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회봉의 서드에이지 단상

동창 모임에서의 일이다. 이제 칠순이 되는 친구가 나를 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나이 먹는 게 뭐가 좋다는 거지? 나는 그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언젠가 내가 “나는 나이 먹는 게 너무 좋다”고 했던 데 대한 반박이다.

“나이 먹어갈수록 더 행복해지니까 좋은 거지…”

서드에이지가 시작되는 60대 초반부터 늘 그렇게 생각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를 맞았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10년 나의 행복감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며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 어디선가 짤막한 기사 하나를 봤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60대가 되면 더욱 행복해지고, 그것이 75세에 정점을 이룬다는 내용이었다. 북유럽국가들의 통계가 아니었나 싶다.

이유를 추측해 봤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아마도 그동안 어깨에 지고 온 인생의 짐이 가벼워져서 일 것이다. 세월이 그것을 내려놓게 하고 또 스스로 비워내니, 삶이 점차 홀가분해진 게 분명하다.

상실감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노년기는 자족을 배우는 때이다. 욕망을 줄여 작은 성취로도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법을 익혀간다. 그러니 사는 게 갈수록 재미있어졌을 것이다.

그러다 75세를 넘어서면 행복의 양이 조금씩 줄어든다. 피할 수 없는 육체적 노화로 일상에 조금씩 불편이 생기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이 이치다.

비슷한 조사가 또 있었다. 여기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통계였다. 일본도 북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60대 이후에 행복도가 계속 상승해 75세에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한국인의 행복도는 이들과 다른 추세선을 그렸다.

40대에 행복도가 바닥을 치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 똑같았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한국인은 60대에 들어서도 행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 빈곤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적어도 서드에이지는 행복해야 한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삶에서 내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일보다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일이 더 많기에 그렇다.

사진 최회봉
사진 최회봉

일본식 한자어인 행복(幸福)이란 말에는 ‘운’을 뜻하는 幸(다행 행) 자를 포함한다. 영어의 행복(happiness)도 hap(운, 요행)에 뿌리를 둔다. 하지만 이제 운이 좋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 수명이 급속히 늘어난 이유와 마찬가지로,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행복의 개념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제 일상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행복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행복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면서도 행복을 느끼며 산다. 행복은 별도로 존재하는 어떤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 그 의미를 너무 무겁게 해 나의 행복을 줄일 필요는 없다.

행복에 대한 나의 정의는 세글자면 족하다. “아~ 좋다!” 이것이 나의 행복이다.

좋은 사람들과 물안개 낀 강가를 걸을 때 나는 “아~ 좋다!”하며 감탄하고 감동한다. 생일날 두 살 난 손주가 그 조그만 손에 딸기 하나를 쥐고 달려와 “하찌 꺼(할아버지 것)”하며 내 입에 넣어 줄 때, 내 눈은 살짝 물기를 머금는다.

행복하기 위해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일이 다 만족스럽고 즐거워야 할 필요는 없다. 삶에 문제 한두 개쯤 갖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헤아리지 않고, 결핍을 느끼는 한 가지에 집중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삶에는 늘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이 혼재한다. 이 중 어느 것을 더  많이 생각하느냐가 나의 행복을 결정할 뿐이다. 그러니 내 삶을 짓누르는 문제가 한두 개 있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는 늘 행복하기로 다짐한다. 그래서 꽤 오래전부터 당신은 행복하냐는 질문에 늘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당신만 그렇게 행복해도 되느냐”고 묻곤 했다. 예전엔 그런 말을 들으면 아내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행복해야 당신도 행복해지는 것 아니요?”라고 되묻는다.

