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 프렌차이즈는 단연코, ‘임대’다. ‘공’이 건물의 주연이 되는 부조리극은 빈부 구분 없이 절찬 상영 중이다. ‘엑스트라 공’(空)이 고도를 기다리는 듯, 임대의 시간이 끝날 줄 모른다. 사는(live) 곳도, 사는(buy) 곳도 공공(空空)하다.

빈 것들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빌 것들이 성실히 쌓이고 있었다. 시공사, 건설사들은 비지 않길 바라겠지만, 대구 반고개역 어느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0.07:1이었다. 높은 분양가 탓만은 아니었다. 대구는 미분양 무덤으로, 전국 미분양 물량 17%가 몰려 있었다. 그나마도 청약을 미룬 덕분에 축소된 수치였다.

사진 김봉성
사진 김봉성

나는 대구 위성도시에서도 변두리에 살며, 대구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에서 일한다. 지하철 18분 거리를 달려 오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라고 할 만큼 집값의 풍경이 달라졌다. 공부방은 내 방 월세의 딱 두 배다. 아파트값은 서너 배쯤 차이 나는 듯했다. 지방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동네는 교육 정책과 무관하게 교육 특구였다. 한 학교에서 수능 만점자 네 명 배출된 해, 전국 집값이 떨어질 때 홀로 올랐다고도 했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신축 중이다. 건설/부동산 문외한 눈에는 팬데믹 이전부터 땅을 고르던 아파트들의 울며 겨자 먹기로 보였다. 채워질 것 같지 않았다. 비워지고 비워지다 보면 내게도 차례가 올까, 쓰게 웃었다. 내 차례가 왔다면, 무수한 도산과 파산, 자살이 겹쳐진 다음일 것이다. 내 집이 생기는 것도, 내 집이 생기지 않는 것도 우울한 사태가 허허롭다.

대구를 가로로 가로지르는 달구벌대로를 따라 우뚝우뚝한 대형 학원과 아파트 단지 뒷골목에도 임대가 잠식하기 시작했다. 달구벌대로에서 한 블록 안쪽 교차로에 세워진 4층 빌딩 1층에 들어선 편의점과 인생네컷이 1년을 못 채우고 사라진 후 줄곧 공실이었다. 현재 1층 한 곳만 카페를 연명할 뿐, 전 층 공실이다.

대구 중심가 동성로에도 임대가 눈에 띄게 늘었다. 2023년 인구 순유출 8천여 명의 결과였다. 그 중 7,100명이 20대였으니 동성로의 공실은 타당했다. 우리동네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학가에 인근 공단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인데도 오렌지로드 170여미터를 중심으로 둘레 1킬로미터의 상권을 벗어나면 임대가 흔했다. 이 둘레 안의 PC방이던 빌딩 2층은 몇 달째 공실이고, 둘레 밖의 편의점 열 개 규모의 마트가 있던 자리는 몇 년째 공실이다.

기후 위기를 인지하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다가 터닝 포인트를 지나친 것처럼 지방은 광역시조차 소멸 터닝 포인트를 지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핵심은 일자리 문제겠지만, 자영업도 먹고 살 게 없다. 오다가다 보는 임대 자리에 어떤 장사를 하면 괜찮을지 생각해 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모든 상품은 택배로 대체되었다. 택배 차가 분주해질수록 주택가 상권은 말라죽어 갔다. 식당과 카페의 아수라 속에서 미용실과 네일숍이 좀비처럼 죽었다 살아나길 반복했다. 택배가 중국에서 바로 오기 시작하니 서울도 야금야금 말라가기 시작할 것이다. 유통의 발달은 저렴하고 편리하게 ‘여기의 공동체’를 붕괴시킨 것이다.

암흑의 공(空) 돌리기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올해 공부방 인근 500여 미터 이내에 450세대, 658세대 아파트 단지가 차례로 완공 예정이다. 분양가는 내 월세 500여 년어치를 넘어설 것이다. 임진왜란 이전 기묘사화 때부터 살아도 될 시간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마 조선 건국까지로 확장될지도 모른다. 코로나 팬데믹 때 잠시 꺾였지만, 아직은 사교육 불패의 부동산이 유효했다. 이곳이 차면 1호실만 임대된 4층짜리 빌딩 건물주의 숨통도 좀 트일 것이다. 대신 공은 어딘가로 떠넘겨질 것이다. 그 어딘가 중 하나일 우리동네가 공을 받아낼 수 있을까?

우리동네는 작년 대비 인구수 1,875명 증가했다. 그리고 2025년 12월 말 준공 예정인 대임지구가 공사 중이다. 수용계획인구는 23,475명이다. 내 기준에서 2024년 1월 인구수 281,355명인 도시의 과도한 배꼽이다. 맞은편 신축 오피스텔과 상업지구, 극장 건물도 텅텅 비어 있다. 건물을 지으면 돈이 되는 귀납법은 택배-저출산 시대에 끝났다. 영국은 출산율 1.53에도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한국은 작년 4분기 출산율 0.65다. 멸종 위기종 한국인은 새로운 생태계 ‘공’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동네 인구수 증가는 외국인이 만들어 낸 착시다. 내국인은 1,623명 감소했고, 외국인은 3,498명 증가했다. 대학생 위주의 중심 상권을 지나 외국인 위주의 주변 상권은 임대가 덜하다. 편의점 앞 테이블은 외국인 차지였다.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중국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고도가 그들인 부조리극은 꽤 맛있다. 아니, 맛 없어도 별 수 없다. 저출산으로 유발된 실(失)을 채우는 실(實)은 그들이다.

그렇다고 채워질 공실(空室)은 아니다. 0.65는 만만한 숫자가 아니고, 그들이 대임지구 23,475명에 포함될 확률은 낮을 것이다. 공은 경계를 가른다. 주변은 외국인, 중심은 한국인으로 분리된다. 그럼 내 국적은 뭔가? 그들과는 말도 통하지 않는데, 갑자기 외국으로 추방된 인구수 1이 된 듯하다. 임~대민국, 짝짝짝, 짝짝, 박자 맞춰주기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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