 전부 전당포에 저당이 잡혔다. 급기야 곤챠노프와 프랑스 장교 조르쥬 단떼스와의 염문설이 나돌았고, 화가 치민 푸슈킨은 그와 권총 결투를 벌여 1837년 1월 29일, 38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결혼한 지 6년만이었다.

3. 대표 소설 중 하나인 <예브게니 오네긴>(Evgenii Onegin)은 시 형식의 소설로 1823년 집필을 시작해 1832년 완성되었다. 1878년 차이콥스키가 오페라로 작곡했다.

4. 코사크인의 공산혁명을 그린 소설은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Tikhii Don)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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