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류를 올려놓으려고 지점장님의 자리에 간 적이 있다. 지점장 실이 따로 없어서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 계시는데 그 자리에 서니 (기둥을 사이에 두고 옆에 앉는 중간 책임자를 제외하고) 지점 직원들 자리가 한눈에 보였다. 사무실이 크지도 않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잘 보여서 깜짝 놀랐다.

상석의 view를 보고 나니 자리의 권력이 이런 건가 하는 실감이 들었다. 직원 전부가 회사에서 나눠준 잠바만 입고 있었다면 판옵티콘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창을 등지고 앉는 책임자들은 주식창을 수시로 열고 핸드폰 게임을 한다 한들 들킬 사람이 길 건너편 카페에 앉아 있는 손님들 뿐인데, 책임자의 자리에서 작정하고 지켜보면 직원들의 사소한 딴짓 전부가 감시 가능했다.

(직장생활뿐 아니라 삶 자체가 그렇지만)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창을 통해 본 것으로 대상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병가를 끝내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 몇몇 친한 직원들이 안부인사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한 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이었다. 회사에 관한 글들이 올라왔는데 봤냐는 것이었다. 그 어플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어플을 깐 적이 없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처음에 이해를 하지 못했다. 구식 핸드폰을 쓰고 있어 핸드폰 용량도 딸리고 내 관심 밖이라 끝끝내 가입을 하지 않자 몇 명이 캡처를 떠서 글들을 보내주었다. 

받은 글들에는 회사에 관해 평점을 매기는 별이 있었고, 회사에 관해 느낀 점들이 조목조목 적혀 있었다. 익명이기에 누가 썼는지 알 수는 없지만, 3년 안에 들어온 신입사원들이 아닐까 추정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영화 감상의 별의 개수였다면 절대 보지 말아야 할 영화로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사 평점 별의 개수는 처참했다. 작성자가 적어 내려간 내용 중에는 누군지 참 빨리도 눈치챘네 하는 것도 있었고, 어디서 주워들은 한쪽 얘기로 삐뚤어진 견해를 표출하는 것도 있었다. 처음에 글을 봤을 때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역시 다르네, 그들은 쪽수도 많으니 변화 없는 이 회사에도 새 바람이 부려나 신선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한 개 두 개 글들이 쌓이는 걸 직원들이 말해줄 때마다 이상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행동이 수반되는 건 하나 없이 불평불만의 배설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은데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전해주는 동료에게 나에게 알려줄 필요 없고,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그만 보라고 말해주었다. 현재의 자리, 현재의 위치에서 작성자에게 보이는 회사가 그렇다는데 그것을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어차피 그들도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것이 또 달라지고, 자리가 바뀌기 전에 그 모든 걸 못 참아서 뛰쳐나가고 없을 수도 있다.

어떤 자리에 가면 바뀔지도 모를 시야를 기대하다가 어영부영 회사에서의 10년이 훌쩍 지났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그때 틀린 건 여전히 지금도 틀려있다. 반응하는 방식은 바뀌었어도, 내용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이쯤 되니 10년 내내 느낀 걸 지금 신입도 느끼게 만드는 회사도 질기고, 10년  넘게 다니면서 (그 글을 전해주는 동료들처럼) 회사에 젖어들지 못한 나도 참 질기다. 그래도 그 앱의 글들에 회사의 워라밸 하나는 인정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라떼 신입 1~2년 차에는 워라밸이 웬 말"이었는데, 그런 거보면 (나와 달리) 회사는 조금이나마 발전하긴 했나 보다.

사진은 칼럼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사진 연합뉴스
사진은 칼럼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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