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절멸 위기의 금자씨’ 금산자주난초!

난초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 착생난초. 학명은 Gastrochilus matsuran (Makino) Schltr.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작지만, 화려하고 현란한 난초과 꽃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금자란. 2017년 4월 제주도에서 만났다.@사진 김인철
작지만, 화려하고 현란한 난초과 꽃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금자란. 2017년 4월 제주도에서 만났다.@사진 김인철

통상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 지역으로 분류하지만,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는 분명 예외 지역입니다.

미국인 지리학자 글렌 트레와다(Glenn T. Trewartha)의 구분법에 따르면 월 평균 기온이 섭씨 10도가 넘는 달이 1년 중 최소 8개월 이상이면 아열대 기후로 정의하는데, 제주도는 4월부터 11월까지 평균 기온이 10도를 상회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서귀포의 경우 12월도 평균 기온이 9.4도, 1년 전체 평균 기온이 16.9도에 이르는, 전형적인 아열대 기후 지역의 특성을 보인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식물생태계 또한 육지와는 확연히 달라 사시사철 푸르고 잎이 넓은 상록활엽수를 비롯한 열대성 식물이 대거 자생하고 있습니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앞서 ‘멸종위기 우리꽃-10-노랑만병초’ (2023/12/26) 편에서 백두산과 그 일대가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보고라고 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제주도가 한반도에서 자라는 남방계 식물의 최대 자생지라고 일컬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향기가 좋은 꽃을 피우며, 가장 진화해 높은 가치를 지닌 식물군인 난초과 식물의 보고라 꼽을 만합니다.

두툼한 타원형 잎은 물론 꽃잎에도 자주색 반점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금산자주난초란 원래 이름이 왜 붙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사진 김인철
두툼한 타원형 잎은 물론 꽃잎에도 자주색 반점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금산자주난초란 원래 이름이 왜 붙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사진 김인철

난초과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2만 5,000종 이상이 분포하는, 가장 다양성이 높은 식물이지만 우리나라 전역에는 불과 100여 종만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자라는 야생 난초 100여 종 가운데 무려 81종이 제주 섬 한 곳에서 자생한다니, 국내 난 애호가들의 관심이 ‘난초 천국’ 제주에 쏠릴 만합니다. 특히 연중 기온이 온화하고 공기 중 습도가 높아 나무의 줄기나 가지, 바위 등에 붙어서 사는, 이른바 착생란(着生蘭) 또는 암생란(岩生蘭)이라 부르는 희귀 난초가 섬 일부 지역에 자생합니다. 석곡과 금자란, 비자란, 차걸이란, 혹난초, 콩짜개란, 풍란, 나도풍란, 탐라란, 지네발란 등이 그들입니다. 이 중 풍란과 나도풍란, 탐라란, 금자란, 바자란 등 5종이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 13종에 포함된 절체절명 위기의 식물입니다. 차걸이란과 지네발란, 혹난초, 콩짜개란 등 4종은 2급 79종에 들었습니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착생난초의 하나로, 앙증맞고 귀엽기 짝이 없는 꽃을 피우는 금자란(錦紫蘭)입니다. 생김새는 생소하지만, 들어본 듯한 식물명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하고, 작은 이파리는 물론 자잘한 꽃잎 곳곳에 촘촘히 박힌 붉은색 작은 반점은 주근깨투성이의 ‘말괄량이 삐삐’를 생각나게 합니다. 경남 남해의 금산(錦山)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잎과 꽃에 자주색 반점이 있어 ‘금산자주난초’란 긴 이름이 붙었는데, 점차 줄임말인 ‘금자란’이라 불리다 아예 국명이 되었습니다.

상록 양치식물인 콩짜개덩굴과 함께 나무겉에 뿌리를 내린 금자란. 전형적인 착생난초임을 보여준다.@사진 김인철 
상록 양치식물인 콩짜개덩굴과 함께 나무겉에 뿌리를 내린 금자란. 전형적인 착생난초임을 보여준다.@사진 김인철 

비자나무나 단풍나무, 소나무 등의 줄기나 가지 껍질에 붙어사는데, 뿌리부터 줄기나 잎, 꽃에 이르기까지 전초가 채 10cm도 되지 않습니다. 몸통에 해당하는 줄기 자체가 길이 5cm 안팎으로 짧고 마디가 많은데, 마디마디 옆에서 백색의 뿌리가 나와 나무껍질에 달라붙습니다. 길이 1cm 안팎의 타원형 잎이 줄기를 따라 두 줄로 어긋나는데, 자주색 반점이 있습니다. 4~5월 잎겨드랑이에서 1cm쯤 되는 꽃대가 나와 1~4개씩 입술꽃잎 등을 갖춘 특유의 난초꽃이 달리는데, 연한 황록색 꽃잎에도 자주색 반점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세계적으로 중국과 대만, 일본 등지의 덥고 습한 아열대 지역에 분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서귀포와 경남 남해군 섬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여타 난초들이 그러하듯 높은 관상 가치로 인해 무분별하게 남획되면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2012년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했다가 2017년 1급으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기존 자생지는 아예 사라지거나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고, 새로운 서식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어 자칫 절멸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김 인 철
김 인 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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