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닷컴= 이서문 기자] 유한양행은 회사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총에서 회장·부회장직을  신설하는 직제개편안을  의결해  사유화  논란 여지를 남겼다. 

유한양행은 글로벌화를 추진하기 위해 직제개편을 단행했다는 입장이나 이는 국내 첫 종업원 지주제,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 부의 사회환원을 내용으로 한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의 창업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유화 논란의 불씨는 살아 있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많은 임직원들이 트럭시위를 하며 사유화 시도의혹에 반대해 심한 내분에 휩싸였던 유한양행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유한양행빌딩 4층 대강당에서 제 101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회장·부회장직을 신설하는 정관 일부 변경안을 95%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유일한 박사의 뒤를 이은 연만희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지 28년 만이다. 또 사내이사 선임건 등 나머지 6개 안건도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번 주총에서 최대 관심 안건은 말할것도 없이 내홍의 도화선이었던 회장· 부회장직 신설 안건이었다. 유한양행은 ‘이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정관 제33조를 ‘이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로 변경했다.

유한양행 주총이 열린 15일  주총장 앞에서 회장·부회장직 설치에 반대하는 트럭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한양행 주총이 열린 15일 주총장 앞에서 회장·부회장직 설치에 반대하는 트럭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장직 신설은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에 의한 사유화의 시도라며 절대 반대를 외친 많은 임직원들의 논리는 결국 주총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설립자의 창업정신 지우기가 아니냐는 우려도 반영되지 않았다.  직계후손의 의견도 철저하게 무시됐다.

주총 전 미국에서 귀국해 주총에 참석한 유일한 박사의 손녀이자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도 직제 신설에 우려를 표했다. 유 이사는 “할아버지 정신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 분리 경영을 내세운 창업주의 이념에 이번 회장직 신설이 어긋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회장직 신설됐지만 회장직 신설등 직제개편에서  비롯된 사유화 논란의 파장은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현  상당수 직원들이 현 경영영진의 사유화 의혹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상태인데 현 경영진이 앞으로 창업정신에 위배되는 경영이나 언행으로 사유화 의지를 보일 경우 내분은 다시 불붙을 소지가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에서 사유화 시도 의혹을 샀던 이정희 전 대표이자 현 이사회 의장이 유한양행 최대주주인 유한재단의 이사로 등재된 것은  사유화 논란은  다시  촉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의장이 재단이사가 된 것은 어느 면에서 장기집권이나 나아가 화사를 장악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것과 다름없다는 시각을 보인다. 이 의장을 중심으로 현 경영진이 이런 힘에 의거해  사유화 야욕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으로 점치며 이 경우 유한양행은 다시 심각한 내홍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유한양행 측은 이번 회장직 신설을 두고 '글로벌 유한'으로 발돋움하는 데 필수적인 절차이지 사유화 의혹과는 상관없다고 일축했다. 유한양행은 “일부 논란이 되고 있는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은 회사의 목표인 글로벌 50대 제약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직급 유연화 조치를 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관 변경 필요성을 느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능력있는 사람을 영입하기 위한 조건들이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법무법인 컨설팅을 통해 회사 정관을 수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회사의 설명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여전히 현 경영진이 사유화 야욕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 있는 징후들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현 경영진이 글로벌화라는 명분아래  장기집권이나 사유화를 노리고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유한양행에서 회장에 올랐던 사람은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와 연만희 고문 두 명이었으며 연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지난 1996년 이후에는 회장직에 오른 이는 없었다.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택해 이사회를 중심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사회 구성원은 사외이사 수가 사내이사보다 많으며 감사위원회제도 등을 두고 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