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실, 피습 현장 상황 CCTV 공개@사진 연합뉴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실, 피습 현장 상황 CCTV 공개@사진 연합뉴스

25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피습당했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피습당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음모와 루머와 조롱은 여야를 막론하고 발생해서, 유튜브에 긴급 라이브를 올리고 있는 언론사 채널의 채팅방에서는 이재명을 소환하라느니, 배현진의 남자친구일지도 모른다느니, 쇼라느니 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평소 같으면 채팅방을 보면서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으로 응대를 하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 빠르게도 올라가는 채팅 사이에서 이번엔 누가 또 품 속에 흉기를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은연중 불안함이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근 1년을 되짚어보면 구체적인 동기도 없이 증오만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사건들이 너무 많았기에.

배현진 의원의 피습사건 바로 전날 정유정의 뉴스가 나왔다. 온라인으로 영어 과외선생을 구하는 척 하고선 20대 여성 A씨를 찔러 죽인 그녀는 반성문을 억지로 썼다는 발언을 하여 사건을 잊을 만했던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을 각인시켰다. 그녀는 A씨와 구면도 아니었고,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 그게 진술한 동기였다. 판타지 소설에서만 볼법한 살인에 대한 사유를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는 사람인데 사람인 느낌이 아무것도 들지 않는 위화감이 엄습했다.

사실상 그 이후부터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7월에 일어난 신림역 칼부림사건. 피의자 조선은 ‘나만 불행할 수는 없어서’를 범행 이유로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서현역 칼부림사건. 조현성 성격장애를 판정을 받은 전력이 있는 피의자 최원종은 ‘나를 스토킹하는 스토커들이 조직적으로 있다’고 호소했다. 보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신림동 공원에서 여성을 강간살인한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 최윤종의 강간살인 사유는 본인이 ‘살면서 한 번도 성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어서’란다. 모두 1년 내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재명, 배현진 의원의 피습사건과 작년에 벌어졌던 살인 및 칼부림사건이 어떻게 같느냐라는 소리를 들었다. 미안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큰 차이점이 없다. 그저 국회의원들은 여야 정치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공인들이기에 피의자들에게 특정하기 좋은 대상이었을 뿐, 결국 모든 범행의 동기는 미약하고, 증오는 강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범죄의 피의자들은 피해자들과 면식도 없는 사이들이 아닌가. 사실상 배현진을 피습한 10대가 배현진에게 직접적으로 받은 피해가 얼마나 있는가. 이재명의 경동맥을 노린 60대 남성은 이재명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는가.

사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대중들이 그런 것인지 속된 말로 ‘사회적 낙오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게 느끼는 건진 모르겠다. 다만 정유정은 실패한 취업시장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본인이 획득하지 못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다른 사람에게 칼을 들었다. 조선은 본인 외에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인 듯하다. 최윤종은 여성과 어떠한 접점도 없는 본인의 상황에 여성에 대한 성적 욕구와 차별적 혐오가 섞인 형태다. 이재명을 피습한 60대 남성은 본인의 사회적, 경제적 고립이 이재명이 소속된 당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굳게 믿은 것 같다. 배현진을 피습한 10대 남성은 중학생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펨코에서부터 시작된 여혐의 양상으로 보여진다. 결핍이 소통이나 사회적 제도를 통한 해소로 귀결되는 게 아니라, 결핍의 원인이 애먼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해하는 지경에 다다른 이상 대한민국은 총만 들지 않았지 무법지대다. 얼마 전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에 있는 모든 호신용품은 품절대란이 일어났고, 이제 국회의원들은 경호원을 대거 고용하기 시작할 테니.

작년 초에 유튜브에선 ‘총기합법화가 된 대한민국’을 가정하여 촬영된 영상이 올라왔다. 경적 소리를 울렸다고 말다툼을 하다가 총을 꺼내고, 경상도랑 전라도민이라면서 난사하고, 뒤에 오던 남자는 ‘어린노무 자식들이’라면서 또 총을 발사하고, 총을 맞을 뻔해서 항의하던 여자도 총을 꺼내고. 2분 동안 들려오는 대사들을 추리면 “어디서 홍어냄새가 나나 했더만(전라도 비하발언)”, “돼지국밥 새끼들(경상도 비하발언)”, “뭐야 저 틀딱새끼는(기성세대 비하발언)”, “가시나는 집에가서 밥이나 해라(성차별적 발언)” 등이었다. 이후 반응이 좋았는지 영상 하나를 더 올렸는데, 대통령 당선 인사를 하는데 총성이 울리고 있는 장면이 인트로였다.

그들은 알았을까. 사회, 정치, 문화 등의 문제점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데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예술 형태가 풍자라지만, 사실상 총기만 없었을 뿐이지 작년부터 그 일들이 공교롭게도 연달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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