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 드라이펜]

지난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 갔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북녘 땅이 내려다보이는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사업구역 안 임진강변의 동화(同和)경모공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이 공원묘지는 노 대통령 재임 중인 1992년 통일을 갈망하는 이북도민들과 파주 시민들의 생전에 이루지 못한 망향의 한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유일한 외지 출신자로 이곳에 묻혔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지위 외에도 통일동산 조성사업의 공로가 인정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은 있었지만 가족들은 이곳을 택했습니다.

‘보통사람 노태우’가 그의 정치적 캐치프레이즈였듯이 묘소는 경내 면적이 다소 넓다는 것 외에 다른 일반인들 묘소와 같았습니다. 현충원에 묻힌 전직 대통령들처럼 봉분형이 아닌 평장형 묘 앞에 “민족의 번영과 통일을 염원하며 대한민국 13대 대통령 노태우”라고 적힌 비석 하나만 누워 있었습니다.

전 두환 전 대통령의 유골함. 2주기가 다가오고 있으나 안장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자택에 보관 중이다@사진 연합뉴스
전 두환 전 대통령의 유골함. 2주기가 다가오고 있으나 안장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자택에 보관 중이다@사진 연합뉴스

추도식 후 돌아오는 길에 필자는 노 대통령과 군인의 길, 정치인의 길을 같이 걸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 대통령보다 한 달 늦은 그해 11월 23일 타계한 전두환 대통령은 2년째 영면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 유골함 속의 한 줌의 재로 보관돼 있습니다.

이승에서는 노 대통령보다 한발 앞서 걸었던 전 대통령이었지만 저승길은 여러 걸음 뒤처져 아직도 이승과 구천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유골이 묻힐 곳을 못 찾고 이승의 자택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은 가족사의 비극을 넘어, 국가적인 괴담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해선 두말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스스로 생전부터 자신이 죽어서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유언으로 “죽어서 북녘땅이 보이는 전방의 고지 위에 백골로 남고 싶다”고 했을 것입니다.

매장이든 화장이든, 사람은 죽어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역사에 남을 위인에 대해서는 분묘를 크게 쓰고, 비석에 업적을 새겨 기렸습니다. 그런 예우는 왕조시절 대개의 왕과 고관대작에게 주어져 역사적인 유적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전통은 오늘의 공화제 시대로 이어져 전직 대통령 장례를 규정한 국가장법이 있습니다. 그 법에 따라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높다란 봉분과 기념비를 갖춰 동작동 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도 그 법에 따라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생전의 치적에 대한 엇갈린 평가로 인해 현충원 안장 여부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 끝에 전두환 대통령의 장례는 미완상태로 남게 된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성품으로 미뤄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는 유언이 전방고지에 큰 봉분과 기념비를 갖춘 묘역으로 남고 싶다는 의미는 아닐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한 줌의 재로 돌아가겠다는 산골장(散骨葬)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요?

그 유언을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유족이나 5공 출신 인사들의 입장에선 아무런 기념물 하나 없이 재로 뿌린다는 것에 허무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그들은 이제 고인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를 마음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전직 대통령의 장례는 현충원 안장 외에 가족장으로 향리에 묻힌 대통령도 있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산골장으로 치른다면 새로운 형식의 깨끗하고, 시대의 조류에 어울리는 전직 대통령 장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런 장례는 우리에겐 낯선 듯해도 중국에선 흔한 일입니다. 중국 개혁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등소평의 유골은 “바다에 뿌리라”는 유언에 따라 반환 전의 홍콩 앞바다와 분단의 현장 대만해협 사이에 뿌려졌습니다. 주은래 총리와 강택민 주석의 유골은 그들의 향리에 있는 양자강에 뿌려졌습니다.

모택동 주석은 화장하라는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광을 필요로 했던 공산당 지도부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체를 미라 처리해 천안문 광장 밑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인은 미라의 모택동보다 흔적 없는 등소평을 더 깊게 추앙한다고 합니다.

2주기를 앞둔 전두환 대통령의 장례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전 대통령이 초급장교였을 때 부하들과 오르내렸을 전방의 고지에다 유골을 뿌리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 유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정치적 유불리를 저울질하며 장례를 방치한다면 그건 정부의 직무유기일 뿐입니다.

#이 칼럼은 논객닷컴과 자유칼럼 그룹간의 전재 협약에 따라 게시된 글입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