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회봉의 서드 에이지 단상

나이 들어 가면서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 수가 하나둘 늘어간다. 오래된 고무주머니에서 물이 새듯, 70년 가까이 사용해 온 신체의 여기저기가 잔 고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라면 좀 낫다. 전혀 뜻하지 않은 곳이 말썽을 부리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계는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우면 새것처럼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몸은 그럴 처지가 아니니, 사소한 고장도 사람을 여간 괴롭히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 만나 수다 떨다 보면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노화되는 육체에 관한 푸념이 그것이다. 세월이 부른 불청객인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 관절염, 탈모, 빈뇨, 변비 같은 것들이 얼마나 성가신 존재인지에 관한 경험담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런 것들의 공격에 제법 괴롭힘을 당했을 터인데도 별로 우울하거나 화난 기색이 없다. 그런 얘기가 오가면서 분위기는 되레 유쾌하고 왁자지껄해지곤 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엽게 여기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주는 선물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너도 그렇구나.”, “요즘 내가 겪은 괴로움이 별스러운 게 아니었구나.”, “듣고 보니 내 경우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 “야, 너 정말 고생 많았구나….”

청력 저하로 자기도 모르게 목청이 커진 초로의 친구들이 동병상련한다. 위로와 격려가 임한다. 그로 인해 공감의 폭이 커지고 수다가 더욱 즐거워진다. 수다가 ‘쓸데없이 말수가 많은 것’을 넘어서, 그 가치가 재평가된다. 그래서 오늘 나도 동병상련하는 얘기들로 수다를 떨려 한다.

6년 전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데 갑자기 오른쪽 시야가 날아 가 버렸다. 손가락 끝이 코에서 1㎝만 오른편으로 가도 보이질 않았다. 순식간에 세상의 절반이 암흑으로 변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며 회복되었지만, 많이 놀랐다. 뇌졸중이 나에게 던진 경고장이었다. 숨어있던 부정맥이 범인이었다. 이제는 그것을 끌어안고 달래며 산다. 친구들 앞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그게 무슨 대수냐는 반응이다. 자기는 심장에 연결된 혈관이 막혀 스턴트를 몇 개 박았단다.

2년 전엔 갑자기 왼쪽 귀 안이 송곳으로 후비듯 아팠다.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이것저것 검사한 뒤, 소염진통제와 바르는 연고를 처방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병원을 옮겨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렇게 몇 달 고생하다 하는 수 없이 삼성병원 피부과를 찾았다. 그랬더니 의사가 치과의사에게 가 보란다. 치과에서는 바로 턱관절 장애 진단이 나왔다. 덕분에 2년 가까이 김치조차도 잘게 썰어 먹고, 오른쪽 턱으로 음식을 씹었다. 잠잘 때는 틀니처럼 생긴 ‘장치’를 아래턱에 끼우고 자야 했다. 이제야 조금 통증에서 벗어난 듯한데, 아직도 조심스럽다. 의사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니 동그랗고 매끈해야 할 턱관절이 톱니바퀴처럼 울퉁불퉁하다. 오래 써서 생긴 병이다.

몇 달 전부터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도 때도 없이 쿡쿡 쑤신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면 고통이 배가된다. 아내는 내가 자판을 너무 세게 쳐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늘 주의를 준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손가락 끝마디들이 닳아서 변형됐다. 손가락 관절염이다. 의사가 말 안 해줘도 원인은 뻔하다. 오래 써서 일어난 일이다. 의사는 무거운 것을 드는 헬스 운동과 컴퓨터 사용을 멈추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내게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조언이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파라핀 치료기를 집으로 보내주어서, 요즘은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손을 찜질한다. 엉망이 된 턱관절의 통증도 사라진 걸 보면, 손가락 관절 통증이 사라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것도 2년 정도 열심히 물리 치료하면 사라질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꼭 이렇게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내 몸에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이 나를 상쾌하게 한다. 30년 넘게 나를 괴롭혀 온 비염이 몇 년 전부터 감쪽같이 사라진 게 그중 하나다. 항히스타민제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어려웠는데,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리던 묽은 콧물이 자취를 감췄다. 40년가량 피워 댄 담배를 끊은 뒤부터 일어난 변화가 아닌가 싶다.

