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심상찮다. 정부는 이념적 갈등을 조장하고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현행 검정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명분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려 한다. 이에 대해 다수의 역사학자들과 역사를 가르치는 많은 교사들 그리고 역사학을 전공하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주로 보수적 성향의 개인이나 단체들이 정부의 국정화 방안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국정화 문제는 사회 전반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도 가세함으로써 과거의 다른 사회적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가 이념 대립이나 정치 공방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나름 오랫동안 우리 역사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의 전개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 본 사람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간에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논쟁이 이뤄지려면 우선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던 무시하려는 의도로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며 해결책은 더욱 아니다. 이런 점에서 만약 정부가 많은 역사학자들과 교사들의 반대 견해를 가볍게 취급하고 있다면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의 성격이 공권력으로 밀어붙일 대상이 아니라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무엇보다도 국정화에 반대하는 측이나 찬성하는 측 모두 더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고대사와 현대사라는 중요한 두 분야에서 극단적으로 상반된 견해들이 서로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오랫동안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정화 추진을 유발한 원인은 주로 현대사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고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고대사의 주요 쟁점들, 이를 테면 고조선의 강역(疆域), 단군신화의 의미, 한사군의 위치, 임나일본부설 등과 관련해서 역사학자들 사이에 극단적으로 상반된 견해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발전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할 우리 역사의 진실에 대한 견해가 분분한 상태에서 어느 하나의 역사관을 강요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의 잔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먼저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의 내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없는 가운데 국정화 운운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극히 비이성적인 상황을 목도하면서 문득 함석헌 선생이 떠올랐다. 필자는 함 선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 분을 지척에서 모신 것도 아니고 그분의 종교적 신념이나 씨사상에 매료돼 깊이 연구한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기억이라면 대학생 시절 종로에 있던 흥사단 강당에서 연설하실 때 먼 발치에서 뵈었던 것이 전부다. 그렇지만 1970년대 암울했던 유신독재시절 불굴의 용기로 혈혈단신 독재에 대항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함 선생은 진정한 선비정신과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분으로서 한국 근대사에 지워지지 않는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그분이 떠올랐을까 자문해 본다.

함석헌 선생은 역사학자는 아니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함 선생은 유영모 선생이 남강 이승훈 선생의 부탁으로 평양의 오산고등학교 교장 직을 맡고 계셨을 때 오산고등학교에서 선생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아마 이 때 역사를 가르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함 선생의 유일한 한국역사 관련 저서라 할 수 있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선생께서 일제하에서 우리 역사에 대해 강연했던 것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제목으로 잡지 <성서조선>에 게재했었는데, 이 내용을 토대로 몇 차례에 개편 작업을 한 끝에 탄생한 책이다.

이 책의 모태가 된 강연 제목에 드러나 있듯이 이 책은 종교적 사관의 관점에서 한국역사를 기술하였다. 주지하다시피 함 선생은 기독교인이었으므로 자칫하면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적 관점에서 한국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함 선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책의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홀로 참 종교라는 생각에서도 아니요, 기독교에만 참 사관이 있다 해서도 아니다. 전날에는 내가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와서 보면 역시 종파심을 면치 못한 생각이었다. 기독교가 결코 유일한 진리도 아니요, 참 사관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진리가 기독교에는 기독교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현재 우리 역사를 둘러싼 대립 양상이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분열적이고 파행적이라는 사실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의식의 파편화’라는 참담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이것은 이성적인 사회에서는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역사란 학문이 자연과학처럼 정밀한 분석과 엄격한 논리를 바탕으로 객관성을 추구하는 분야는 아니므로 어느 정도 개인의 사관에 따라 역사에 대한 기술(記述)이 달라질 수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역사 기술에 있어 다양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동시에 누구도 과거의 역사를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기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백퍼센트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오만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만큼 한 개인의 지식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발견한 사료나 고고학적 발견을 서로 공유하는 가운데 각자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통합해 더 높은 수준의 역사 인식에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것이 역사라는 학문을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일찍이 영국의 역사학자 카아(E.H. Carr)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간결한 표현이 널리 인용되어 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것은 역사의 본질에 대한 표현으로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역사가 대화인 것은 맞다. 그런데 단순한 대화가 아니다. 과거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는, 그러나 감춰진 진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이해한 후 이를 바탕으로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대화이어야 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특정인의 사심(私心)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사심은 항상 진정한 대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함 선생은 이 책에서 한국역사는 ‘고난의 역사’임을 강조했다. 수천 년 동안 여러 가지 고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에 만신창이가 되었음을 통렬하게 지적하였다. 이런 고난의 실상을 이 책 곳곳에서 때로는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표현한 것은 우리에게 자극을 주기위한 방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가 고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더 이상 끌려 다니는 노예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함 선생은 이를 위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다름 아니라 지(知), 즉 앎이라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책의 맨 마지막 구절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어려워진 나라에서는 결국 악순환인데, 가지가지 잘못이 서로 얽혀서 무엇부터 풀어야 할지를 알 수 없는데, 지혜와 용단은 그 어느 고리에서 자르느냐 하는 데 있다. 한 고리가 풀리면 전체가 풀릴 줄 아나, 그 어느 고리에서 자르냐가 문제다. 모험이라면 모험이다. 그러나 마땅히 모험해야 하는 올바른 점은 지(知)에 있다.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하여 한번 모험을 할 전략적인 지점이 셋이 있다 할 수 있다. 부(富)가 그 하나요, 권(權)이 또 하나요, 그 다음은 지(知)다. 그러나 이 셋 중에 반드시 골라야 하는 것은 지(知)라는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 개정작업이 이루어진 것이 1960년대 이므로 그 후 벌써 50여 년이 지났다.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한국은 상당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했으므로 부(富)와 권(權)이라는 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知)라는 면에서는 어떠한가?

그 동안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사람들이 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공동선(common good)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건전한 사회규범이 실종되었으며, 불평등이 악화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심하게 부족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여기서 ‘지’는 단순한 지식을 넘어선 ‘진정한 앎’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함 선생은 이 책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깊이 생각하는 국민이 되라고 충고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사회적으로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정신적 스승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던 함석헌 선생이 살아 계신다면 여전히 깊이 생각하지 않는 백성이라고 우리를 질타할 것이다. 자신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요 자칫하면 전체주의로 발전할 소지가 다분하다. 과거 수많은 역사적 경험이 이를 입증한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은 항상 우리의 반면교사요 잠재되어 있는 우리의 다른 모습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런 점을 경계하는 자세를 갖고 역사교과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역사학자들과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진 많은 지식인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우리의 진정한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편으로 역사교과서도 제대로 편찬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이해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