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나다니엘 호손 (The Scarlet Letter)

끝없는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

인간이 저지르는 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크게 나누면 3가지이다.

첫째,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일부 종교에서는 나를 죽이는 것도 죄에 해당한다), 둘째,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손해를 입히는 것, 셋째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성적 관계를 맺어 아기를 출산하는 것은 죄일까? 아닐까? 여기에는 여러 전제가 깔려 있다. 만약 남편이 승낙했다면 죄가 아닐 수도 있고,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면 역시 죄가 아닐 수도 있다. 원초적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면 성인 여자와 남자가 성적관계를 맺는 것이 과연 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습, 종교적 교리, 도덕에 대한 개념 등 여러 요건이 개입된다.

만약 그것이 죄가 된다면, 과연 여자는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가? 또 남자는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가? 첫 번째의 ‘죄가 되는가’와 더불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가’는 끝없는 논란을 일으키기는 해도 결국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가 된다.

200년 전 미국 보스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간단한 해결책을 내렸다. 두 번째 벌은 여자의 가슴에 주홍색으로 A를 새기는 것이다. 정확히는 A를 헝겊에 새겨 평생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은 없으며, 살아가는 데도 큰 지장이 없다. 다만 수치스러울 뿐이다. 여자에게 용기가 있다면 그 마을을 떠나 아주 먼 곳에서 이름과 A를 숨기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헤스터 프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 번째 벌은 감옥에서 풀려나와 마을 한가운데 광장에 자리한 처형대 위에 3시간 동안 서있게 하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은 약간 있을지언정 심한 고통은 아니며 3시간이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이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고 손가락질 한다 해도 3시간만 버티면 된다. 다만 수치스러울 뿐이다.

만약 이 벌을 오늘날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살인한 사람,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 거짓말한 사람을 광화문 광장에 3시간 동안 세워놓고 그 아래에 그의 이름과 죄명을 적은 큰 팻말을 걸으놓으면 어떻게 될까? 조선시대로 돌아가 그 사람의 이마에 罪(죄)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면 어떻게 될까?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으나 죄를 짓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호손은 미국의 초기 청교도 시대에 죄와 벌의 문제를 다루었다.
호손은 미국의 초기 청교도 시대에 죄와 벌의 문제를 다루었다.

수치스러운 형벌보다 더 가혹한 것

홀로 사는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적어도 5개월을 넘어서면 주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상대 남자는 누구일까?’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여자와 신(神) 외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보스턴의 고위관리들은 헤스터에게 남자가 누구인지 밝히면 형을 감량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당신이라면 남자의 이름을 밝히겠는가?

이 문제 역시 쉽지 않다. 만약 여자가 이름을 밝혀도 남자가 딱, 잡아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수개월 후에 아기가 태어난다 해도 아버지를 밝혀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얼굴이 닮았다, 키가 닮았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이유로 어떤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200년 전에 유전자검사가 있었다 해도 마을 남자 전체를 강제적으로 유전자검사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헤스터는 매우 강한 여자였기에 남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끝내 거부했다. 또 그에 대한 설명도 이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젊고 잘생기고 신앙심 강한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 독자들의 용의선상에 오를 뿐이다.

주인공 곁에는 그를 파멸로 이끄는 상대 인물이 반드시 등장한다. 그는 의사 노인 로저 칠링워드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뛰어난 의사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는 딤즈데일 목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번민하고 몸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될 때 그를 돕겠다고 자처하고 나선다. 그런데 딤즈데일의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과연 로저는 누구일까?

또 한 명의 주요 인물은 펄 프린이다. 헤스터가 외간남자와 성관계를 맺어 출산한 딸이다. 펄(Perl)의 뜻은 진주이다. 진주는 순결을 상징하며 아픔 없이는 만들어지지 못한다. 간통한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순결의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감옥에서 나온 헤스터가 A를 평생 가슴에 새기는 형벌을 안고서도 홀로 세상을 이겨내는 이유는 펄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그 펄이 7살이 되었을 때 헤스터와 딤즈데일은 새로운 삶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용의주도하고 사악한 로저는 모든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과연 네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호손은, 인간은 누구라도 가슴속에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논증했다.
호손은, 인간은 누구라도 가슴속에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논증했다.

내 마음속의 주홍글씨

이 소설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서 사건의 전개보다는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기 쉽지 않고, 대화도 많지 않다. 서구 문학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듯 삶과 정의, 도덕과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곱씹게 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한국 문학이 세계화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요소이다).

마을의 판관들은 헤스터에게 말한다.

“사람이 수치로 생각해야 할 것은 죄를 짓는 데 있는 것이지, 그것을 사실대로 고백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오.”

그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해야 하는가?

또한 이 사건의 관찰자이자 화자는 이렇게 단정 짓는다.

“이 사회의 기원과 진보 그리고 오늘날의 발전은 젊은이의 충동적 혈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 노인의 평범한 생활의 지혜로 이룩된 것이다. 젊은이들의 허황한 상상이나 기대가 최대한도로 억제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말에 얼마만큼 동의하는가?

로저는 헤스터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겉으로 드러난 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일이든 비밀은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오.”

만약 당신이 어떤 나쁜 일을 비밀스럽게 했다면 그것이 평생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가? 주홍글씨를 목에 걸고 다니는 형벌이 없다 하여 마음속의 주홍글씨까지 없앨 수 있겠는가? <주홍글씨>는 헤스터의 ‘정숙하지 못한’(200년 전) 성관계를 매개로 인간의 근원적 양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주홍글씨의 삽화. 단 위에 서있는 남자는 딤즈데일 목사이다.
주홍글씨의 삽화. 단 위에 서있는 남자는 딤즈데일 목사이다.
호손이 일했던 메사추세츠 세일럼의 세관. 소설의 첫머리에 나오는 ‘세관’은 이곳을 말한다.
호손이 일했던 메사추세츠 세일럼의 세관. 소설의 첫머리에 나오는 ‘세관’은 이곳을 말한다.

* 더 알아두기

1. 호손(Nathaniel Hawthorn, 1804~1864)의 가장 유명한 단편은 <큰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1850)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었다.

2. <주홍글씨>는 1장 ‘감옥 입구’에서부터 24장 ‘종말’까지 24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책은 앞에 ‘세관’이 붙어 있기도 한다. 일종의 머리말이다. 이를 건너뛰어도 된다.

3. 죄와 그에 따른 벌의 문제를 다룬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톨스토이의 <부활>을 들 수 있다.

4. 서구(유럽과 미국, 러시아)의 소설들에는 거의 대부분 성경이 등장한다. 서구 문학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성경(특히 구약)을 한번쯤 읽으면 이해가 더 빠르다.

5, 우리가 흔히 발하는 주황(朱黃)색은 Orange 혹은 Dark Orange로 표기되고, 주홍(朱紅)색은 Scarlet 으로 적는다.

6. 미국 초기 개척 시기의 문학작품들로는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의 <스케치북>, 제임스 쿠퍼(James F. Cooper)의 <모히칸족의 최후>, 헨리 소로우의 <월든>,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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