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곳을 생활관이라 불렀다. 실제로 그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1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생활했으니, 어쩌면 가장 적절한 단어였는지 모른다. 나는 이 글에서 생활관이라는 말 대신 그곳을 ‘방’이라고 부르려 한다.

그 방에는 항상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1년 365일 라디오는 꺼진 적이 없었다. 누가 언제부터 틀어 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이미 그 방에 처음 간 날부터 나오는 날까지 라디오는 여전히 켜져 있었다. 매일 그 빨간색 라디오에선 음악과 말소리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그 방에 누가 있든, 없든 말이다. 그 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라디오가 쓸모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라디오는 때론 시간을 알려주기도 했고, 때론 혼자가 아님을 일깨우기도 했다. 간혹 즐겨 듣던 음악이라도 나오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행복을 주기도 했다. 너무나 두려웠던 밤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라디오에서 흐르는 어느 얼굴 모를 DJ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료사진 논객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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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 라디오는 사실 그 어떤 도움이 되질 못 했다. 나는 그 방을 떠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방이 두렵다. 매일 밤 그 방에서 일어났던 폭언과 폭력이 두렵다. 폭력은 한 인간의 존재를 세상 그 무엇보다 작게 만든다. 매일 일어나는 ‘폭력’에 익숙해질수록 그 방에 존재했던 모든 입체적이었던 것들은 면에서 선으로, 선에서 점으로, 점에서 결국 무로 바뀌었다. 그것이 내가 깨달은 폭력의 실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두려워졌다. 그 방에서 내가 알던 나라는 인간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폭력에 노출될수록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비슷한 얼굴을 할까 두려웠는지 모른다.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 가해자가 될까 더 두려웠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거대한 체제 앞에서 내가 순응하거나 방관자, 혹은 동조자가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밤은 역설적으로 가장 힘겨운 시간이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두려웠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루는 어떻게든 끝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언제나 죽은 듯이 자려고 애썼다. 때로는 다음 날이면 영원히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랐던 순간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방에서의 기억이 모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방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경험이라고 말하면 너무 상투적일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폭력과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고, 그 무엇도 나를 지킬 수 없었다. 일종의 수인처럼 스스로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것만이 전부였다. 나는 그 방에서 시간의 무게를 배웠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그 방에 있었던 이들은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체제에 순응한다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일이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방에는 그때와 같이 라디오가 켜져 있다. 그때와는 다른 목소리, 그리고 다른 음악이 흐른다.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불현듯 나는 그 방에서 지났던 하루에 대해 떠올린다. 지금, 그 방에는 누가 고통 속에서 또 하루를 견뎌내고 있을까? 그도 그때 그 시절의 나와 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지옥 같았던 하루를 견뎌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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