수십 년 나를 괴롭게 해 늘 수술을 고민하게 했던 편도선염도 어느 순간 없어져 버렸다. 몇 년 전부터 잠잘 때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테이프를 입술에 붙이고 잔다. 잠잘 때 숨을 입으로 쉬지 않고 코로 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부터 잠자는 사이에 편도선이 부어오르는 일이 없어졌다. 원래 이처럼 ‘코숨 테이프’를 붙인 목적은 코 고는 소리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것이 뜻하지 않은 보너스를 가져다준 것이다.

지난해 우연히 ‘사과 식초(애플사이다 식초)’를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다. 2년 전쯤 갑자기 변비가 찾아와 나를 난감하게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변비는 10명 중 2명이 겪을 만큼 흔하고, 특히 노년층에서 많이 겪는 증상이라고 나와 있다. 내 경우는 대장 연동운동이 저하돼 발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고통을 겪어 보니, TV 광고에 변비약 모델로 나온 어르신들이 ‘유쾌 상쾌 통쾌’를 소리 높여 외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정의학과에서 변비약을 처방받았다. 다행히 약이 잘 들어 하루 한 알로 생활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서너 달 후에는 내성이 생겨 투약량을 두 배로 늘려야 했다.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나자 하루 세 알이 필요했다. 의사는 “하루 여덟 알까지는 늘려도 된다”며 별일 아니라는 표정이다.

그다음엔? 이 추세로 가면 한 해가 가기 전에 하루 여덟 알씩 먹는 변비약도 효력을 잃게 될 터이다. 그다음엔 어떡하겠다는 거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늘어 가는 변비약으로 걱정하고 있을 즈음, ‘사과 식초’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됐다. 열거된 효능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체중감량으로부터 시작해서 소화 기능 강화, 콜레스테롤과 고혈압 증상 완화, 심혈관 질환 예방, 당뇨 조절, 곰팡이 제거, 하지 정맥류 완화, 인후염과 기침 치료, 경련 가라앉히기 등 읽기에도 숨차다. 여기에다 “변비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는 말이 한마디 덧붙여져 있다.

왠지 이걸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쿠팡에서 수입 유기농 사과 식초를 한 병 주문해 봤다. 가격도 생각보다 착하다. 1리터짜리 한 병에 1만 원 정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 생수 한 컵에 사과 식초 한 숟가락(밥숟가락, 10cc)을 타서 마셨다. 맛도 쌉쌀하니 먹을 만하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변비약을 끊고 대신 사과 식초 탄 물을 마셨는데, 첫날부터 당장 변비 증상이 사라졌다. 즉각적이고 완전한 치유였다. 직접 경험하고도 믿어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열흘쯤 지나서는 필요 없어진 변비약 다섯 통을 모두 약국에 줘버렸다. “이제는 약이 필요 없게 됐다”는 말에 약사가 놀라면서도, 약을 공짜로 돌려주는 데는 별로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유기농 사과 식초 한 병으로 50일씩 나눠 마신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약처럼 내성이 생겨 먹는 양을 늘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장 기능이 개선된 것을 느낀다. 좋은 식품과 약의 차이를 실감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상상치도 않은 더욱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그동안 나를 괴롭혀 오던 정체불명의 체취가 사라진 것이다.

나는 좁은 내 방안에서 매일 한두 시간 정도 유산소운동과 근력 운동을 한다. 그럴 때 아내가 내 방에 들어오면 잔소리처럼 꼭 하는 말이 있었다. 방안에 퀴퀴한 땀 냄새가 가득하니 창문 좀 열라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면 정말 속 옷에 냄새가 배어 있다. 나이 들면 난다는 노인 냄새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 좀 열라는 말은 들어본 지 7~8개월은 지난 것 같다. 가만히 따져 보니 내가 사과 식초를 먹은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갑자기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만한 다른 요인은 없어 보인다. 이 또한 사과 식초가 내 몸에 깜짝 선물한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요즘 나는 유기농 사과 식초를 내가 먹어 본 최고의 음식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루 두 번 냉장고에 넣어둔 식초병을 꺼낼 때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눈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 액체가 내 몸과 혈관에 쌓인 지방을 분해하고 피부노화를 늦추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상승한다. 그래서 이제 등산이나 외출 때도 생수병 대신 사과 식초 물을 담아 챙긴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 보니 수다가 길어졌다. 나머지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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