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주저 없이 마음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굳이 타인의 마음까지 운운할 필요가 없는 것이 누가 뭐래도 내 것임이 확실한 나의 마음일 때조차 마음이라는 것은 늘 어렵고 또 어려웠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어'라는 이 모순적이고 무책임한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 건 나이가 들고나서부터였다. 마음이 관장하기로 작정한 영역에서 나란 존재는 매번 무능했고, 항상 패배했다. 상황과 국면이 변한 마당에도 움직이지 않겠다 고집부리는 마음을 기다리는 건 일상다반사가 되었고, 그 세월이 길어져 애를 먹고 있는 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경험이 누적된 덕분일까. 거품 물며 질색했던 우유부단함, 애매모호함, 회색 지대에 대한 눈초리가 예전보다는 좀 더 너그러워졌다.

안 그래도 난이도 최상인데 여기에 마흔이라는 수식어까지 보태지니 마흔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참 감당이 안 된다. 40이란 숫자가 주는 중년어른의 무게감은 나를 묘하게 짓누르는 경향이 있다. 미완성을 변명 삼기엔 왠지 자존심이 상하고, 미숙함을 무기 삼자니 도무지 귀여운 구석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당황 묻고 환장 더블로 가는' 건 여전히 내가 말도 못하게 미완성이고 미숙하다는 것이다. 간간히 수양을 하면서도 마흔의 미완성과 미숙함이 어때서 하는 반작용으로 요즘 나는 그렇게 옛것을 찾아보고 듣는다.

우선 매일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1983년 인순이와 리듬터치의 댄서로 활동을 시작한 김완선 언니의 5집 '가장무도회'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무한반복하고 있다.

-진실은 회색빌딩 사이로 숨어버렸나 아무도 마음 깊은 곳을 보여주려 하지 않네

모두들 검은 넥타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술 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김완선(가장 무도회,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자료사진 논객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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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국민학교 때의 나는 어느덧 마흔이 되어 그 가사를 사무치게 느끼는 '마음'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난 차라리 슬픔 아는 삐에로가 좋아 예예예예. 가히 명곡이다. 

또 얼마 전에는 고길동 아저씨의 편지를 뒤늦게 찾아 읽는데 찔끔 눈물이 났다. 1983년생 아기공룡 둘리 40주년을 맞아 만화 영화 배급사가 공개한 편지였다. 내가 참 좋아했던 에피소드, 둘리 소인국과 꼴뚜기별의 왕자님을 추억하려다가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해 나가는 것. 내가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 모든 거절과 후회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음을 아는 것.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혜안은 거부하기엔 값진 것입니다.

둘리야, 네가 이제 마흔이라니. 철 좀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껄껄. 철들지 말 거라. 네 모습 그대로 그립고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건강해라.

하다 하다 아기공룡 둘리 속 못된 캐릭터였던 고길동의 말에 이렇게 뭉클할 일인가 싶었지만, 그 어떤 말보다 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지금 다시 읽는데도 눈물 맺히는 주책)

방금 TV를 켰는데 구리뱅뱅 양동근 배우가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가를 부른다. 곧바로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를 따라 부르는 나. 

나쁜 짓을 하면 우리에게 들키지. 동시성의 장난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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