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서울에서의 교육 연수 4일 차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전철에서 앉아 간 기억이 없다. 특히 첫날은 굳이 내리지 않아도 될 역에서 잘못 내려 출근길 2호선의 위력을 잠시 느끼기도 하였다. 텅 빈 지하철로 출퇴근을 해도 쉽지 않을 판에, 이 많은 이들은 대체 이걸 어떻게 매일매일 견디는 것일까. 단 몇 분만에 먹고사니즘과 heroism에 대한 숙연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어제 날짜로 에누리 없는 입사 13년 차가 되었다. 학생으로 따지면 초중고를 다 졸업하고도, 대학 1년이 지난 시간이다. 그 긴긴 세월 동안 그래도 잘 찾아보면 하나는 있겠지 하면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성장과 성숙의 순간을 되뇌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만다. 나는 그냥 늙어가고 있는 성인(成人) 임을 받아들인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회사 자체 연수가 아닌 외부기관 연수를 오면 강의와 관련된 여러 회사가 모여들기 때문에 내가 비교를 하지 않아도 나의 회사가 어느 정도의  레베루에 있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교육생들이야 수업을 듣는 수동적인 입장이니까, 속으로야 어찌 생각하든 드러 날 일이 없지만 말을 하는 강사들에 의해 주로 그 갈라 치기가 결정된다.

강사가 특정 회사명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그 회사 직원들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는 건 그 회사에 호의적이란 뜻이고 어느 정도 레베루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제는 5일 연수 중 강사가 바뀌는 시점이기도 했다. 이틀 수업의 강사님들은 두 분 다 회계사여서 그런 분위기가 별로 없었는데, 어제부터 수업을 한 강사님은 뱅커 출신이었다. 그리고 하필 그는 그런 분위기를 정확히 연출하는 축이었다. 처음부터 나를 언급하며 수업이 내가 평소 하는 일과 거리가 있을 수 있으니 양해부탁한다며 나와 나의 출신지를 주목하게 만들어 처음부터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말없이 소외시키는 정도는 이제 나도 스무스하게 받아들이는 짬바가 되었는데, 닳고 닳은 영업맨 특유의 포장된 젠틀함으로 맥이는 기분이 들었다면 너무 꼬인 것일까.

저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게 10년 하고도 3년이 넘고요, 회사 업무랑 직접적으로 상관은 없지만 직급 필수 연수과목이기도 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온 겁니다. 진짜 양해 구할 생각도 아니면서 그런 뉘앙스로 그만 뭉개시고요. 어차피 수업 따라가고 평가받는 건 철저히 제 몫이니까 과목의 취지에 맞게 설명이나 잘하시길! 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겉으로는 어색히 웃으며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하필 입사 13년 차가 되는 어제 수업시간 내내 (회사에 대한) 콤플렉스 덩어리가 목구멍 한가운데 걸린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소위 듣보잡의 설움을 처음 느껴봤다. (하긴 입사하기 전에 나도 모르는 곳이었으니 말 다하긴 했다) 예전에 비해 인지도가 생기긴 했지만 내세우기 힘든 듣보잡 타이틀은 이런 시선과 대접을 받는구나를 회사 와서 느꼈다.

몇 년 전, 꽤 규모 있는 기관 출신의 새로운 장이 부임해 지점을 순방하며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인용했을 때, 비슷한 업무를 하지만 상대하는 업체의 크기가 다른 기관들과 해외 연수를 갔을 때 어제와 똑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돈과 밀접한 분야일수록, 그런 현실에 두 발을 온전히 내딛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작은 것이 아름다울리는,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 절대... 없다.

물론 지금이야 인지도 높은 회사나 기관의 직장인을 그 타이틀과 일치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기에,  어쩌다 교류할 일이 있어도 주눅 드는 법이 없지만 입사 초에는 그런 시선과 대접에 상당히 예민했었다. 어제와 같은 상황도 그런가 보다 하면 될 일을 오늘까지 마음에 담아둔 걸 보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모양이다. 수업에서나마 의미를 찾으면 좋겠지만 (알고 왔음에도) 숫자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내게는 매 시간이 졸음과의 사투다. 게다가 사무실을 가지 않은 이 순간에도, 사무실 문만 나와도 듣보잡 취급받는 바로 그곳의 지점장이 원격으로 꼰대미를 발산한 덕에 온갖 회의감이 밀려왔다. (실제 그는 여기서 잘 나간다는 이유로 늘 자신감이 상당한데, 주로 그런 류들이 큰소리치는 곳에서 나는 13년을 굴렀다)

올해 1월, 나는 사주의 원리를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수업 끝나고 나오는 길에 그날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나를 해치고 나를 억누르는 '살'의 영역에 내 일(회사)이 있었다. 나를 살리고 내가 힘을 얻는 '생'의 영역에는 내가 평소 행복을 느끼는 모든 것이 놓여 있었다. 그 둘은 꽤 비슷한 크기로 팽팽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과 사람들이 평가하는 부분에서도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싫어하고 그 안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사주였다. 비록 듣보잡일지언정 공공기관이라는 얄팍한 타이틀을 놓지 못하는 나의 비겁하고 이중적인 태도에 늘 떳떳지 못함이 있었는데 내 사주가 그러하다니 내 자신이 조금(?) 용서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곧이어 명리학 선생님이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지금도 그 극단의 두 영역을 조화시키는 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삼십 대 중반부터 그것이 약화되어 곧 선택이 필요할 것 같고 아마 그때부터 본인이 엄청 힘들었을 거라는 말이었다. 살짝 오버하자면 내 마음속 지옥을 알아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글을 쓰며 오다 보니 지하철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 낼은 마지막 수업에 평가가 있는 날이라 일찍 끝난다. 원래의 퇴근 시간까지 나의 13년을 어떻게 전환시킬지에 대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일단은 듣보잡이 못한다는 소리까지 듣는 건 곧 죽어도 싫으니까, 통째로 다 외워버리는 시험공부를 하는 게 우선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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