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산의 매력을 모르는 나는 산보다는 바다가 좋다.

바다가 왜 더 좋은지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산보다는 바다가 좋은 경치를 좀 더 빠르고 쉽게 내주는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희한하게 산은 오를 때마다 목적 지점까지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에 제대로 즐긴 일이 별로 없었다.

사진 앤디
사진 앤디

이번 연수 장소는 사방이 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단 몇 걸음만 걸어도 살짝살짝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숲 테라피를 하기 위해 강사님과 동행한 짧은 산행에서 아무런 목표 없이 쉬엄쉬엄 산을 오가는 걸 처음으로 배웠다.

강사님은 중간중간 걸음을 멈추고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소리, 새가 나무를 딱딱 두들기는 소리를 듣게 하셨다. 그러다 잣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잠시 멈춰 서서 꺾인 나뭇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무들도 빽빽한 공간에서는 햇빛을 더 보려고 경쟁을 하는데, (햇빛 쪽으로) 더 높이 뻗어 나가기 위해 나무 스스로 자기의 가지들을 탈락시킨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진짜 잣나무의 중간중간 꺾인 나뭇가지가 걸려있었다. 강사님은 '이런 걸 보면 나무의 세계도 우리의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산을 내려와서도 그 말씀이 계속 머리에 맴돌고 마음에 남았다.

나무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경쟁을 해도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반면, 현실 속 인간의 경쟁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창 시절에는 학습이나 그 외의 경쟁에서 나무처럼 나 자신만 돌아보고 스스로 내린 선택과 집중에 대해 책임을 졌었다. 그것은 너무 당연했고, 납득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내가 본 것은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는 모리배들의 싸움이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발전하기보다는 남을 깎아내리고 헐뜯는 사람들, 알량한 권력에 붙거나 줄 서서 다른 이들을 밟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거기에 더 놀라운 건 이런 방식이 너무 잘 먹히는 곳이 회사라는 사실이었다.

이제 이런 환경에서 내가 어떤 방식을 취할지는 오롯이 내 문제다. 이런 공기에 질식해서 죽을 것 같다면 나는 나무와 다르게 두 발로 제3의 숲을 향해 움직일 수도 있다. 잣나무의 꺾인 나뭇가지들을 보다가 내가 가진 나뭇가지들을 살펴본다. 남아 있는 것 중에 부러뜨릴 것은 없는지, 도저히 부러뜨릴 수 없다면 내가 진짜 가야 할 숲은 어딘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