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백두 평원을 노랗게 뒤덮는 ‘멸종위기’ 노랑만병초!

진달래과의 상록 활엽 관목. 학명은 Rhododendron aureum Georgi.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6월 중순 만개한 백두산의 노랑만병초. 수목한계선 위쪽 고원 지대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멀리 봉우리 기슭마다 남아 있는 만년설과 사스래나무 숲이 노랑만병초의 대규모 자생지인 높이 2,750m 백두산의 위용을 말해준다.@사진 김인철
6월 중순 만개한 백두산의 노랑만병초. 수목한계선 위쪽 고원 지대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멀리 봉우리 기슭마다 남아 있는 만년설과 사스래나무 숲이 노랑만병초의 대규모 자생지인 높이 2,750m 백두산의 위용을 말해준다.@사진 김인철

털복주머니란, 암매, 나도범의귀, 갯봄맞이꽃, 독미나리, 장백제비꽃, 홍월귤, 피뿌리풀, 분홍장구채, 큰바늘꽃, 산작약, 기생꽃, 대성쓴물, 조름나물·…. 들어본 듯도 하고, 생소하기도 한 이들의 공통점은?

개체 수가 크게 줄고 있어 작금의 위협 요인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머지않은 장래에 아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 멸종위기식물 가운데 북위 40도 이상 아한대 지역에 그 뿌리를 둔 북방계 식물이란 점입니다. 그 옛날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타고 저 멀리 제주도까지 밀고 내려갔던 북방계 식물들이 기온이 오르면서 긴 세월에 걸쳐 대부분 멸종했고, 현재는 겨우 수십 종이 설악산과 한라산 등 높은 산 정상 부근이나 기온이 낮은 골짜기 등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2007년 설악산에서 발견돼 현재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관리 중인 노랑만병초도 그중 하나입니다.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67년 이후 문헌상으로 전해지던 그 실체를 40년 만에 확인’ 제하의 보도 자료를 통해 “백두산의 대표적인 고산식물로서 남한 내 자생 여부가 불분명하고 문헌상의 기록만 남아있어 학자에 따라 남한에 자생하지 않는 생물로 여겨 왔으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모니터링을 통해 남한에도 자생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발 1,6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약 50㎡ 면적에 수십 개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군락’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불과 수십 개체가 털진달래 등 다른 관목의 위세에 눌려 겨우 연명하는 위태로운 실정입니다.

생김새는 철쭉을 닮았고, 색은 옅은 노란색, 또는 흰색인 노랑만병초꽃. 긴 타원형에 두툼한 가죽질의 잎을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했다고 해서 ‘만병초’란 이름이 붙었다.@사진 김인철
생김새는 철쭉을 닮았고, 색은 옅은 노란색, 또는 흰색인 노랑만병초꽃. 긴 타원형에 두툼한 가죽질의 잎을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했다고 해서 ‘만병초’란 이름이 붙었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이렇듯 한반도 북방계 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하면서 해발 2,750m 백두산이 식물학적 차원에서 그 가치를 새롭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토와 민족과 국가의 시원(始原)이라는 상징성 차원에서뿐 아니라,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고향이자 보고, 마지막 안식처라는 면에서 그 중요성을 새삼 인식한 것이지요. 높이 2,500m가 넘는 봉우리만 16개에 이르는 백두산과 그 일대에 2,300종 이상의 식물이 서식하는데, 특히 6월부터 8월 사이 해발 2,000m 안팎의 고원은 두메양귀비를 비롯해 들쭉나무, 홍월귤, 두메자운, 바위구절초, 노랑만병초, 가솔송, 좀참꽃, 구름범의귀, 돌꽃 등 300여 종의 북방계 야생화가 무더기로 피는 천상의 화원(花園)으로 변모합니다.

특히 6월 중순 해발 1,000m 안팎의 수목한계선 위쪽 툰드라 지대에 올라서면 여기저기 높은 봉우리 사이사이 그늘진 곳에 잔설(殘雪)로 남은 만년설과는 차원이 다른, 연노랑 군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키 작은 관목과 초본·이끼류·지의류가 잔디밭처럼 펼쳐진 백두평원에서 방대한 규모의 연노랑 물결로 일렁이는 꽃, 바로 노랑만병초입니다. 풀 ‘초(草)’를 이름 뒤에 달았지만, 엄연히 나무인 노랑만병초는 들쭉나무 등 다른 키 낮은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고산 툰드라 지대를 살아가는 전형적인 북방계 관목입니다.

백두산 높은 골 기슭의 노랑만병초 군락. 멀리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천지를 에워싸고 있는 16개 고봉 중 하나인 높이 2,670m의 천문봉이다.@사진 김인철
백두산 높은 골 기슭의 노랑만병초 군락. 멀리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천지를 에워싸고 있는 16개 고봉 중 하나인 높이 2,670m의 천문봉이다.@사진 김인철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높이 1m까지 자란다고 돼 있는데, 실제 백두산에서 만난 노랑만병초는 30~50cm 정도로 어른 무릎에도 못 미칠 만큼 키가 작았습니다. 꽃 색은 흰색에 가까운 노란색 또는 흰색으로, 한낮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꽃 더미는 한겨울의 설원 같습니다.

비슷한 식물로 같은 진달래과의 만병초가 있습니다. 키가 3~7m로 크고, 꽃 색이 흰색 또는 연분홍색이며, 잎 뒷면에 잔털이 있어 구분됩니다. 설악산과 지리산, 태백산, 함백산, 성인봉 등 제법 여러 곳에서 자생합니다.

노란만병초와 꽃과 잎 모양이 똑 닮은 만병초. 키가 4m 안팎으로 크고, 잎 뒷면에 잔털이 있어 구별된다. 6월 하순 강원도 함백산에서 만났다.@사진 김인철
노란만병초와 꽃과 잎 모양이 똑 닮은 만병초. 키가 4m 안팎으로 크고, 잎 뒷면에 잔털이 있어 구별된다. 6월 하순 강원도 함백산에서 만났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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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인 철
 김 인 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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