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도 맞장구]

얼마 전에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서,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위원인 서정숙 의원이 “온통 ‘나 혼자 산다’와 ‘불륜 사생아, 가정파괴 드라마’가 너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서 방송사 프로그램 편성에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한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저출산의 원인으로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를 지목한 겁니다. 이 주장은 큰 반향을 얻지는 못하고 뉴스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지만 잠깐 멈춰 서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재밌게 보고는 있지만 ‘나 혼자 산다’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이 너무 혼자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과 저출산을 무작정 연관 짓는 건 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어 보입니다. 다만, 혼자 사니 외로울 때도 있을 텐데 그런 모습은 방송에 전혀 보이지 않아 시청자가 ‘혼자 사는 게 상팔자’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현무나 박나래가 한밤중에 “혼자 소주를 마시며 외로워서 못살겠어요”라고 말하며 슬퍼한다면 예능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멘터리가 되겠지요?

그래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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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방송은 방송으로만 보는 시청자가 많아지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능프로그램은 즐기기 위해 보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의식이 거의 100년이 되어 가는 피하주사이론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줍니다. 피하주사이론은 인체에 주사를 놓으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듯이 미디어에서 다루는 주제는 대중에게 즉각적으로 효과를 준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비슷한 내용의 이론으로는 탄환이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미디어의 영향력이 총알처럼 빠르게 대중들의 의식을 뚫고 들어간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들은 매스미디어를 정치적 군사적으로 이용하던 시대의 낡은 사고입니다. 1차 세계대전과 독일의 나치정권,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에서의 선전활동을 모델로 한 이론입니다.

이런 고전적인 미디어 이론 이후에 등장한 것이 미디어 수용자의 선택적 수용을 다룬 ‘이용과 충족’ 같은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미디어 수용자를 꽤 능동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즉,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으로 봅니다. 여기서 미디어는 수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다른 수단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TV프로그램이 시청률에 목을 매는 이유입니다. 만약에 미디어를 누군가 다시 통제할 수 있게 되어서 TV 채널이 다시 3개 정도로 줄고 신문사도 4대 일간지만 남게 된다면 매스미디어는 옛날처럼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줄 겁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재앙이 발생하지 않는 한 다시 그런 시대로 돌아가지는 못할 겁니다.

30년간 방송을 하면서 필자가 체감한 미디어의 효과는 매우 복합적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엔 방송의 의도와 전혀 다른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시청자에게 이쪽을 보라고 하는데 저쪽을 보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지방의 온천에서 폐수를 여과 없이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걸 잠입 취재해서 고발했더니 오히려 손님이 몰려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고발의 내용보다 “근처에 온천이 있었구먼!”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고발이 홍보가 된 겁니다. 반대로 몸에 좋다는 음식의 경우는 반응이 즉각적입니다. 흔히 줄여서 건기식이라고 부르는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아침 매거진 방송에 단골로 등장하는데 연예인 같은 의사들이 등장해서 효과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줍니다. 이 건기식도 유행이 있어서 오래전에는 아로니아 열풍이 불더니 요즘은 콘드로이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아침 방송에서 콘드로이친의 긍정적인 효과를 얘기하면 옆 채널, 홈쇼핑에선 콘드로이친을 팔고 있습니다. 홈쇼핑에서 콘드로이친을 판매하는 사업자가 돈을 주고 방송프로그램에 협찬을 하는 경우입니다. 방송의 약빨이 즉각적이니까 이런 행태가 반복되는 거겠지요.

다양하고 복합적이고 가끔은 이율배반적인 대중의 태도를 고려하면 단순히 “이런 프로그램이 문제다.”라고 공식석상에서 발언하는 건 좀 가벼운 처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의 얘기는 밥 먹다가 또는 차 한잔 하다가 친구끼리 우스갯소리로 “요즘 TV 프로그램 제목이 정상이 아닌 것 같아, 나 혼자 산다, 신발 벗고 돌싱포맨, 돌싱글즈… 이거 뭐 돌싱 아닌 사람 서러워서 살겠니? 그리고 혼자 사는 게 부럽긴 하더라. 애 키우면서 아등바등 사는 입장에서 보면, 혼자서 돈 잘 벌고 잘사는 게 최곤 거 같기도 하고”라고 얘기하는 거라면 괜찮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동안 방송 프로그램으로 인해 우리 삶과 사회적 의식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영향에 의한 변화들이 사회적 함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합니다. 과거 방송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전파를 타는 것들을 단순히 나열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혼 경력이 방송 출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성애자, 또는 성전환자의 출연과 비윤리적이고 지나치게 폭력적인 드라마의 남발, 성형과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프로그램, 선정적인 미성년 아이돌의 의상과 자극적인 안무, 상업주의에 편승한 과도한 출연료 등등은 과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댄다기보다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 변화의 방향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2022년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191,630건, 이혼 건수는 93,23건이었습니다. 결혼한 두 쌍 중 한 쌍 가까이 이혼한 겁니다. 아시아에서는 이혼율이 가장 높습니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봐야 하겠지만, 이혼율이 높은 것도 한 요인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혼한 사람에게 꼬리표 같은 것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고 이혼 그 자체로 사람을 평가하는 행위에 대해 부당하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이혼율이 올라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돌싱’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돌싱들이 희화화되어 가볍게 화면에 등장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사회를 지탱하는 구성원의 인식이 프레임입니다. 이 프레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지속적인 정보와 자극에 노출되면 변화합니다. 이혼한 연예인이 숨어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느니 해가며 미화할 필요도 사실 없는 겁니다. 결혼할 때 이혼을 생각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혼은 불행이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비추는 이혼은 오히려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송은 현실을 100% 담아내지 않습니다. 그 목적에 맞게 의도되고 편집되어 시청자에게 전달됩니다. 대중들은 이러한 방송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자신이 가지는 이혼에 대한 프레임이 ‘절대불가’에서 ‘할 수도 있는’으로 바뀔 개연성이 높습니다. 이는 필자의 얕은 지식에 기반한 가설이지만, 논리적인 타당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혼주의와 연결해서 연구해 봐야 할 겁니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지자체마다 자녀 1인당 얼마를 지원한다고 떠들어대도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정치인의 선심성 돈 퍼주기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문화가 그저 쉬운 길로만 가는 것에 익숙해져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고만 하고 시간이 걸리고 희생이 따르는 과정은 외면하니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 거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서정숙 의원이 언급한 방송 프로그램들이 국민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시나브로 미쳤는지 과학적이고 진중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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