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산소리]

국회에서 예산 심의가 끝나자마자 무슨 예산 얼마를 확보했다는 내용으로 펼침막이 걸렸습니다. 주로 현역 의원들이 자기 치적이라고 자랑합니다. 모두 돈을 어디에 쓰겠다 하는데, 어디에서 벌어오겠다는 것은 없습니다. 저렇게 쓰기만 해도 나라 살림살이가 돌아갈지 참 걱정스럽습니다.

정치는 국민이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일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이지요.

누구나 과학기술은 경제를 살리는 밑바탕이라 합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술개발 성과가 나오고, 이런 성과는 지식재산으로 보호받으면서 경제 생산에 기여하고, 경제적 성과는 과학기술자와 기업을 격려하여 과학기술에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을 이룹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선순환 체계를 갖추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국제특허 출원 통계를 보면 세계에서 4~5위 위치에 있습니다. 올해 연구개발예산이 대폭 깎여 앞으로 걱정이지만 지금까지 기술개발 쪽에서 과학기술자는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인 과학기술 성과품을 다루는 지식재산제도는 어떨까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첫째, 지식재산에 관한 행정기관 문제입니다. 지식재산은 크게 저작권과 산업재산권(또 신지식재산권)으로 두 줄기입니다. 현재 저작권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하고 있고, 특허를 포함한 산업재산정책은 특허청이 맡고 있습니다. 국제기구에서는 유엔 산하 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저작권과 산업재산권 모두 관장합니다. 국제기구는 한 곳에서 다루는데 우리나라 행정조직은 나뉘어 있습니다. 이름하여 지식재산청 또는 더 한 단계 높여서 지식재산부로 국무위원급 부처로 통합해야 합니다. 행정조직은 공무원들의 조직 이해관계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보고 짜야 합니다.

국회 법사위@ 사진 연합뉴스
국회 법사위@ 사진 연합뉴스

둘째, 지식재산을 다루는 전문가는 변리사인데, 우리나라 변리사제도가 꼬여 있습니다. 현행 변리사법에서 변리사 업무는 완전한 소송대리권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특허 침해 소송에 대한 대리권은 법원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변리사법을 무시한 횡포입니다. 변리사 소송대리권에 대한 국제 추세는 작년에 출범한 유럽통합특허법원(UPC, Unified Patent Court)에서는 변리사의 단독 침해소송 대리를 허용합니다. 세계 주요 나라에서는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이미 허용했거나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으로 인정된 것을 현실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은 단순히 전문가끼리의 밥그릇 다툼이 아닙니다. 과학기술의 개발과 이를 활용하는 기업의 생존 문제입니다. 소송대리권은 법에 명시돼 있지만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니, 그래도 문제를 풀어보려고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법정에 나갈 수 있는 법안을 제출했고, 국회 산업자원통상위를 통과하여 법사위로 넘어갔지만, 지금은 법사위 제2소위에 떨어져 자동 폐기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가 이렇습니다. 정치권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셋째는 사법제도입니다. 저작권, 기술 비밀, 기술탈취, 산업재산권(특허 상표 디자인) 등은 전문성이 있는 분야라서 분쟁이 생기면 전문법원에서 해결하는 게 순리입니다. 도이칠란트에 이어 우리나라에 1998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특허법원이 설립됐습니다. 이런 전문법원을 만들어 놓고도 저작권, 기술 사건을 다루지 못하니 절름발이 법원입니다. 특허법원의 전문성을 살리도록 특허법원의 관할을 넓혀야 합니다.

제도를 제대로 짜두면 그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굴러갑니다. 지금 겨울 날씨가 아주 매섭더라도 곧 봄이 오는 이치와 같습니다. 지식재산제도를 올바로 정립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슨 돈을 얼마나 확보했다는 자랑,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 가짜 사실을 퍼뜨려 표를 얻으려는 낮은 술책보다, 당장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길게 볼 때 나라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유권자는 나라의 앞날을 보고 공약을 마련하여 실천하는 정당에게 표를 줄 것입니다.

정치의 계절, 과연 정치권은 지식재산제도의 큰 틀을 약속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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