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산소리]

마크 피터슨이라는 교수가 미국인을 상대로 강의하는 유튜브 동영상에서 대한민국은 "아름답고 경제가 성공한 나라입니다."로 시작합니다. 볼수록 뿌듯한 영상입니다. 어릴 때 지리책에서 사람은 많고, 자원은 없어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랬던 우리가 여전히 천연자원이 없으면서도 선진국 대열에 올랐습니다. 바로 사람 덕분이 아닐까요? 사람이 기술을 익히고,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여 부를 가져왔기 때문일 겁니다. 곧 우수한 기술 분야 인력자산이 오늘 한국을 만든 것이지요. 처음에는 기술 인력이 시작했고, 이제는 문화 인력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기술개발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위원장 백만기) 자료에서 우리나라 특허출원 건수와 국내총생산(GDP)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특허 건수가 늘어날수록 총생산이 늘어났습니다. 또, 그 자료에는 특허건수가 1%가 늘어날 때 총생산은 0.65%가 늘어난다는 도이칠란트 뮌헨대 연구 결과도 소개돼 있습니다.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에 적용함으로써 경제가 성장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경제가 성장하여 기술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생겼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기술개발과 경제성장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글씀이(필자)의 기억으로 1960~70년대에 어린 학생에게 과학자는 미래의 꿈이었습니다. 미래 희망이 과학자란 말을 꺼내면서 뿌듯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현실은 그게 헛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나 기술자는 세상이 어려워지면 맨 먼저 버림받을 대상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해준 사건 덕분이었습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회사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으로, 당장 목숨에 지장 없다고 생각되는 연구원을 먼저 잘랐습니다.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위급해지면 제일 먼저 잘리는 사람이 연구개발 인력이란 것을. 그 뒤에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로 몰려가는 현상, 의대 쏠림이 생겼습니다. 의대 쏠림은 생명체 반응이었습니다. 생명체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 쏠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심해질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혁신특별위원회가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R&D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천막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혁신특별위원회가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R&D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천막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예산을 짜면서 연구개발비 예산을 16.6% 잘랐습니다. 현상을 유지하려면 평균 증액률 4.5% 정도가 늘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대폭 잘랐으니 재앙 수준입니다. 물론 불합리하게 쓰이는 돈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예산을 잘라낸다면 뭐라 그러겠습니까? 정부에서 예산 짜는 사람의 능력이 불필요하게 쓰는 돈을 콕콕 골라내어 자를 정도로 높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능력이 안 되면 일괄 몇 %로 칼질하도록 강요합니다. 저런 기준에서는 개별 상황을 고려할 수 없습니다. 일괄 적용 당시 엉터리였든 아니든 많이 확보해 두었던 쪽이 짱입니다.

회사가 경제 위기를 겪을 때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잘랐습니다. 이럴 때 불필요한 사람이 떠날 것 같지만, 현실은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떠납니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구조 조정했는데, 결과는, 그 회사는 더 빨리 망합니다. 물론 제대로 구조 조정한 회사는 그 뒤 더 성장했겠지만요.

우리나라 기업의 연구개발비 투자액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구 만 명당 연구원 수가 90.6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1위지만, 이공계 박사 학위 소지자는 39명으로 평균(49.2명)을 밑돌아 36개국 중 21위에 그친다고 합니다(국민일보 기사에서 인용). 다가올 우리나라 미래 모습이 걱정스럽습니다.

옛 우리 어머니는 부엌에 작은 쌀독을 놓고, 밥할 때 한 종지씩 쌀을 모았습니다. 지금 당장 어렵고 배고프지만 저축하지 않으면 앞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현대판 쌀독은 기술 개발과 기술 축적입니다. 연구개발 예산은 사람을 키우는 돈입니다. 지금 배고프다고 종자 볍씨로 밥해 먹으면 새해 농사는 없습니다. 지금 배고프다고 씨암탉 배를 가르면 달걀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카르텔이란 칼로 씨암탉 배를 가르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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