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오랫동안 신년 계획에 실패해 왔다. 파워 J인 나는 새해만 되면 계획을 세웠고, 빈번히 실패했다. 계획 실패에 관해선 권위자다.

성공적인 신년 계획을 세우는 방법은 어렵고 주제넘는다. 오히려 내가 그간 잘해왔던 '어떻게 하면 신년 계획이 실패하는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반면교사랄까. 이 방법만 피하면 신년 계획을 망치는 일은 피할 수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실패한 자기 객관화

누구나 학교 다닐 때 방학 계획표를 작성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계획을 짜는 당시에는 뜨겁다. 무슨 일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계획표 속 나는 실행하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방학이 끝날 때 보면 그 계획표는 생면부지 남이 만든 계획표 같다.

모든 멋진 신년 계획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객관화"다. 계획은 미래를 그리는 일인데, 현재를 모르면 앞날을 알 도리가 없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오래됐으면서 매번 스스로를 모르고 터무니없는 계획을 자주 짜서 실패했다.

자기 객관화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일이다.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시계부를 작성하는 게 자기 객관화에 도움이 된다. 돈이 들고나간 기록이 가계부인 것처럼, 시계부는 내가 어떻게 시간을 쓰는지 기록하는 일이다.

24년 신년 계획에 앞서서 23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시계부를 작성해 보는 걸 추천한다. 친구를 만난 시간이 있을 테고, 퇴근 후 취미활동을 한 날도 있을 거다. 혹은 그냥 누워서 릴스와 숏츠를 보다가 취침 시간이 된 날도 있을 거다. 이런 식으로 쭉 기록하다 보면 "어느 시간을 제하고, 그 시간에 어떤 걸 투입하면 되겠다"와 같은 전반적인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 계획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건 AS-IS분석이다.

실현 불가능한 목표

앞서 말했듯 나는 프로 신년 계획 실패러다. 지난날 내가 연말 연초에 기록한 목표는 올해엔 "투자로 1,000만 원 벌기", "신춘문예 당선되기", "원어민처럼 영어 하기"와 같았다. 그리고 연말에 돌이켜 보면 커다란 성과가 없었다. 매번 "올해는 뭐 했지"와 같은 생각을 하며 속상해했다.

하지만 빈번한 실패 뒤에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 목표를 수립하는 데 실패한 거 아닌가 싶다.

최근에 "어떤 목표를 세우면 그것을 10개로 쪼개라"라는 글을 읽었다. 이걸 조금 더 빨리 읽었다면 내 실패의 역사는 더 짧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투자로 1,000만 원 벌기"를 세웠다면 그 바로 밑에 떨어지는 건 "투자 공부하기"이다. 그리고 쭉 내려가보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신년 목표 : 투자로 1,000만 원 벌기

1) 투자 공부하기

2) 매일 경제뉴스 스크랩 하기

3) 투자 스터디 들어가서 6개월 이상 활동하기

4) 가계부 작성하기

5) 부수입 마련하기

6) 한 달에 80만 원 이하로 소비해서 시드머니 키우기

7) 부동산 임장 다니기 (월 2회)

8) 투자 관련한 책 매 월 1권 읽기

9) 증권사 기업 분석 리포트 정리해서 포스팅하기

10) 등등

이렇게 하나의 큰 목표를 던지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10개로 나누면 좋은 점이 많다. 첫 번째로 당장 계획할 수 있는 작은 단위의 행동이 나온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해 준다.

두 번째는 그것을 계속해서 진척도를 확인할 수 있다. 마치 퀘스트를 깨는 것처럼. 왜 그 유명한, 측정할 수 없다면 개선할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가 얼마큼 성장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그러기 위한 지표가 필요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지난날의 신년 계획 실패는, 꿈의 크기가 커서 생긴 실패가 아닌 실체가 없는 꿈이라 실패했던 게 아닌가 싶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목표

소비는 모든 것을 쉽고 편하게 해 준다. 그리고 세상만사가 그렇듯 쉽고 편한 방법은 끊임없이 의심해 봐야 한다.

과연 "영어 학원 등록하기"가 신년 계획이 될 수 있을까? 영어 학원 등록은 "소비"의 행위다. 어느 학원이든지 간에 돈을 주면 저 목표는 달성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방법도 있어야 하고, 또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스트레스도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돈으로 손쉽게 살 수 있는 목표는 신년 계획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

"영어 공부하기"는 신년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어 학원 등록하기"는 말이 된다. 하지만 영어 공부하기라는 목표를 성취하는 수단으로 꼭 영어 학원 등록만이 전부는 아니다. 외국 영상 보면서 따라 하기, 영어 원문 외우기, 외국인 친구 사귀어 보기 등등의 방법이 있다.

월급 받는 직장인일수록 이런 식으로 손쉽게 돈으로 목표를 사려는 시도를 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 말하는 척 하지만 사실 내가 그렇다. 가령 2020년 새해 목표에 나는 "테니스 학원 등록하기"가 있었다. 웃긴 건 그것 조차도 끝끝내 등록하지 않아서 결국 실패한 목표가 됐지만.

모쪼록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부디 위 3개를 피해서 멋진 신년 계획을 세우기를 바란다. 나도 언젠가는 성공적인 신년 계획을 세우는 법이란 글로 다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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