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밥에 고깃국’은 ‘쌀밥에 쇠고기국’의 북한식 표현이다. 북한의 시정(施政)목표 1호였던 ‘이밥에 고깃국’은 김일성 주석에서 아들 김정일, 손자 김정은 3대에 걸쳐 80년이 다 되도록 이루지 못한 꿈이다.

북한에선 식량난으로 쌀밥은커녕 강냉이밥도 제대로 먹기 힘든 상황이라, 고깃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기야 남한에서도 지금은 어느 가정에서나 먹을 수 있게 됐지만, 개발연대까지만 해도 '쌀밥에 쇠고기국‘은 있는 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이긴 했다.

대우그룹의 고 김우중 회장이 1990년대 초 대북밀사 자격으로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20여 차례 비밀회동을 가졌을 때, 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김일성을 설득해 남포공단 개발권을 받아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 문제를 보다 역동적으로 추진한 기업인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다. 소떼방북과 개성공단 및 금강산개발사업이 그것이다. 금강산개발과 개성공단개발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됐더라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나, 불행히도 남포공단 사업처럼 좌초됐다.

대우와 현대가 추진한 개발사업은 북핵문제로 좌초되었으나, 소떼방북은 북핵과 무관하게 북한 지도부의 의지만 있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큰 사업이었다. 잘 키워서 농사에 이용하고, 농업을 기계화해 남는 소는 식용으로 쓰면 될 일이었다.

정 회장은 1998년이 6월16일 충남 서산 아산농장에서 기른 소 500마리 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갔다. 같은 해 10월 27일에는 2차로 501마리를 끌고 방북했다. 북에 준 소는 모두 1,001마리였는데 1,000마리는 암수 500마리씩이었다.

마리수를 0으로 끊지 않고 1로 끊은 것은 1이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숫자이기 때문이었다. 암수 짝을 지어 보낸 것은 1,000마리가 1만 마리, 10만 마리, 100만 마리로 증식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북측이 정 회장의 이러한 의중을 조금이라도 소중이 여겼다면 25년이 지난 지금 북한에는 1,000마리의 종자 소를 기반으로 한 큰 규모의 한우목장이 여럿 생겨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들이 사육부실로 병사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북한은 남한이 병든 소를 보냈다며 배은망덕조의 변명을 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이 20세기의 가장 아름답고 충격적인 전위예술이라고 표현한 소떼방북이 성공했더라면 남북관계는 분명 지금의 모습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쌀밥은 물론이요 고깃국으로 북한가정의 식탁은 풍성해졌을 것이다.

필자는 1992년 9월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까지 버스로 갔다. 좌우는 온통 황량한 벌판뿐이었다. 선전용 목장이라도 하나 있을 법하련만 어디서도 목축의 흔적은 없었다. 그때는 북한의 축산에서 소는 일소뿐이지 육우축산은 없기 때문이려니 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지난여름 북한에서 소를 밀도살해 유통시킨 남성 7명과 식당종업원인 여성 2명 등 9명이 공개 총살됐다고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와 자유아시아라디오(RFA)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이들은 2017년~2023년 6년 동안 병으로 죽은 소 2,100마리를 도축해 판매한 혐의로 지난 8월 30일 함경남도 혜산시 비행장 인근의 공터에서 총살됐다는 것이다.

소의 밀도살이나 쇠고기의 불법유통은 어느 나라에서건 범죄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무더기로 총살시킬 정도의 범죄인가에 대해서는 북한 주민들조차 너무한 게 아니냐는 소리가 있다고 이들 매체는 전했다.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던 조선시대엔 소의 도살을 금지한 금우령(禁牛令)이 있었고, 이를 관장하는 금살도감도 두었다. 지금 북한의 형편이 그런듯하다.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특권층에 국한되고, 일반인은 김일성 생일 때 한두 근씩 배급을 받아 맛을 봤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없었다고 한다.

반면 김정은은 영양과잉에 의한 고도비만으로 여러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민들 사이에 밀도살 고기가 팔린다는 것은 “우리도 고기맛 좀 보자”는 특권층을 향한 반발 심리의 발로일 수 있다.

그런 심리가 권력에 대한 불만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것이 무자비한 단속의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이나 올바른 대처법일 수는 없다. 축산농가를 육성해서 공급을 늘리든지, 미사일 만들 돈으로 주민들에게 고기 한 근 나눠줄 생각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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