행복은 전염된다. 내가 행복하면 나와 함께 있는 사람도 행복해진다. 내가 행복하면 함께 있는 사람의 행복도 15%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내가 행복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행복을 쉽게 느끼는 체질이 있다. 행복 DNA가 있어 유전한다. 그러나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데 유전자나 환경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상에서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상태나 행위를 줄이고, 내게 긍정적 감정을 안겨주는 상태와 행위를 늘려 가는 게 결국 행복의 비결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사진 최회봉
사진 최회봉

좋은 삶을 위해 나이 들어 가면서 더욱 중요해지는 게 ‘관계’이다. 내가 신경을 써야 할 관계에는 신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이 있다. 이 관계를 화목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틀어져 있으면 내 마음은 깨진 독과 같아진다. 그 안에 평화와 기쁨이 오롯이 담겨있을 수가 없다.

주어진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 하는 시간 관리도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삶에 의미와 재미를 더하는 활동을 찾아내 일상에서 그 비중을 늘려 나가는 게 행복해지는 방법의 하나이다. 지난 몇 년 이런 일들을 찾아, 거기에 쓰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센터장 최인철 심리학과 교수) 연구조사에 따르면 재미와 의미가 큰 개별 행위에는 여행, 데이트, 운동, 산책, 종교활동, 사교활동, 취미활동 등이 있다. 또 대화와 먹기 등도 사람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만족과 즐거움이 가장 큰 활동은 여행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행에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행위가 무더기로 담겨있다.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은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주기에 충분하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즐거움을 더한다.

여기에다 맛난 것 많이 먹고, 수다 떨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걷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행위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여행은 단연 최고의 행복 종합선물 세트인 셈이다. 다른 어떤 것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여행 배낭을 꾸려야 할 이유다.

등산과 트래킹이 주는 만족과 즐거움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은퇴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취미활동이 등산이고, 최근 트래킹 붐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등산, 트래킹 같은 활동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동호회를 만들어 함께하면 그 즐거움이 배가된다. 운동과 산책이 주는 만족감에다 사람이 주는 기쁨이 더해진다.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대화하고 교제하고 밥 먹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취미활동도 삶이 풍성해지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서예나 그림 그리기, 악기 배우기 같이 혼자서 하는 활동도 좋고, 당구나 합창처럼 함께 하는 활동도 좋다. 나는 뒤늦게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합창단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집중’이 있어서 좋다. 사람은 무언가에 집중할 때 많은 행복을 느낀다. 스무 명 남짓한 친구들이 함께 앉아 노래 연습을 할 때면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밀려온다. 이 자리 역시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수다 떠는 즐거움이 덤으로 주어진다.

사진 최회봉
사진 최회봉

가능하면 일을 하는 게 좋다. 104세가 돼 서도 일하는 김형석 교수는 행복한 노년을 보내려면 그게 무엇이든 꼭 일을 하라고 권한다. 일반적으로 일 자체는 별로 행복을 주지 못하는 행위로 평가된다. 하지만 일에 자율성이 주어지면, 일이 주는 만족과 즐거움이 거의 여행 수준으로 뛰어오른다.

인생 후반기의 일자리로는 앙코르 커리어(Encore Career)가 매력적이다. 이는 노년기에 적당한 벌이를 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누군가에게 도움도 주는 등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일자리이다. 지난 5년 남짓 30대 청년들이 경영하는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데, 일이 여행만큼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신앙생활도 사람에게 큰 행복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본적으로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주어진다. 반면 마음에서 행복을 앗아가는 두려움, 불안, 근심, 미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제거해 준다. 신앙의 유익이다.

행복은 나의 선택이다. 내가 행복해지기로 마음먹고 노력하면, 나는 행복할 수 있다. 내 몸과 마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가고,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행위를 늘려간다면, 나는 누가 뭐래도 행복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인생은 고난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풍파에 주눅들 필요 없다. 피하지 못할 것이라면 즐겨야 한다. 태풍 속에서도 평화를 누리기로 선택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을 좀 먹는 일 한 가지만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으로 높아졌는데도 행복지수가 50위 권에 머무는 것은, 한국인의 물질주의와 비교 의식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아무리 행복한 상태에 있거나 행복이 쏟아지는 행동을 한다 해도,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는 순간 그 행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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