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친구에게 이혼 소식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말에 묵묵부답이다. 평소 결혼생활이 힘들다거나 아내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은 적도 없는 친구였다. 둘이 충분히 이야기하고 내린 결정이라며, 그 과정을 동네방네 떠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장밋빛 결혼생활이 없다는 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살면서 겪은 희로애락의 절반 이상은 결혼 이후에 경험했으니까. 혼자일 땐 맞닥뜨리지 않아 연습해본 적 없던 새로운 국면들에 우린 서툴렀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 감정에 사로잡혔다. 기쁨과 즐거움은 즐기면 됐다. 문제는 슬픔과 노여움이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퇴근 뒤에 풀 수 있지만, 결혼생활엔 퇴근이 없었다. 집에 가서 아내와 또 싸울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왜 이런 불구덩이에 내 발로 걸어들어왔을까 후회했다. 그때마다 괴로움을 글로 해소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내 감정을 돌아보고 타인의 공감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내도 이 글을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심하게 던진 말 한마디는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과도 같아서 오래 남아 마음을 할퀸다. 우리의 싸움은 늘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서 비롯됐다. 3년도 더 전에 부주의하게 꺼낸 말들에 울컥해 서로를 미워했다. 말도 그럴진대 언제든 들춰볼 수 있는 글은 더하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글은 쓰지 않기로 했다.

자료사진 논객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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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지 친구가 어른스럽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나와 배우자 사이의 일이다. 주변에 드러내고 조언을 구하기보다 서로에게 집중할 때 정답이 보이는 관계다. 그 답이 앞으로 더 노력하자는 것이든, 잘 헤어지자는 것이든.

내가 글 대신 택한 답은 우리의 삶이 그렇듯 결혼생활 역시 All or Nothing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었다. 평소엔 50과 60 언저리에서 살다가 가끔 20 밑으로도 떨어지지만, 다시 50을 회복하려 애쓰다 보면 가끔은 100이라는 기분을 느끼는 게 결혼생활이라는 걸 말이다. 분명한 건 아내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는 분명 100인 사람이었다는 거다.

우리 사이에 쌓인 해묵은 감정을 잠시 내려놓으면 첫눈이 오던 날 첫눈에 반했던 매력 넘치는 그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 그래서 난 내 기분을 온전히 드러내는 대신, 우리 관계에 해가 될만한 감정을 덜어내기로 했다. 내가 먼저 잠들었을 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깨우는 무신경함을 잠시 참으면, 고양이처럼 이불 속으로 들어와 폭 안기는 사랑스러움에 ‘애’와 ‘락’이 채워진다.

이런 노력을 아내 역시 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 믿음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아이를 낳고, 각자의 시간과 체력이 바닥나는 순간에도, 우린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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