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찬국 경제기행 ]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미식축구 시즌 최종 경기인 슈퍼볼(Super Bowl)이 열렸습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캘리포니아주에 있었던 인연으로 내가 응원하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s)와, 2년 연승에 도전하는 캔자스시티 치프스(KC) 간의 겨루기였지요. 그간 국내에서 경기 중계를 보기가 어려워 틈틈이 단편적 소식만 접하며 지냈었는데, 이번 유로 중계가 이루어지며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외국의 슈퍼볼 뉴스들은 스포츠보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이야기로 도배된 듯했습니다. 그녀가 KC의 유명 선수 켈시(Travis Kelce)와 작년 여름부터 사귀면서 연결 고리가 된 거였죠. 스위프트는 일본에서 투어 콘서트 일정 중간에 슈퍼볼을 직관하려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라스베이거스에 갔다고 합니다.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의 연애는 그리 드물지 않아 보입니다. 나이나 관심분야에 따라 알만한 경우들이 여럿입니다. 마릴린 먼로와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와 복싱선수 출신 연인 마르셀 세르당 등이 있었습니다. 10여 년쯤만 거슬러가도 영국 스파이스걸스의 빅토리아와 축구선수 베컴, 슈퍼모델 지젤 번천과 미식축구 선수 탐 브래디가 잘 알려진 경우이죠.

굳이 비교하자면 이제 30대 중반인 스위프트의 지명도는 남자 친구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대단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을 네 번째로 수상하며 신기록을 세웠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스위프트를 선정했지요. 세계 주요 도시를 찾는 투어 콘서트로 매출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넘겼는데 스위프트의 콘서트가 개최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커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공연의 파급효과가 미국의 국내총생산을 약 40억 달러 넘게 높였다는 추정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녀의 열성 팬들을 스위프티스(Swifties)라고 부릅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런 슈퍼스타에 샘을 내고 깐죽거리는 영감이 있으니 다름 아닌 트럼프입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자신이 스위프트보다 더 인기가 있고, 자신의 팬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스위프트 팬들보다 더 열성적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무슨 연예인하고 인기 경쟁인가 하고 의아해할 일이지만 어떻게든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으면 못 사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다운 행보이지요. 그는 젊은 시절 뉴욕 유명인 가십거리를 다루는 기자들에게 자신이 트럼프 언론 담당자인 척 하며 트럼프가 누구누구와 사귀고 있다고 제보하곤 했다합니다. 기자들이 그의 목소리 연기가 어설펐다고 박장대소하며 회고하는 것을 방송에서 보았습니다. 어쩌면 순전히 인기를 얻기 위한 무절제한 발언과 행보 덕에, 소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 듯, 그가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지도 모르지요.

일견 스위프트-켈시 로맨스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좋아할 요소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미녀 백인 연예인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최고 팀 선수와 공개적으로 사귀는 것인데, 너무 진부해 뉴스거리로는 쓸모없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작금 미국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고, 이번 슈퍼볼 TV 시청률이 1969년 아폴로 11호 달착륙 생방송 이후 최고로 높았다고 합니다. 트럼프와 추종자들이 황당한 음모론을 퍼트리며 스위프트-켈시를 공격하는 바보들의 서커스를 벌인 것도 슈퍼볼 흥행에 일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MAGA는 스위프트가 이번 슈퍼볼로 더 높아진 지명도를 이용해 바이든 지지를 선언할까 봐 안절부절못해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대선에서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과거 출신 주(테네시)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에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층권을 뚫은 그녀의 과거와 또 다른 위상이 트럼프와 MAGA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작년 9월 그녀는 자신의 인스타 계정(구독자 2억7200만)에 유권자 등록을 안내한 후 약 35,000명이 신규로 등록했다고 합니다. 스위프트뿐만 아닙니다. 켈시도 눈엣가시인 것은 코로나 백신 때문입니다. MAGA는 팬데믹 때 거의 미신적 근거로 백신 접종을 극렬히 반대했는데, 켈시가 화이저의 코로나 백신 TV광고에 출연하였으니 이들의 미움을 살 만 하지요. 트럼프가 불안에 잠 못 드는 것에 비해 바이든 측은 폭발력이 큰 스위프트의 지지선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바이든의 기밀유출 혐의를 불기소 처리하며 특별검사가 보고서에서 그를 기억력 나쁜 노인이라고 한 것을 계기로 81세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논란이 크게 일었습니다. 백악관은 판단의 근거가 박약해 정파적 염장 지르기라고 폄하하고 있지요. 그런데 기억력을 기준으로 하면 77세 트럼프도 나을 게 없습니다. 작년 뉴욕의 민사소송에서 배심원단은 1990년 그가 잡지 칼럼니스트를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해 약 500만 달러(약 66억 원)를 배상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평결 이후에도 피해자를 계속 조롱·비난하자 피해자가 다시 제소했고, 그 결과 트럼프는 8,330만 달러(약 870억 원)를 더 물어내게 되었지요. 트럼프가 부자라지만 고액의 벌금을 선고받은 지 반년도 되지 않아 15배가 넘는 배상금을 물 만큼 돈이 많지 않습니다. 이재(理財)에 밝다고 자랑하는 그가 몇 달 전 500만 달러를 날린 일을 까먹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언행이지요. 가장 중요한 맹방인 NATO 회원국이라도 돈 안 내면 방어 못 한다고 하고, 국가의 안위보다는 개인적 돈벌이에 더 관심 있어 보이는 게 트럼프입니다. 각종 소송에 시달리는 그가 지지자들의 크고 작은 후원금을 소송비용으로 쓰고 있다 하니 사이비 교주에게 재산을 갖다 바치는 신도들이 연상됩니다.

여성의 지위에 관심이 큰 스위프트가 바이든과 트럼프를 두고 누구를 선택할까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바이든 지지선언은 시간문제일 듯합니다. 미국의 한 심야 프로의 코미디언은 트럼프가 자신의 추종자들이 스위프트 팬들보다 더 열성적이라는 주장에 "트럼프 떨거지들은 미 의회 폭동에 실패해 대부분 감옥에 갔지만, 스위프티스가 그런 반란을 일으켰다면 지금쯤 나라를 운영하고 있을 거다" 하고 비꼬았습니다.

모든 게 바이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국방부의 비밀 심리 공작이라는 음모론자들의 예언대로 2020년에 이어 이번에도 49ers를 꺾고 KC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경기 결과는 입맛이 쓰지만, MAGA가 무척 속 쓰려할 것을 생각하니 고소한 느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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