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때아닌 웃음이 터졌다. 강남에 갔다가 어떤 매장에서 말 한 마리가 학대당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는 작은삼촌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요즘도 그런 곳이 있냐며 다들 핸드폰을 검색했고, 알고 보니 탬버린즈 매장에 홍보용으로 전시된 말 모형을 보신 거였다.

아내의 외할머니께서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돌아가셨다. 부랴부랴 밤 버스를 끊고 내려가 장례식장에서 명절을 보냈다. 명절이어서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모여 앉아 가족끼리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됐다.

결혼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아내의 친척들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본 건 처음이었다. 매번 이야기로만 들었던 분들을 직접 뵈니 느낌이 남달랐다. 이모와 삼촌들은 하나같이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달랐다. 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눈에는 30년 전 다 같이 모여 가족사진을 찍은 분들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닮은 점 없는 그분들의 모습이 내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아내한테 평소에 들은 이야기 때문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모습과 비슷해서였다.

나의 부모님과 그 형제들이 겪은 세상을 같이 살아온 분들이니 기시감을 느낀 건 당연했다. 위로는 부모를, 아래로는 자식을 부양하는 자부심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고 살아온 분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딸보다 아들이 이쁨받던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니 말이다. 닮은 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어떤 형제는 건강검진에서 종양이 발견돼 수술하고, 어떤 형제는 배우자와의 갈등으로 영영 돌아섰다. 또 어떤 형제는 성공해 임원이 되고, 어떤 형제는 자식을 의대에 보냈다. 희로애락은 한 명 한 명에게 공평히 반복되고, 그 자식들 대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평소에는 각자의 모양으로 살아가다 돌아온 집에선 같은 모습이 된다. 형, 누나, 동생이 된다. 혼자서는 심각했던 일도 가족 안에서는 사소한 것이 되어버리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분들 사이에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허구한 날 싸우고 서로를 원망하면서도, 같이 보낸 시간 속에 유대가 굳건히 쌓여 어떤 선 밖으론 절대 멀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될 뿐이다.

당신의 장례식장에서 자식들과 그의 자식들과 또 그 배우자들이 모여 웃음을 터트리는 걸 보며 할머님께선 어떠셨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며 순간 서운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이가 안 좋아 멀찍이 떨어져 각자 핸드폰만 보고 있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어쩌면 할머님께서도 옆에 앉아 같이 웃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자료사진@논객닷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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